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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폼폼토스 Sep 21. 2023

작은 것에 감사하기

"인도도 살만한 곳이에요."

 인도에서 소고기 구하기 글에서도 썼지만 인도는 소고기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식재료를 구하기 힘든 나라이다. 내가 인도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창 자라나는 자녀들을 키우는 주재원 가족들이기 때문에 가족들 먹거리가 가장 큰 관심사이다. 어느 누구를 만나든 이야기의 끝은 식재료와 한식 메뉴 추천으로 귀결되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지난주에는 지인들에게서 추천받은 새로운 한국 빵집에서 빵을 주문해 먹어 보았다. "거기 괜찮아요." 정도가 아닌 "거기 정말 맛있어요."의 평을 들었던지라 과연 어떨지 궁금했다. 입맛은 사람마다 다르기 마련이니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먹어 보았는데, 과연 듣던 대로 정말 맛있는 것이다. 인도라서 맛있는 게 아니라 이 빵집이 한국에 있었더라도 줄 서서 먹었음직한 그런 맛이었다. 인도에 있는 동안 이 맛있는 빵을 항상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내가 인도에 살고 있는 게 한 뼘 더 즐거워졌다.

출처. Pinterest


 몇 주 전에는 새로 알게 된 지인과 동네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식사를 하러 갔다. 워낙 유명한 레스토랑이라 한국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것은 물론이고 인도 사람들에게도 인기인데, 모든 음식이 평타 이상이고 분위기도 좋아서 나도 자주 가는 곳이다. 한쪽 눈 감고 보면 청담동 어디께 정원 딸린 레스토랑 느낌이 나는 그런 곳. 나도 6개월 전 인도에 처음 와서 아는 사람 아무도 없고 우울해하던 시절 지인이 데려가서 알게 된 곳이다. 맛있는 음식을 잔뜩 시켜 먹으며 그 지인이 이렇게 얘기했었다. "인도도 살만하지요? 그러니까 너무 우울해하지 마세요." 그리고 내가 데려간 지인도 이렇게 말했다. "이런 좋은 곳도 있고, 인도도 살만한 곳이네요."


 맛있는 빵집,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은 그런 작은 것들이다. 모든 것이 풍족한 한국에 살 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사실이다. 처음 인도에 왔을 때는 그래서 우울했었다. 한국에는 늘 예쁘고 맛있는 것이 넘쳐 나서 어디부터 가야 할지 뭐부터 사야 할지 결정하지 못했는데, 인도는 눈 씻고 찾아봐도 그런 곳, 그런 것이 별로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선택할 것이 많은 한국에서 내가 정말 그렇게 즐겁고 행복했었는지 생각해 보면 또 딱히 그것도 아니었다. 어떤 식당이 조금만 맛있다는 소문이 나면 오랜 시간 줄 서서 기다려야 해서 포기한 적도 많았고, 누가 뭘 샀다는 얘기를 들으면 종종 그것이 부러워 못난 마음이 들기도 했었다. 예쁘고 멋진 물건은 또 어찌나 많은지. 이걸 사면 저것도 사고 싶고 그 모든 걸 다 살 수 없으니 많이 가졌어도 가진 게 없는 것 같은 그런 가난한 마음도 생겼었다. 선택할 것이 그리 많지 않은 이곳 인도에서 나는 맛있는 빵 한쪽에 기뻐하고 커피가 맛있는 단골 카페에 가며 감사하다.


 어떤 사람은 이런 걸 보고 정신승리라고 할 수도 있겠다. 맞는 말인 것 같다. 그런데 인생은 길게 보면 정신승리의 과정이다. 불평할 거리를 찾아보자면 끝도 없다. 아무리 많은 걸 가져도 부족함을 느끼는 게 인간이다. 맛있는 빵집이 열 개가 있는 삶이 풍족할 것 같지만 어차피 내가 한 번에 먹을 수 있는 빵의 개수는 정해져 있고 그러니 한 개의 맛있는 빵집을 알고 있는 삶도 꽤 좋은 삶이다. 모든 것이 바빴고 시간에 쫓겨 다녔던 한국에서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소중함이다.

 

 오늘은 이제 막 인도에 도착하여 새로운 환경에 걱응하느라 고군분투하고 있는 분들과 어쩌다 식사할 기회가 있었다. 인도의 식재료 쇼크를 한차례 겪고 소고기를 구하지 못해 우울해하는 그녀들에게 조심스럽게 할랄 가이의 연락처를 건넸더니 이제까지 본 표정 중 가장 밝은 표정을 짓는다. 이제 정말 한시름 놓겠다고, 너무나 고맙다고 한다. 그런 그녀들에게 몇 달 선배랍시고 이렇게 말했다.


 "다 구할 수 있다니까요. 인도도 살만한 곳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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