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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폼폼토스 Mar 24. 2024

새치기는 나의 이익

빨리 가고자 하는 것은 악(惡)이 아니다? 

 2월 28일 오후 6시의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 나는 아이와 함께 잔뜩 긴장하면서 인도 땅을 처음 밟기 위한 입국 심사 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줄이 어디 있는지 도대체 모르겠는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의 공항을 가도 항상 볼 수 있는 차단봉과 차단 벨트가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입국 심사대 앞에 줄을 서 있는데, 자꾸 어디선가 사람들이 나타나 내 앞에 선다. 줄과 순서를 정리하는 직원도 없다. 분명 내 앞에는 사람이 없는데 내가 알지 못하는 줄 서는 규칙이 있는 것인지 내 순서가 자꾸 뒤로 밀려 나는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인도에서 좀 더 살다 보니 그때 내가 새치기를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부분의 인도 사람들은 줄의 순서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무시한다. 나는 내가 가는 모든 장소에서 새치기를 경험할 수 있었다. 가장 빈번하게 새치기가 일어나는 장소인 공항은 물론이요, 레스토랑에서도, 호텔 체크인 줄에서도, 아이의 장난감을 사러 간 장난감 가게에서도 인도 사람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항상 새치기를 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다른 인도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별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그런 일이 있을 때 당하고 있는 편은 아니기 때문에 몇 번의 어이없는 새치기를 경험한 후에는 어디든 줄 서는 곳이 있으면 바로 경계 태세에 돌입한다. 어떤 인간이 내 앞에 새치기를 하나, 새치기를 하면 바로 "I got here first. Don't cut in line."을 외칠 준비를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인도 사람들은 만만하지 않다. 한 번은 고급 호텔의 레스토랑을 예약하고 예약 시간에 레스토랑에 도착하여 줄 서 있는데, 어떤 인도 남자가 내 앞에 순식간에 와서 자기가 먼저 예약 정보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즉각 준비해 둔 말을 사납게 내뱉었다. 그랬더니 이 남자 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I made a reservation." 그 남자 앞으로 더 바짝 다가서며 나도 지지 않고 받아쳤다. "I made a reservation too. Queue behind me." 좋은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기 전부터 기분이 엉망이 되었다. 


"This is how Indians queue. True of false?" - (이미지 출처: i.imgur.com)

 그 뒤로도 새치기를 당한 경험은 정말 셀 수가 없다. 지난 가을, 인도와 파키스탄 국경 지방을 여행할 때도 공항을 이용할 일이 있었는데, 입국 심사 줄에서 어떤 남자가 공항 카트에 짐을 잔뜩 싣고 나타나 우리 앞에 서려는 것이다. 남편과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새치기하지 말고 뒤로 가라고 고함을 질렀다. 특히나 공항에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나와 남편은 공항에 들어서는 그 순간부터 전투 모드에 돌입한다. 


 나는 줄을 서고 순서를 지키는 것은 법을 지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먼저 온 사람이 먼저 순서가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 순서를 존중하고 늦게 온 만큼 내가 먼저 온 사람들 뒤에 서서 기다리는 것은 공동체를 살아가기 위해 갖춰야 할 기본 예의이자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이다. 


 왜 대부분의 인도 사람들은 새치기를 하는 것인지 인도 사람에게 물어볼 순 없기에 대신 구글에 검색해 봤더니 그중 나름 이해할 수 있는 답변이 있었다. 인도 사람들의 대부분은 줄을 잘 서고 순서를 지키는 것이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경험과 상식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14억이나 되는 인구가 한정된 자원을 두고 항상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고, 매일매일 규칙을 따르더라도 내가 가진 어떤 것이나 기회를 잃지 않는다는 것을 보장해 주는 사회적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에 순서를 지키는 데서 오는 이익이 어떤 것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이해가 가지 않아 이것저것 찾아보던 중 보게 된 강성용 교수님의 콘텐츠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한마디로 인도인들은 어떤 일을 할 때 선과 악을 구분 짓지 않으며, 그때 나의 상황에 맞는 실리를 좇아가는 민족이라는 것이다. 그 일례로 든 이야기가 고대 인도의 우화집인 '판차탄트라'인데, 여기에 우리나라에서 '구토지설'로 변형된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서 두 가지 주목할 내용이 있다. 하나는 등장동물인 원숭이가 쫓겨난 왕이라고 나오고, 원숭이의 단짝 친구인 민물 돌고래는 자기 아내의 병을 고치기 위해 원숭이를 죽여 심장을 가져가려고 한다. 실제로 인도의 역사를 보면 통일 왕국이 아닌 수많은 왕조가 난립했으며, 친한 친구이지만 나의 이익을 위해서는 죽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지극히 실리를 추구하는 인도 사람들의 성향을 대변한다.  


간이 집에 있다고 거짓말한 토끼는 악, 용왕의 병을 고치려는 자라는 선으로 그려지는 토끼와 자라. '판차탄트라'에는 선과 악이 없다. (이미지 출처: Pinterest)

  선과 악을 구분하고 정의와 명분을 따지는 것은 유교 문화권의 사상이다. 어렸을 때부터 권선징악이 명확한 전래동화를 읽고, '살신성인(殺身成仁)'과 같은 사자성어를 배운 한국 사람들의 상식으로는 새치기를 하는 것은 공동체를 위한 일이 아니다. '공동체를 살아가기 위해 갖춰야 할 기본 예의이자 인간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따위와 같은 생각은 유교 문화권에서 자란 사람의 생각이었던 것이다.


 또한 인도 사람은 왜 새치기를 하는가에 대한 구글 답변을 쓴 사람은 아마도 서양 문화권의 사람이 아니었나 싶다. 절대왕권을 무너뜨리고 자유와 평등을 찾은 서양 사람들의 상식 역시 모두에게 좋은 결과가 있으려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질서를 지키는 것이다. 그러나 인도 사람들에게는 공항 입국 심사줄에서 새치기를 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고, 조금이라도 빨리 가기 위한 나의 이익을 추구하는 일이다. 


 강성용 교수님의 콘텐츠를 보고 나서 한 행동은 아니지만, 나는 언제부턴가 새치기하는 인도 사람이 있으면 비키라고 고함을 질러 내 기분을 상하게 하는 대신 새치기한 사람을 다시 조용히 새치기하는 방법을 택했다. 저 위의 사진에서처럼 내 앞에 누군가가 들어올 틈을 단 한치도 허용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대부분의 인도 사람은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았다. '새치기=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는 일'이라는 생각을 가진 내가 마음이 좀 불편했을 뿐. 하지만 이젠 그런 죄책감을 갖지 않기로 했다. 이곳 인도에서는 새치기하는 건 빨리 가고자 하는 나의 다르마(Dharma)를 지키는 일이라는 걸 알았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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