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린 미풍에도 살랑살랑 흔들리는 섬세한 식물
내가 어렸던 시절부터 우리집 베란다는 늘 식물들로 가득했다.
실내공기정화를 위해 집마다 하나씩은 있다는 고무나무부터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남천, 빨간 열매가 귀여운 만냥금, 겨울에도 꽃을 볼 수 있는 동백, 천장부터 벽을 덮는 아이비, 실내에 들여놓기만 해도 집을 휴양지로 만들어주는 테이블 야자, 마치 보랏빛 나비가 앉은 듯한 모양의 사랑초, 천리까지 향이 퍼진다는 천리향, 한국에선 좀처럼 구하기 힘들다는 커피나무까지 종류는 다양했다. (최근에는 유칼립투스를 들여오셨다.)
부모님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화분들을 실내로 들여왔다, 내놨다 하시며 애지중지 키우셨고,
다른 집에 비해 도시 간 이사가 꽤 잦았는데도 집을 옮길 때마다 화분들을 차에 직접 실어 옮기곤 하셨으며,
혹시 여행이라도 가시게 되면 나에게 물주는 것을 잊지 말라며 신신당부를 하시곤 했다.
그랬기에 나에게 식물은 늘 일상에서 가까이 있는, 하지만 내가 아닌 부모님이 키우는, 마치 동생이자 반려동물같은 존재였다. 아, 물론 나도 가끔 키우긴 했었다. 엄마가 사줬던 행운목, 친구가 선물로 줬던 히아신스, 하얀 꽃잎이 예뻐서 샀던 백합, 전복껍질로 양분까지 챙겨주며 애정을 담아 키웠던 바질 화분. 비록 한시절 키우고 말았고, 개수가 많진 않았지만 언제였든지 간에 식물들을 사는데 딱히 망설임들은 없었던 것 같다.
본격적으로 식물을 키우기 시작한 것은 베를린에 와서 살기 시작한 후부터였다. 처음 살았던 집에 운좋게도 발코니가 있었기 때문에 마침 환경도 적합했고, 흙을 사와서(독일은 마트에서 흙을 판다) 자급자족의 꿈을 안고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방울토마토와 깻잎, 고수, 바질 씨앗을 계란판과 플라스틱 포장용기에 나눠심었더랬다. 옥탑이었던지라 볕도 잘 들었고, 비가 오면 비가 오는대로,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대로 식물들은 자연스럽게 잘 자라서 나의 일용할 양식이 되었다...ㅎㅎ
양식 목적이 아닌 관상용 식물을 데려오기 시작한 것은 지금 사는 집에 이사오고 나서부터이다. 아보카도를 먹고 나서 씨앗을 심었더니 잘 자라길래 하나둘씩 심기 시작한 것이 크기가 점점 커지더니 거의 나무수준이 되어 울창해졌다. 너무 많기도 하고 화분도 줄일 겸 다른 집에 선물로 주기도 하면서 식물이 공간에 주는 분위기를 점점 즐기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화분에 물주는 일이 모닝루틴으로 자리잡은 이후 어느날 동네 산책을 하다 우연히 발견한 꽃집에서 처음으로 작은 화분을 데려오게 되었는데, 그것이 아디안텀이었다.
Adiantum 아디안텀은 Maidenhair fern 여성의 머리카락이라고도 하며,
젖지 않는다는 의미의 Adiantos라는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그 이름처럼 촘촘한 작은 잎들에 물을 흠뻑 뿌려도
젖지 않고 물을 튕겨버리는 특성이 있다.
잎의 모양이 마치 공작새가 꼬리를 펼친 모습과 비슷해 공작고사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줄기는 초록잎과 달리 갈색으로, 철사처럼 광택이 나며 가늘지만 딱딱하다. 꽃말은 Secrecy, 비밀 엄수라고 한다.
고사리과인 아디안텀은 Annual Plant 일년생이며, 남아메리카가 원산지로 고온다습한 열대나 아열대 기후에 적합한 식물이다. 열대와 온대에 걸쳐서 약 200여 종이 있고, 내가 키우고 있는 Adiantum Raddianum 아디안텀 라디아넘이 가장 일반적인 종으로, 최적 온도는 20 - 25도이며 최하 온도는 13도라고 한다.
거의 모든 식물이 그렇듯 직사광선보다 간접광이 좋으며, 물빠짐이 좋은 흙에 심어 늘 촉촉하게 유지해줘야 한다. 이러한 특징 덕분에 현재 실내의 온도나 습도가 어떤 상태인지 알려주기도 한다. 통풍이 잘되도록 해야함과 동시에 찬바람은 피해줘야 하며, 여름에는 하루에 한번, 겨울에는 3-4일에 한번 물을 주며, 평소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면서 규칙적으로 물을 줘야 한다. 조금만 건조해도 여린 잎들이 말라버리고, 물기가 빠지지않으면 뿌리가 상하는 등 키우기엔 상당히 까다로운 아이임에는 틀림없지만, 그 작고 얇은 촘촘한 잎사귀가 살랑이는 바람에 살짝 흔들거리는 것을 보면 왠지 돌봐줘야 할 것 같은 보호본능이 일어난다.
* 주의
- 분갈이를 하지 않고 한 화분에서 오랫동안 키우면 흙에 무기염류가 축적되어 잎이 모두 말라버리는 경우가 발생하므로 적어도 1년에 한번씩은 새 화분으로 갈아주는 것이 좋다.
- 새잎들을 위해 갈변한 잎들을 잘라내버리면 새잎이 더디게 나오거나 죽는 경우가 다수 있다.
- 잎에 반점이 생기면 병충해가 발생한 것. 특히 겨울에 물을 너무 많이 주면 회색곰팡이 병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증상이 보여지는 즉시 발생부위를 잘라내야 한다.
이렇게 처음으로 데려온 아디안텀 화분은 아직까지 집 부엌 한 켠에 고이 잘 있다. 다만 저 주의사항을 몰라서 갈변한 잎들을 잘라내버렸더니 새잎이 드문드문 더디게 나면서 지금은 겨우 숨이 붙어있는 정도이다. 물론 화분갈이를 해줘야한다는 것도 몰랐으니 너무 무지했던 거다.
처음 들여왔을 때만 해도 그렇게 무성하던 잎들이 사라지고 거의 대머리(?)가 되어버린 그녀를 살리기 위해 나는 새로 (무려 1년반이 넘은 뒤에야) 화분갈이를 해주고,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이 글은 그 정보들을 수집하기 위함이며, 생애 처음 낯선 곳에서 살고 있는 나에게 정붙일 집같은 느낌을 주는 아이들을 하나하나 기억에 남기고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쓰는 기록이다. 아디안텀을 시작으로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내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