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재밌는 근력운동 없나
달리다 보면 알 수 있다. 사람이라는 동물은 늘 달려왔구나. 누가 시키지 않아도 뛸 수 있다. 페이스만 조절하면 오래, 멀리 뛸 수도 있다. 사냥을 하며 진화한 짬에서 오는 유전적 본능이 있는 것이다. 그렇게 달리다 보면 금방 오 킬로미터를 달릴 수 있는 사람이 된다.
그러나 십 킬로미터부터는 얘기가 달라진다. 물론 마라톤의 세계에서는 십 킬로미터까지도 펀 런(fun run), 그러니까 가볍게 뛰는 거리로 여겨지지만 초보 러너에게 십 킬로미터란 한 시간을 넘게 뛰어야 하는 거리이며, 불가능한 벽처럼 느껴진다(사람이 어떻게 한 시간을 쉬지 않고 뛰어!). 거리를 늘리기 어려우면 속도라도 붙어야 하는데 그것도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더 이상 사냥이 필요 없는, 현대인의 벽을 넘어서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어느 날 밤, 뛰던 내가 내린 답은 하나였다. 근육이 필요하다. 그것도 모든 운동에 필수라는 코어 근육이. 그래야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유산소 운동에 대한 특급 오해가 있다면 근육이 빠진다, 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달려온 내가 장담하건대 어떤 운동이든 하면 무조건 근육이 생긴다. 해당 부위를 계속해서 쓰는데, 당연하다. 그러나 그때 당시, 일 년도 달리지 않았던 러너의 허벅지와 종아리엔 당연히 드러나는 근육이 없었다. 무엇보다 나는 복근, 그러니까 코어가 갖고 싶었다. 매일 오래 앉아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 선망하는 것이기도 하다. 근육이 갖고 싶다, 생각하면 헬스장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내게 헬스장은 재미없는 곳이었다. 이미 겪어봤다. 시작하더라도 쉽게 그만둘 것 같았다.
마침 코로나19 때문에 재미를 추구할 수 있는 곳이 많이 사라졌다. 효율적으로 도파민을 얻으려 익스트림 스포츠를 찾아 나서는 사람들이 많았나 보다. 클라이밍이 조금씩 유행을 하기 시작했고 타이밍 좋게 회사 근처에 커다란 클라이밍장 - 그러니까 볼더링을 할 수 있는 곳이 생겼다. 내 몸의 무게 정도만을 벽에서 버텨야 하는 운동이라니, 게임처럼 운동을 할 수 있다니, 심지어 하나의 세션이 일 분 안에 끝난다니. 달리기와 정반대편에 있는 이 운동으로는 즐겁게 근육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로 초보자 클래스를 예약했다. 인기 있는 운동답게 퇴근과 맞아떨어지는 시간대에 클래스를 들으려면 한 달을 기다려야 했다. 오히려 좋아,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생겼으니까.
그리고 찾아온 대망의 클래스 당일. 내가 속한 초보자 클래스에는 총 여섯 명이 있었다. 나를 포함한 두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클라이밍 경력자였다. 선생님은 동작을 가르쳐주시고 돌아가며 해보도록 도와주셨다. 자신이 없어 마지막 순서로 가고만 싶었다. 그래도 어쨌든 내 차례는 돌아오니까. 발에 꽉 맞는 클라이밍화를 신고 매트에 올랐다.
그리고 나는 달달 떨며 벽에 매달렸다. 처음으로 홀드를 잡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