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 시인 낭독회에서 이환희 편집자를 처음 봤다. 그는 낭독회 사회자였다. 낭독회 도중에 그가 윤종신 팬클럽 총무라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윤종신 노래를 너무 좋아해 놀리려고 그러는 것이려니 했다(그는 히든싱어 윤종신 편에 출연했다). 그것 빼고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어쨌든 김현 시인 낭독회 자리였으니까.
시간이 지난 뒤 그가 출판계 사람들 사이에서 자주 회자된다는 걸 알았다. 출판사 동녘에서 일하는데, 사회를 비판적으로 보는 안목이 높다, 연차가 낮은데도 좋은 인문사회 책을 여럿 펴냈다는 등의 칭찬이었다. 특히 도시사회학, 페미니즘, 젠더 분야의 책을 만들어 주목을 받았다(제목을 들으면 '아, 그 책~' 할 것이다).
세 분야는 모두 나도 잘하고 싶은 분야였다. 지식을 더 많이 쌓고 좋은 원고를 찾아내고 싶었다. 그 길을 앞서서 잘 걷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뭐라도 배울 게 있을까 싶어 냉큼 그의 페이스북을 팔로우했다. 그의 글 하나하나가 좋았지만, 책 만드는 일에 대한 것보다도 사회를 대하는 태도와 시선을 더 많이 배웠다. 편집을 하려면 사람이 잘 익어야 하는구나 싶었다. 연이 닿는다면 만나서 이것저것 묻고 싶었다.
그러다 그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을 기회가 생겼다. 은유 작가의 인터뷰집 <출판하는 마음>(제철소)에 그의 인터뷰가 실린 것이다. 디자이너, 마케터, 서점인 등 출판계에서 일하는 10명의 ‘출판맴’이 담긴 책으로, 연차도 낮고 이렇다 할 사수가 없는 내게 도움이 많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이환희 편집자의 인터뷰가 가장 좋았다. 그가 3년 차 인문편집자로서 겪은 시행착오와 깨달음이, 내가 곧 맞닥뜨릴 과제의 난이도를 좀 낮춰주는 것 같았다. 지금도 일하면서 헤맬 때마다 그의 인터뷰를 떠올리고 마음을 다잡곤 한다. 예를 들면 이런 이야기들.
“이윤 추구가 1번이에요. (중략) 책이 팔려야 저 스스로도 일을 제대로 잘해낸 것 같은 생각에 뿌듯하고, 또 회사에서 직원들이 제대로 급여 받고 복지를 누릴 수 있으니까요.” “책을 볼 때 장점 위주로 보면서 나라면 이 책의 장점을 이런 방향으로 더 잘 살렸을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는 연습을 많이 해보는 게 중요해요.”
<출판하는 마음> 출간 즈음 그는 출판사 어크로스로 이직을 했다. 페이스북에 종종 이직 일기를 올리곤 했다. 배울점이 한 문장씩은 꼭 있었다. ‘동녘에서는 깊이 들어갈 만한 내용인데 어크로스에서는 독자층이 달라 쳐내서 성에 안 찬다’ ‘동녘에서 함께하던 저자의 책을 어크로스에서 내게 되었다’는 등의 이야기였다. 어떤 책의 편집 후기는 메모장에 전문을 옮겨두기도 했다.
그는 얼마 전 3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뇌종양에 걸렸다고 했다. 그의 아내가 페이스북에 병세가 어떤지 올릴 때마다 많은 사람이 댓글을 달았다. 기도한다는 댓글 외에 이런 이야기가 눈에 가장 많이 띄었다. “한 번도 뵌 적 없지만 멀리서 응원했어요.” “<출판하는 마음> 인터뷰 읽고 영향을 받았습니다.”
장례가 끝난 뒤 그의 계정에 글이 올라왔다(아마 그의 아내가 올렸을 테다). 제목은 ‘오늘로 편집자를 그만두려 합니다’, 편집일의 기쁨도 크지만 자신을 갉아먹는 슬픔도 커 좋은 독자로 돌아간다는 내용이었다. 비슷한 연차의 편집자들 공부 모임을 만들고 싶었다는 문장이 마음에 콕 박혔다. 아쉬워서, 이환희 편집자가 만들었다면 1등으로 연락을 했을 텐데. 혹 놓쳤다면 따로 연락을 해 기어코 모임에 함께하고 싶다고 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