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에디터 온보딩 생생 노하우: 나는 어떻게 온보딩 중인가
새로운 회사 ‘메이아이’에 입사해 적응 중이다. 8월 초에 들어갔고 곧 온보딩 기간 3개월을 채운다. 이전 회사인 ‘뉴닉’에는 5년 가까이 있었으니, 적응하는 과정 자체가 오랜만이라 다소 걱정이 들었다. 건강상 이유로 6개월 정도 쉬면서 보내기도 해서 업무 감각이 떨어졌으면 어쩌나 싶었다.
업무 영역이 바뀐 점도 걱정거리였다. 이전까지는 B2C 콘텐츠 조직에서 콘텐츠에 집중해왔는데, B2B 기업으로 옮기기 때문이었다. 부서는 브랜드 마케팅 팀, 업무는 기업 블로그에 올라갈 콘텐츠를 만들어 마케팅&세일즈 리드(lead)를 확보하는 것이라고 들었다. 기초부터 하나씩 하느라 뚝딱거릴 것 같았다.
하지만 웬걸, 온보딩 1개월 리뷰 때 “적응을 많이 한 것처럼 느껴진다”고 회사와 나 모두 리뷰할 정도로 적응을 착착 해나갔다. 뉴닉에서 콘텐츠 리더로 있을 때, ‘얼른 한 명 몫을 하고 싶어하는’ 여러 신규 에디터에게 다독이던 말들을 내게도 적용해본 것이 통했다. 이것도 익혀야 하고 저것도 익혀야 할 것 같아 조급하다면, 온보딩 과정을 두 갈래로 나눠 적응하라는 것이다. 하나는 ‘조직 차원의 온보딩’과 다른 하나는 ‘콘텐츠 차원의 온보딩’이다.
나는 회사의 ‘현재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봤다. 현재 상황이란 스타트업이 지금 어떤 문제를 가장 우선순위에 두고 있고, 어떤 규모의 성장에 도전하는지를 말한다. 이를 위해 입사하자마자 노션과 슬랙 등에 기록된 VoC를 샅샅이 찾아 읽었다.
VoC란 Voice of Customer의 약자로, 말 그대로 고객의 소리다. 잠재고객의 니즈나 지불의사, 현 고객이 말하는 제품에 대한 불만 등을 통칭한다. 회사 규모가 40명 가까이 되고 제품 개발과 운영 등 팀이 다양하게 나뉘어 있어 VoC를 수집하는 창구도 다양했다. 마케팅 팀과 가장 가까이 붙어서 일하는 Business Development 팀(=세일즈)이 보유한 VoC를 먼저 파악하기로 했다.
세일즈 팀에 문의해 VoC가 정리된 문서를 받은 뒤, 나름대로 분류를 해가며 읽었다. 오랜 기간 반복적으로 나오는 니즈는 무엇인지, 최근 6개월간 높은 빈도로 언급된 니즈는 무엇인지 감을 잡아나갔다. 프로덕트의 기능을 살피면서 니즈 중에 이미 해결된 것이 있는지 파악하고, 콘텐츠화해서 알릴 수 있을지 공책에 적어두었다. 궁금한 점이 있으면 눈치보지 않고 바로바로 질문을 남기기도 했다.
가장 도움이 많이 된 것은 각 팀의 리더가 외부 자문을 구한 커피챗 문서였다.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회사는 내가 입사하는 시기에 성장의 한 단계를 마무리하고 다음 단계로 나갈 첫걸음을 뗀 상태였다. 앞으로 공략하고자 하는 시장 관계자들의 니즈와, 회사가 겪을 성장 단계를 이미 겪어본 다른 기업 시니어들의 조언이 인터뷰 형식으로 담겨 있었다. 이를 기반으로 내가 앞으로 현재 단계에 어떤 콘텐츠를 만들어 기여할 수 있을지 한층 선명하게 방향성을 잡을 수 있었다.
예를 들면 기업 블로그 콘텐츠에서 다룰 주제의 우선순위를 결정할 수 있었다. B2B 기업에서 운영하는 블로그는 주로 고객사례, 제품 활용 방법, 조직문화, 기술 소개, 회사 소식을 주제로 꾸려진다. 내가 단순히 ‘기업 블로그 운영만 꾸준히 해주시면 됩니다’ 하고 채용되었다면 이 주제를 모두 다루고자 했겠지만, 회사의 전략에 맞게 몇몇 주제는 의도적으로 제작 우선순위를 낮춰야 했다. 예를 들면 인재 채용에 기여하는 조직문화 콘텐츠가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각 팀이 어떤 역할을 담당하는지, 회사의 세부 히스토리는 어떤지 한결 해상도 높게 파악했다. A팀에 문의했는데 B팀이 더 잘 안다며 안내해주거나, 이미 진행한 바 있는 태스크라며 노션 페이지를 공유해준다든가 하는 식이다. 이렇게 하면 내가 어떤 업무를 하는지 ‘showing’이 가능하기도 하다. 자연스레 티낸다는 뜻인데,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사람이 메신저에서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면 ‘이 사람 적응하려고 열심히 하는구나’, ‘오 벌써 여기까지 파악했어?’ 하는 인식을 기존 멤버들에게 자연스레 심어줄 수 있다.
