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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김 Jul 25. 2021

주변의 비건들

S는 베지테리언이다. 전 인구의 20-40%가 채식주의자인 걸로 유명한 인도사람이다. 그녀는 종교적인 이유로 고기를 먹지 않는다. 술도 거의 먹지 않는데 그 역시 종교적인 이유일 것이라 짐작하고 있다. (아니면 잘 못 먹거나) 우리는 어학원에서 알게되어 지금까지 친구로 지내고 있다. 처음에 그녀가 베지테리언인 것을 알았을때 나는 호기심에 이런저런 질문들을 던졌더랬다. 고기를 아예 먹어본 적이 없는지,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진 않는지 등의. 그녀는 특유의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어릴 때에는 먹어본 적이 있지만 거의 없으며, 부모님들도 역시 종교상의 이유로 채식을 하기 때문에 주변에서 고기를 접할 일이 없어 딱히 생각이 없노라고 대답해주었다. 그녀 덕분에 그동안 서로의 집에 초대하고 오가면서 비건 옵션을 고려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내가 초대할 때에는 채식 요리를 따로 준비하고, 그녀의 집에 갈 때에는 채식요리가 있겠거니 하고 생각한다. 인도사람들은 대부분 베지테리언일줄 알았는데, 그녀의 남편도 인도사람이지만 베지테리언이 아니다. 하지만 주로 S가 요리를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식사는 채식이 될테다. 고기가 먹고싶을 땐 어떻게 하냐는 질문에 그는 웃으며 밖에서 친구들과 만날 때 해결한다고 대답했었다. 코로나 시기에는 어떻게 했을지... 나중에 한번 물어봐야겠다.

M은 페스코테리언이다. 친구의 회사동료였던 그는 한국 문화와 한국어에 관심이 많았다. 2년 전 쯤의 겨울에 한국문화원에서 주관하는 재즈콘서트 티켓이 생겨 함께 갔었다. 가기 전 배를 채우러 한 멕시칸 타코집에 갔을때 그가 채식 메뉴를 시키는 것을 보곤 무의식적으로 베지테리언이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페스코테리언이라고 답했다. 육류는 먹지 않지만 어류를 먹는 것은 허용한다는 뜻이다. 평소 환경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은 그는 어딜 가든 자전거를 타고 다녔으며 심지어는 크리스마스 파티 때조차도 땀을 흠뻑 흘리며 자전거를 타고 와서는 샤워 좀 해도 되겠냐고 물었었다. 그의 가방에는 늘 여벌의 옷이 들어있었다. 언젠가 한국 음식 중에 가장 좋아하는 게 뭐냐고 물었더니 매운탕이라고 해서 함께 끓여먹은 적이 있다. 그전까지 나는 매운탕을 어디에서도 즐겨본 적이 없었다. 횟집을 가면 마지막에 보통은 매운탕이 나오지만 나는 항상 매운탕보다는 지리탕을 선호했더랬다. 그런데 직접 요리를 해보니 생각보다 쉬운데다 특히 추운 겨울에 은근히 몸을 데울 수 있는 별미인 것이었다. 더이상 그를 만날 일은 없겠지만 매운탕하면 떠오르는 사람이다.

K는 태어날때부터 비건으로 살아왔다고 했다. 어느날 탄뎀 어플에 외국어를 배우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했더니 공감을 표하는 연락이 오면서 알게 된 친구이다. 우리는 매주 수요일과 일요일마다 30분, 아니 거의 한시간씩 통화를 한다. 사회심리학을 전공한 그녀는 사람들의 관계에 관심이 많고 연애 관계에 대한 주제로 학사 논문을 쓰고 있다. 우리는 매우 광범위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데 둘다 호기심이 많아 대화가 끊이질 않는다. (그래서 30분이 한시간이 된다) 부모님 모두 비건인 그녀는 꽤 어릴 때부터 비건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며 이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듯했다. 무신론자라 종교도 없고, 환경적인 이슈에 대한 관심도 꽤 있어보이긴 하지만 무엇보다 습관과 일상에 이미 깊이 뿌리박혀 그녀의 삶에서는 고기를 생각하는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N은 최근에 채식을 시작했다. 일 때문이다. 그는 최근에 베를린에서 유명한 한 채식 까페를 양도받아 계약했다. 말이 까페지 거의 식당이다. 채식 식당을 운영하면서 육식을 한다는 것은 철학에 어긋날 수 있고, 밖에서 혹시나 고기를 먹는 모습이 손님의 눈에 띄면 주변에서 말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아예 채식을 하기로 했단다. 얼굴을 보니 그래도 멀쩡해서 다행인데 계속 허기가 진다고 하는 걸 보니 왠지 곧 부작용이 올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 모두를 위해 그에게 치팅데이를 권장하고 싶다.

나는 플렉시테리언이다. 채식위주자, 라고 나는 말한다. 유동적으로 채식을 하는 사람이다. 내가 채식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엄마 덕분이다. 어릴때부터 우리 집에는 몸에 좋지 않다며 푸른마을에서 온갖 대체고기와 감자라면을 사다두셨고, 간식따위는 집에 있던 적이 잘 없었다. 커서는 둘이 함께 서울에 몇 개 안되는 채식식당이나 부페를 찾아가 먹곤 했다. 그래서인지 어릴 때부터 (남들의 묘사에 따르면) 할머니 입맛을 유지해왔다. 달달한 초콜렛보다 고소한 견과류를 좋아하고, 때로는 비스킷이나 빵대신 감자를 쪄먹는 걸 좋아한다. 내가 채식을 즐기는 이유는 솔직히 말해서 종교적인 이유도, 환경적인 이유도 아니다. 알러지도 없으니 건강상의 이유도 아니다. 단지 맛있어서이다. 고기도 물론 맛있지만 채소에는 더 다양한 재료 본연의 맛이 존재하는 것 같다. 유럽에 와서는 한국에선 보기 힘들었던 채식 메뉴가 식당마다 있어 호기심에 시켜보았었는데 뭐랄까 맛에 훨씬 정성들인 느낌? 아무래도 기존 음식에서 빠지는 것들이 있으니 그걸 다른 것으로, 기왕이면 건강한 것을 채우고자 하는 시도일 것이다. 여하튼 나에게 채식은 상실이라기보다 새로운 세계를 향한 호기심과 즐거움에 가깝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뭐라 결론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주변에 마침 모두가 다른 이유로 채식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 주절거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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