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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udi Apr 17. 2022

2022.04.17

소글거리



감정의 물결이 파도처럼 더 크게 일렁거리면 침착하게 원인을 하나씩 꼽아 밑에 달아 둔다. 생리 주기와 기분 변화가 어떤 연관성을 갖고 있는지, 요 며칠 동안 날씨가 어땠고, 일을 얼마나 했는지. 최근에 접한 슬프고 절망적인 소식들이 얼마나 되는지(놀랍게도 항상 그 수는 너무나, 많다.), 지금 계절에 주로 나는 어떤 기분을 느끼고는 했는지....

그렇게 해서 하루나 몇 시간 안에 해결될 것 같지 않은 상태라는 위기감이 스멀스멀 피부를 타고 올라오면 두려움으로 변한 감정은 이렇게 문장을 내어놓는 것이다. 나는 글을 쓸 수 없을지도 몰라.

그게 터무니없는 소리라는 것을 나는 꽤나 절박하게 고생을 곁들여 증명하면서 살아왔는데도 말이다. 엉성하게 창작을 거듭한 결과물들을 얹어 내밀어서 다행스럽게 직장도 구했고 마감이 조금 밀렸지만 조금 더 정교하고 의욕있게 쓰고 싶은 이야기가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직장에서는 매일매일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지만 몇 명의 머릿속에서 직조한 세계 안에는 분명히 존재하는 인물들의 행보를 결정하고 그들이 할 말을 적어낸다. 주말에는 꾸벅꾸벅 졸면서도 게걸스럽게 책들을 읽어 해치웠다. 일에 에너지를 배분하고 평일의 일상들을 살아내기 위해서 너무 감정을 소진하는 글들에 마음을 빼앗기면 힘들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렇지 않으면 경멸하는 존재들과 가까워질 것처럼 활자들로 벽돌길을 늘려놓는 것이다.

이유를 찾는 일은 조금 부질없다. 슬픔도 애도도 분할로 납부하는 게 나은 거 같아요, 한번에 전부 해내려고 하면 너무, 너무, 힘들어서 완전히 닳아버리니까. 하지만 그러면 이자가 붙는 지도 모른다. 아이폰의 앨범 위젯에서는 산발적으로 오래된 사진들에 찍힌 털동물들을 보여준다. 이 애들을 사랑하지? 사랑스럽지? 이런 것들을 판단하고 분류해놓는 알고리즘에게, 이 아이는 동네 쉼터의 새끼 고양이들에게 재앙처럼 돌았던 파보 바이러스에 벌써 세상을 떠났고, 이 녀석은 우리집에서 십 육년쯤을 보내고 마지막은 매일매일 누워서도... 가족들이 번갈아가며 들여다보는 거실에서 갓난아기처럼 보살핌을 받다가 고양이별로 돌아갔다고 설명해줄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설명하지 못할 지도 모른다. 집에 들인 동물들을 그렇게 떠나보내는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동료의 말에 나는 막상 혀 위로 굴리면 얼마나 점심시간에 잠시 주고 받기에 적절한 농도로만 이야기를 담을 수 있을지, 내가 매몰되지 않을 만큼만 슬픔을 드러낼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없어서 봄치고 뜨거웠던 햇살 얘기로 말을 돌려 버렸다. 그러니까 아마 그 알고리즘에게 얘기할 기회가 생기더라도 나는 꼭 그 알고리즘이 무심하게 보여주는 복슬복슬한 동물들 사진을 볼 때마다 약간 낭패스러운 기분으로 눈을 깜빡이고 다른 창을 띄우는 정도의 당혹감을 쭉 누르면서 말을 얼버무릴 지도 모른다.

이렇게 찔끔찔끔 감정을 갚으면 죄책감이나 부채감같은 이자가 붙을 수도 있다는 걸 설명한 약정서 같은 건 없었으니까, 그건 내 정신이나 뇌와 심장 사이에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생물학적인 동시에 또 나만의 고유한 법칙을 따른 계산법이기 때문에.

하지만 이 모든 슬픔과 내가 다시 어느 과거 순간 만큼 닳아버리는 게 두려워 온전히 집중하지 않는 세상의 절망이나 부조리함에 대한 분노들, 그리고 여전히 스스로를 가끔 지나치게 과신하는 바람에 지치는 줄도 몰랐다가 쌓인 피로들까지- 몰려와 '글을 쓰지 못할 지도 몰라' 하는 뻔한 문장으로 뚝 떨어져 버리면, 이건 단숨에 해치워 버리는 게 낫다. 매일 매일 일기장에 짧게라도 감정과 사건을 기록하고 있잖아.

내 나름대로 어렴풋이 진실과 조금 덜 진실하지만 즐거운 것, 그렇게 나누어진 글들을 쓰느라 여전히 손가락에 건초염을 달고 살고 있잖아. 돈이 모이면 엄청나게 비싸다는 인체공학 키보드를 가지고 싶다고, 그리고 시간 여유를 더 마련할 수 있으면 체력을 길러서 출퇴근 시간을 배분하고 일하는 시간을 쪼개서 계획적으로 글을 쓰겠단 생각을 하고 있잖아. 어제도 더 쓸만한 손목이나 손가락 보호대를 검색하다가 잠이 들었잖아.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 남겨뒀던 문장들을 다시 읽으면서 위안을 얻었잖아.

비가 오면 축 가라앉고, 정기적으로 외출할 때 등을 지탱하려고 입는 브라 때문에 가끔 별로 먹지도 않은 점심 식사가 얹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뻔하게 닳도록 발음한 문장을 다시 한 번 외우고 그냥 비오는 날엔 좀 천천히 일을 해도 내게 너그러워지기로, 빳빳한 브라를 입어야 되는 옷은 무리해서 입지 말기로 결정하면 아직 쓸만하게 수선할 수 있는 일상이다. 엄마가 나를 낳은 것보다도 더 먹은 나이고 막연하게 이것보단 성숙한 어른일 줄 알았지만 반년 전의 내가 스스로에게 느꼈던 것보다는 훨씬 번듯한 모습이니까 괜찮다고.

이 모든 것들을 오늘도 글로 적었다고. 그럼 그걸로 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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