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향상이 가능한
지난 글에서는 이런 얘기를 했다. (1) 런웨이가 한정된 스타트업에 다니는 에디터라면 맞춤법 지식이 필수는 아니다(부산대 맞춤법 검사기면 충분). (2) 다만 맞춤법 지식은 에디터 시장에서 개인 경쟁력으로 작용하므로 공부해두는 것이 좋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공부해야 할까 막막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마감에 치이다 집에 돌아오면 쉬기도 바쁘고, 남는 시간에는 트렌드 조사하고 경쟁사 콘텐츠 살펴보면 맞춤법은 뒷전이 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준비했다. 필자는 맞춤법을 어떻게 공부했는가. 갑자기 필자의 노하우라니... ‘믿을 수 있을까?’ 싶겠지만, 여러 회사에 몸담으며 ‘이거 맞아요 틀려요?’ 팀원들의 맞춤법 상담사 역할을 해왔으므로 믿어도 좋다.
이 글에서 소개하는 걸 하나씩 해나간다면 맞춤법 해상도를 80% 높일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한다. 나머지 20%는 에디터로 일하면서 꾸준히 공부해 채워가야 한다. 베테랑 에디터도 항상 국어사전을 끼고 살 정도로 맞춤법 세계는 넓기 때문이다.
사실 텍스트 콘텐츠에 필요한 문법 지식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한국어 문장을 교열할 때 자주 맞닥뜨리는 문제가 고만고만하다는 뜻이다. 보조용언 띄어쓰기, 어미와 의존명사 구분하기, 한국어 어순에 맞는 문장 구사하기 등.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는 뜻은 강의로 풀 수 있을 정도의 범위라는 뜻이며, 강의를 한 번만 들어도 갓성비 끝판왕으로 맞춤법 기초 지식을 흡수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러 교육센터에서 강의를 제공한다. 그중에서 관련 강의를 다양하게 들을 수 있는 곳은 ‘한겨레교육문화센터(신촌)’다. 필자는 ‘에디터를 위한 교정교열 실무’를 들었고, 이 수업 하나로 맞춤법에 해상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었다. 어느 정도냐면, 큼직한 출판사의 책을 비교하며 편집 원칙이 어떻게 다른지 파악할 수 있다. 대단하지 않은 것처럼 느끼겠지만... 한번 해보면 알 수 있는 감각이다.
1단계까지 해본 뒤 스스로 만족한다면 멈춰도 좋다. 각자 업의 궤적에 따라 수업만 들어도 괜찮은 상황이 충분히 있을 테니까. 더 공부하고 싶다면 다음 단계를 참고하자.
강의에서 전달하는 것 이상의 세세한 지식은 스스로 채워가야 한다. 하지만 막막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맞춤법에 눈이 어느 정도 트인 상태라서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조용언은 본용언과 띄어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붙여 쓰는 것도 허용한다고 했는데, 보조용언에는 뭐뭐가 있지?’ 같은 질문이 있다. 이럴 때 <열린책들 편집 매뉴얼>을 보면 된다. 보조용언의 종류 대부분이 소개돼 있다. ‘반드시 붙여 써야 하는 명사’ 등 다른 용례도 잘 정리되어 있어서 언제든 참고하기 좋다. 무엇보다 1~2년에 한 번씩 최신 맞춤법 개정안을 반영해 개정판을 내니까 믿음직스럽다.
(1) 최신 판본을 사서 처음부터 끝까지 가볍게 읽어보자. 강의에서 들었던 내용을 뒷받침하는 부분도 있을 거고, 처음 접하지만 꼭 알아두면 좋겠다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2) <열린책들 매뉴얼>과 글을 한 편 나란히 펴놓자. 주위 사람들이 SNS에 쓴 글이나, 브런치 같은 글쓰기 플랫폼에 공개된 글을 골라 교정해보는 거다. 이때 딱 봐도 맞춤법이 정확하지 않은 글을 골라야 좋다. 한 줄씩 읽어나가며 교정을 보고, 긴가민가할 때 <열린책들 매뉴얼>에서 해당 내용을 찾아 반영해본 뒤 숙지하면 된다.
사실 <열린책들 매뉴얼>을 활용하는 것은 강의를 듣는 것보다 시간과 품이 제법 든다. 규칙적으로 운동하듯이 해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해야만 기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바로 ‘맞춤법을 의심하는 눈’이다. ‘이거 왠지 띌 거 같은데?’ ‘이거 한 단어 아니야?’ 싶어 의심하고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정말로 띄거나 붙여야 한다고 안내한다. 이전에는 의심하지도 못해 그대로 발행했을 부분을 잡아내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나만의 맞춤법 지식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당연하고.
1번과 2번을 하면서 해보면 좋다. 우리말 지식에 대한 해상도가 높아질수록 더 많은 맞춤법&문법 책을 탐구하게 될 텐데, 꼭 필요한 건 빠르게 살펴볼 수 있도록 정리해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희가 철수 손에 휴대전화를 ‘쥐여주었다’인지 ‘쥐어주었다’인지 의문이 드는 순간이 올 텐데 이럴 때 찾아보고 기록해두면 다음에 절대 안 틀릴 수 있다. (이 맥락에서는 쥐여주다를 쓰는 게 옳다.)
세 번째 단계까지 진행했다면 앞으로는 꾸준히 탐구하면서 20%를 채워가는 길밖에 남지 않았을 것이다. 부산대 검사기에 의존하지 않아 기쁜 마음도 희미해진 지 오래일 것이다. 문법·글쓰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한 권에서 건지는 지식의 양은 줄고, 한두 가지 새로운 지식을 얻기 위해서 읽을 테다. 마치 맞춤법 즙을 짜내는 느낌이 들어 지루해지는 순간이 올 텐데, 그럴 때 주위를 둘러보면 좋겠다. 나를 한끗 다른 에디터로 인정해주는 동료들이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 다음은 <열린책들 편집 매뉴얼> 외에 큰 도움을 얻었던 책들이니, 나만의 맞춤법 사전을 만들 때 한 권씩 독파해봐도 좋겠다.
국어 실력이 밥 먹여준다(절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