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스타트업 이직을 고민하는 콘텐츠 제작자에게
‘이 회사에서 계속 일해도 될까?’, ‘내 커리어 이대로 괜찮을까?’ 언론·출판·매거진 등 소위 ‘레거시 미디어’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런 고민을 끊임없이 한다. 특히 3~7년 경력을 쌓았을 때 이직 생각이 커진다.
이들은 합리적인 조직문화와 성장이 담보된 일자리를 꿈꾸지만, 자신이 몸담은 조직에서는 변화의 기미가 없어 뒤처지는 것만 같다고 느낀다. 미디어 업계의 환경은 끊임없이 변하는데, 지금 일터에서는 미래를 담보할 수 없어 불안해한다.
일례로 언론계에서는 이런 현실을 꾸준히 보도해왔다. 대표적인 기사를 2개 살펴보자.
<경향신문> 2022년 10월: 높은 업무 강도와 낮은 워라밸뿐 아니라 ‘저널리스트로서 직업 효능을 발휘할 수 없는 조직문화’를 젊은 기자들의 ‘탈언론’ 현상의 원인으로 분석했다.
<기자협회보> 2023년 1월: 연차가 쌓여도 개인의 성장을 느낄 수 없고 ‘종착지는 데스크뿐이라는 현실’을 짚으며 ‘미래 없음’을 원인으로 분석했다.
레거시 미디어를 떠난 이들은 콘텐츠·뉴미디어 업계로 향한다. 실제로 이들을 채용하려는 수요가 꾸준하다. 채용 플랫폼에 들어가 ‘콘텐츠’를 키워드로 검색하면 콘텐츠 MD, 에디터, 콘텐츠 매니저 등의 채용 공고가 매주 새로 등장한다. 꼭 콘텐츠 관련 직군이 아니더라도 PR·홍보 분야에도 지원해볼 수 있다.
당근·토스·요기요 등 ‘크고 핫한 회사’로 이직할 기회도 있다. 콘텐츠를 메인 서비스로 제공하지는 않지만, 콘텐츠를 통한 브랜딩을 위해 인력을 충원하곤 한다.
수많은 선택지 중에는 스타트업도 있다. 콘텐츠 만드는 곳이라고 해서 다 같은 비즈니스 형태를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규모있는 콘텐츠 회사의 자회사인 곳도 있고, 외주 작업을 주로 하는 미디어 에이전시도 있을 테다.
그럼에도 스타트업을 콕 집어 언급한 이유는 고민 끝에 스타트업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콘텐츠를 메인으로 비즈니스를 펼치는 뉴닉·롱블랙·얼룩소 등은 ‘미디어·플랫폼 스타트업’으로 분류되며 기성 미디어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업을 이어가기에 적합하기도 하다.
미디어 스타트업 뉴닉에서 일하며 에디터 채용 과정에 대부분 참여했다. 지원자들의 이력서를 수백 건 검토했고 이 중에는 기성 미디어에 몸담은 사람도 많았다. 그들은 업무·성장 갈증을 해소하고 싶다며 지원 동기를 밝혔다.
하지만 직무 면접에 모신 분들 중 스타트업에 대한 이해도를 어느 정도 갖춘 지원자를 찾기는 어려웠다. ‘스타트업’보다는 ‘에디터’ 직무에 방점을 찍고, 지원한 곳의 콘텐츠를 함께 만들며 성장하는 경험을 하고 싶었을 테니까 말이다.
면접 과정에서 스타트업에 대한 이해도를 체크하는 질문을 하면 ‘통념’에 가까운 답변이 돌아오곤 했다. “스타트업에 다니는 친구한테 물어봤는데”로 시작해 “방향성이 자주 바뀐다”거나 “또래끼리 일해 사수가 없어 힘들다”거나 하는 식이었다. 아예 하나도 모른다고 답하거나 “드라마에서 봤다”고 답하는 경우도 많았다.