콘텐츠 제작 퍼포먼스를 보이는 일 또한 신경쓰였다. 콘텐츠 리더까지 해본 에디터인데 왠지 처음부터 홈런 한 방 수준의 성과를 보여줘야 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뉴닉에서 신규 에디터에게 그렇게 작은 성취(스몰윈)부터 하자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말해놓고, 나도 막상 어느 정도 증명해야 상황이 오니 어쩔 수 없구나 싶었다.
그래도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콘텐츠 에디터라면 기본적으로 해야 할 업무가 하나씩 주어졌다. 차근차근 해보며 적응도를 높일 수 있었다.
편집까지 마무리된 콘텐츠를 CMS에 업로드했다. 콘텐츠 업로드 형식을 동기화하고, 콘텐츠 관리를 위해 읽어야 하는 매뉴얼을 자세히 읽을 기회이기도 했다.
다른 팀원이 작성한 기술 소개 콘텐츠 초안을 3교에 걸쳐 편집해 완성도를 높였다. 팀원이 쓴 콘텐츠를 편집할 때 개입도를 어느 정도까지 올릴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개인보호 정책과 관련된 콘텐츠를 직접 기획하고 썼다. 디자이너에게 이미지 제작을 요청하며 합을 한번 맞춰보고, 콘텐츠 작성 능력을 팀에 어필할 수 있었다.
쓰기, 편집하기, 업로드하기. 에디터라면 기초적으로 해야 할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 메이아이에서의 콘텐츠 제작 환경에 익숙해질 수 있었다. 처음부터 홈런을 치지 않아도 온보딩 기간의 성과로 여길 만한 일이었다. 그라운드에 적응해야 홈런을 치든, 출루를 하든 하지 싶었다. 위의 세 가지 업무를 하는 데 1주씩 걸렸고(주 1회 업로드), 이 과정이 지나니 온보딩 1개월 차가 거의 다 되어 있었다.
온보딩 1개월이 좀 넘었을 때에는 ‘콘텐츠 상담소’를 열었다. 내가 입사하기 전, 우리 팀에 콘텐츠를 작성하겠다고 약속해놓은 팀원이 ‘자진 신고’하라는 용도였다. 내가 쓰면 좋을 소재를 제보받기도 했다. 이를 통해 콘텐츠 소재를 확보해 향후 한 달 반 동안 업로드 일정을 짤 수 있었다. 단순 편집과 작성을 넘어 콘텐츠 일정 관리까지 나아간 것이다.
콘텐츠 기획을 처음부터 진행해서 제품 팀 팀원에게 청탁하고 마무리하는 작업까지 하는 기회도 생겼다. 편집자가 작가와 미팅하듯 콘텐츠 소재와 방향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마감을 정했다. 진행 과정 중간 중간 콘텐츠 작성에 어려움은 없는지 체크했고, 팀원의 본래 업무가 바빠져 진척이 더딘 상황이 됐을 땐 중간에 넘겨받아 직접 써서 완성했다. IT 기업의 원앤온리 에디터로서 콘텐츠 제작을 어느 정도로 리딩해야 하는지 파악할 수 있는 과정이었다.
맥가이버 칼 같은 존재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콘텐츠 주제 발굴과 일정 관리, 약간의 고스트 라이팅에 더해, 편집하거나 직접 쓰는 기초 업무, 채널 업로드 및 콘텐츠 데이터 모니터링 등등까지. 그간 커리어를 쌓으며 해온 업무를 총집합해서 알맞게 꺼내 써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타트업 에디터가 온보딩 과정에 지향해야 할 일을 한 줄로 정리하면 이렇다. VoC을 파악해 콘텐츠 소재를 발굴하고, 콘텐츠 제작 단계를 하나씩 밟아보며 콘텐츠 에디터로서 조직에 적응한다. 앞으로 해나갈 업무도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고객의 문제를 콘텐츠라는 솔루션으로 해결하는 것.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는, 제품 도입을 고민하는 잠재 고객을 콘텐츠라는 수단으로 콕콕 찌르는 역할을 계속할 예정이다. 기업 블로그를 통해 ‘당신 회사의 문제를 우리가 해결해줄 수 있다’고 어필하는 것이다. 콘텐츠가 메인 제품인 B2C 스타트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디에 소속되어 일하든 스타트업 에디터로서 일하는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