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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 기록자 Mar 19. 2020

두 번째 시도만의 넋두리

나는나인요가 #2

마음 같아서는 6개월 정도 끊고 싶었다.


첫 번째 수업이 너무 좋아서 등록하겠다고 마음은 먹었는데, 기간을 길게 잡을수록 할인율이 좋아서 지를까 하다가 남편과 상의 끝에 우선 한 달만 해보기로.

횟수도 빵빵한 의욕으로 주 3회 하려다 역시 남편 만류로 2회로 타협.

8번 수업 중 오늘이 첫 번째였으니 앞으로 한 달간  몇 번이나 가는지 봐야겠다. ‘역시 남편이 옳았어’ 하긴 싫으니 열심히 다니는 것으로!


센터에 갔더니 지난번 상담한 쌤이 아닌 다른 쌤이 계셨다. 사정이 있어 오늘만 오셨다고. 내 또래 쌤이 와 있으니 왜인지 긴장되었다.


오늘 수업은 조촐한 규모로 진행되었다. 아주 조용하게.


요가하기 전에 조금이라도 소화가 되라고 퇴근하자마자 밥을 먹었는데, 여전히 속에서 짜장면이 부룩부룩 소화되는 것이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산만하다 느껴졌다. 어느 동작 하나 낯설지 않은 것이 없었다. 자세가 편하지도 않았다. 기구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아, 나랑은 안 맞나- 싶어 후회가 번지려는 찰나, 동작의 마무리 단계쯤부터 솔솔 잠이 오기 시작했다. 감기는 눈을 이따금씩 떠가며 몽롱한 채로 수업을 들었다.


그렇게 1시간이 길다면 길게, 또 짧다면 너무 짧게 끝나버렸다. 참을 수 없는 졸음이 몰려와 무거운 눈꺼풀, 반면 가벼워진 몸으로 느릿느릿 옷을 꿰입고 나왔다.


역시 나갈 채비를 하고 있던 쌤이 오늘 어땠냐고 묻는다. '힘들었어요'하고 솔직하게 털어놓자, 그럴 거라며, 여러 동작을 만들어내는 요가가 더 잘 맞는 몸이라고 했다. 엥? 내가?


그래, 오늘 수업중에 자꾸 짜증 났던 이유도, 지금껏 요가를 해오면서는 힘을 잔뜩 준 채로 자세를 만들기 위해 애써왔는데 그걸 자꾸 놓으라고 하니까, 어찌할 바를 몰라 막막했기 때문인 것 같다.


나처럼 몸이 뻣뻣하고 근력이 부족한, 한 마디로 '총체적 난국'인 몸을 가진 사람들에게 요가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기본이 안 되어있는데 쌤들이 자꾸 '이상향'에 가까운 동작을 향해 가도록 이끌기 때문이다.


몸을 바닥에 안정적으로 지탱하고, 척추를 바르게 세운 뒤에야 비틀기든 전굴이든 후굴이든 할 수 있는데, 나처럼 바르게 앉는 것조차 어려운 사람들한테는 제대로 앉는 법부터 알려줘야, 그리고 그렇게 앉을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을 두고 기다려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많은 쌤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게, 모르겠다. 너무 안주하는 경향의 사람들을 푸시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고(누군가는 그런 푸시를 또 바라니까), 그들 자신은 한 번도 그렇게 맘처럼 잘 움직이지 않는 신체를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에 애초에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그래서 늘 '이상'과 '기본' 사이에서 낑낑대며 안간힘을 써왔던 내게 '정답은 없다', '몸이 편한 대로 하면 된다'고 하니 막막할 수밖에. 정답에 끼워 맞추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이해되는데, 그래도 어딘가 정답에 가까운 어떤 것이 있긴 하지 않냐고요.


그리고 계속하다 보면 금세 편해질 거라는 이야기도 했는데, 글쎄. 처음 만나는 자세에서 어느 부위에 집중해야 하는지 빨리 익숙해져서 효율적으로 도구를 사용하고, 그리하여 편한 자세를 빨리 찾아가고 싶다. 마음이 조급해진다.



그럼에도 요가는 기분을 너무너무 좋게 만들어서 나는 1.5정류장을 걸어 버스를 탔으며, 집에 가는 길에 들른 카페에서 차 한잔을 하며 이렇게 요가 일지를 쓰고 있다.


곧은 자세를 유지하려던 관성 같은 것이 남아 있어 허리를 곧게 펴고, 목과 어깨의 긴장을 빼려 노력하며 앉아 있는 기분이 참 좋다.



차만 마시고 휘낭시에는 포장하려고 했는데 어맛, 포장지를 뜯어주셨네? 그렇담 기쁘게 먹고 가는 걸로 :)



내게 일어나는 변화, 내가 느끼는 모든 기분, 생각을 놓치지 않고 그러모으느라 머리가, 손이 바쁘다. 머리가 핑핑 도는 것 같다. 좋은 의미로. 그래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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