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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 기록자 Nov 11. 2020

임산부 배려석 따위 없어져버렸으면 좋겠다

당신의 가족이라도 모른 척하실 건가요?

지하철이 플랫폼으로 진입한다.
두근두근. 과연 오늘은 자리가 있을까.

처음 임산부 배지를 달고 지하철에 탈 때는 괜히 데면데면 어색하게 핑크색 자리를 찾아 앉았더랬다. 그런데 며칠이 채 지나지 않아 자리가 비어있기만을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꼭 앉고 싶어서라기 보다는, 앉을 권리를 빼앗기는 것 같은 기분이 싫어서랄까. 누군가는 별것 아닌 걸 갖고 일희일비한다고 하겠지만, 자리가 있으면 기쁘고 누군가 앉아있으면, 특히 남성이 앉아있으면 화가 난다.


임신하셨어요...?
뒤에 분홍색 스티커 안 보이세요...?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머리통을 혹은 비져나와있는 발을 그냥 확 차주고 싶다.


그렇다고 그 사람을 톡톡 치고 자리 좀 양보해줄 수 있겠냐고 물을 용기가 내겐 없다. 그런 스스로를 탓하며 서있으려니 임산부 배려석이고 뭐고, 그냥 이런 거 다 없어져버렸으면 좋겠다는 바보 같은 생각도 든다.


임산부 배지를 더 잘 보이게 흔들어야 하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날이 다르게 무거워지는 몸으로 출퇴근을 해야만 하는 내 처지가 서럽다. 마음이 좀 박한 날에는 ‘어쩌다 내가 임신을 해서...’하는 못난 생각으로까지 이어지는데 그럼 그게 또 얼마나 속상한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임산부의 마음이 이렇게 시끄러운지 사람들은 알까. 아마 모르겠지. 불과 4개월 전만 해도 나도 몰랐는걸.


내내 서서 와서 피곤한 건지, 서서 올 수밖에 없어서 마음이 피곤한 건지. 유난히 힘들었던 퇴근길의 감상.


임산부 배려석, 빈자리가 있을 땐 비워두고, 임산부 아닌 사람이 앉을 땐 주위를 좀 둘러보기라도 합시다.


‘싫은데? 난 배려 안 할 건데?’한다면 뭐 더 이상 할 말은 없습니다만-.




다음 글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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