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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일기

#일기 #에세이

by 공영

아주 오랜만이다. 산다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무언가 생각을 하거나, 잠겨볼 틈이 없는 지난날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일을 했고, 가족도 남자친구도 무탈한 하루였는데, 엄청 비어있는 기분이다. 혼자 있고 싶어 영업이 끝난 가게, 마감을 끝내고도 남아있다.


그동안 나는 열심히 일을 했다. 쉬는 날 없이 잠도 줄여가며 일만 한 것 같다. 오래 한 사진일을 관두고 다른 삶을 살았다. 딱히 불만도 없고 정신적으로 힘든 것도 없다. 이렇게 무탈하게 보낼 수 없는데, 재미가 없다.


조금 전 저녁, 남자친구가 물었다. "넌 나랑 한 것 중에 가장 좋았던 게 뭐야?"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일 마감하고 새벽에 따릉이 탔던 거." 딱히 그동안 대단한 걸 한 적은 없지만, 대부분 잠든 새벽, 간혹 보이는 러닝 하는 사람들, 자전거 타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상당히 고요한 그 시간이 좋았다. 바람은 불고, 아무런 것도 얽매여있지 않고, 마지막즈음에 터질 것 같은 다리의 펌핑감만 느껴지는 그 시간이 나는 참 좋았다. 그러고 보니, 사진일을 관두기 전, 위례에서 미아동으로 따릉이를 타고 귀가하던 시간도 좋았다.


나는 왜 지금 혼자 있는 시간을 굳이 가지고 싶은 걸까. 모르겠다. 지금 겨우 찾아온 고요가 닳는 게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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