물론 스타트업 환경을 겪어보지 않고서는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어렵긴 하다. 하지만 이력서를 받아보는 입장에서는 지원자에게 스타트업에 대한 이해도가 약간이라도 있기를 바란다. 채용했다가 ‘적응하기 어렵다’며 금세 나간다면 회사 차원에서 큰 손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채용 과정에서 항상 스타트업에 대한 이해도가 있는지, 잘 적응할 수 있을지를 검증한다. 스타트업+에디터, 앞뒤로 방점이 찍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스타트업 환경이란 무엇인가. 감을 잡기 위해서는 스타트업에 대한 정의부터 알면 좋다. 검색하면 백이면 백 다른 주장이 나오는데, 스타트업에서 일하며 배운 점을 종합하면 아래와 같다.
① 스타트업의 No.1 과제는 생존이다.
② 스타트업은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비즈니스 조직이다.
③ 스타트업이 제시하는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혁신적인 서비스’여야 한다.
④ 스타트업의 서비스는 반복-확장 가능해야 하며, 이를 기반으로 가파르게 성장해야 한다.
⑤ 2~4번은 미션과 비전으로 문장화하여 스타트업의 나침반 역할을 해야 한다.
이런 점들이 스타트업을 쉽게 설명하려는 말들로 나타날 때 ‘정신없다’, ‘야근이 많다’, ‘속도가 빠르다’, ‘방향성이 자주 바뀐다’ 같은 식으로 전달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스타트업의 No.1 과제는 생존이다’ 이 문장을 대표로 뜯어보자.
스타트업은 창업 초기에는 뚜렷한 수익 모델이 없는 경우가 많다. 아직 돈을 못 번다는 뜻으로, 한정된 투자금을 갖고 버텨야 한다. 예산이 빠듯하니 사람이 부족하다. 메인 서비스를 제대로 굴리는 일만 해도 바쁜데, 불편한 점을 개선하고 수익 모델을 발굴하는 일도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같은 리소스로 더 큰 임팩트를 낼 수 있는 사업 방식을 찾으면 방향성을 과감히 수정한다.
누군가에게는 일하기 어려운 환경처럼 느껴지겠지만, 누군가는 일하면서 많은 것을 얻어가기도 한다. 위와 같은 상황에 놓인 미디어 스타트업에서 에디터로 일한다면, 에디터 입장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도 자신있게 알려줄 수 있다. 2가지만 꼽아보면 이렇다.
첫째: 콘텐츠 제작뿐 아니라 콘텐츠 제작 과정 및 시스템을 만드는 경험을 밀도높게 경험할 수 있다. 기성 미디어에는 이미 시스템이 갖춰져 있겠지만, 스타트업에서는 시스템을 만들고 효율화하는 일을 병행해야 한다. 때론 과감하게 뒤집어엎기도 한다. 일인다역을 해야 해 정신없겠지만 같은 1년이라도 업계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2~3년은 앞선 역량을 쌓을 수 있다.
둘째: 데이터·독자 중심의 콘텐츠 기획 방법을 배울 수 있다. 기성 미디어에서는 데이터를 확인하기 제한적이고, 내가 만드는 콘텐츠가 정말로 독자에게 파급력이 있는지 알기 어렵다. 하지만 스타트업에서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콘텐츠를 개선하고, 독자에게 효과가 있는지 측정할 수 있다. 일부 기성 미디어에서는 경영진·상사의 지시로 공급자 중심의 기획을 하게 되는 경우도 많은데, 미디어 스타트업에서는 고객(독자)을 중심으로 일할 수 있다. 고객 중심 사고법은 스타트업에서 요구하는 필수 역량이기도 하다.
나의 경험이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모든 에디터의 일을 대변하지는 못한다. 한 미디어 스타트업의 초기 멤버로 입사해 퇴사하기 전까지 겪은 일을 전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일하는 동안 스타트업에서의 콘텐츠 개발 방법에 몰두하고, 다양한 배경을 가진 에디터를 채용하고 성장을 돕는 셀 리드 역할을 했기에 경험에서 우러나온 얘기를 전한다는 자신이 있다. 스타트업의 세계로 진입하고자 하는 콘텐츠 업계 동료들의 막막함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을 테니, 혹 궁금한 점이 있다면 댓글이나 이메일로 언제든 알려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