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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ㅎㅎ Aug 11. 2023

클라이밍 : 중력을 거스르는 운동

= 힘이 많이 드는 운동임을...

    러닝을 시작할 때와는 영 달랐다. 일단 발을 떼면 무조건 뛸 수 있는 러닝과 비교해 클라이밍은 부자연스러운 운동이다. 중력과 반대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고, 단시간에 힘을 많이 쓴다. 그러므로 가진 힘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동작이 존재한다. 홀드를 잡는 힘이 중요하니 자연스레 하체보다 상체 근력이 중요한데, 모든 사람은 상체 근력보다 하체 근력이 좋다. 다리와 팔의 두께 차이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겠다. 나도 물론 그렇다. 게다가 나는 코어가 없었고… 상체 근력은 당연히 더 없었다. 전완? 이두? 삼두…? 등근육……? 그게 다 뭔데요………? 클라이머들은 커진 전완근의 생김새를 두고 ‘고구마’라고 부른다던데 내 팔에는 고구마는커녕… 살 뿐이었다.


    그래도 기본자세는 할 수 있었다. 내가 클라이밍을 하겠다고 찾아간 곳은 ‘볼더링’이라는 종목을 주로 할 수 있는 곳이었다. ‘클라이밍’이라고 부르는 스포츠 클라이밍은 크게 세 가지 종목으로 나뉜다. 높은 벽을 빠르게 올라가는 스피드 클라이밍/로프로 안전을 확보해 다양한 난이도와 거리의 홀드를 잡고 제한 시간 내에 높은 곳까지 올라가는 리드 클라이밍/맨몸으로 비교적 낮은 벽을 올라가는 볼더링. 볼더링은 다른 종목에 비해 벽의 높이가 낮은 대신 홀드가 다양하고 동작이 다이내믹하다. 볼더링에서는 스타트 홀드에서 시작해 마지막의 탑 홀드까지 올라가는 것을 흔히 ‘문제를 푼다’라고 말하고 ‘문제’답게 난이도가 있다. 높은 난이도의 문제일수록 잡거나 밟기 어려운 홀드가 사용되고 당연히 동작도 어려워진다.

    볼더링 센터의 가장 첫 단계 문제는 나같은 좌식생활자도 풀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속한 반은 이상하게 실력자들이 많았고, 나는 앞서 말했다시피 하나를 익히려면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다. 일주일에 두 번 있던 수업에서 나는 순식간에 운동 최약체가 되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클라이밍을 해보지 않았기도 했고 운동 신경도 그닥이었지만 무엇보다도 손과 팔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클래스 사람들은 따뜻해서, 그리고 이제야 알지만,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타인에게 관대하다. 늘 응원을 하고 박수를 쳐준다. 내가 겨우 한 홀드를 더 나아 갈 때마다 아낌없는 칭찬을 해주었다. 그리고 나도 타인이 한 홀드 씩 어렵게 나아갈 때마다 진심으로 응원하는 마음이 됐다. 곧 이 운동은 남과 비교하는 게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벽만 공유하고 있다 뿐이지 모두에게 각자의 레벨이 존재했다. 이걸 깨닫기 전까지는 마음이 어려웠다. 즐거우려고 하는 운동에서 계속 스스로를 비교하고 남을 의식하게 됐다.


    결제를 했으니, 심지어 클라이밍슈즈도 샀으니 우는 소리를 하며 클래스를 들으러 갔다. 그리고 그날은 회사 일도 잘 풀리지 않고 어쩐지 기분이 계속 다운되었다. 돈을 냈으니 오긴 왔는데, 나는 어차피 잘 못하는 사람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한 홀드도 나아가지 못할 것 같다는 기분에 휩싸였다. 설상가상으로 선생님은 내 레벨보다 높은 문제를 이 날의 최종 과제로 제시했다. 난 못할거야, 생각하며 맨 마지막 차례로 빠졌다. 타인이 푸는 모습을 보면 풀이가 쉬워지기 때문에 벽에 등을 진 채 앉아, 여기 앉아있는 게 과연 맞는지에 대해 고민을 했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 같은 반 사람들이 하나 둘 성공한 후 벽에서 내려오고 내 차례가 되었다.

    운동의 신기한 점은 어쨌든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 다음으로 나아간다는 거다. 아래에서 봤을 땐 분명 어려워보였는데, 내가 할 수 있는 레벨이 아니었는데 어느새 나는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홀드에 도착해있었다. 내 힘으로 해낸거다. 그때 느꼈던 성취감이란. 기분이 단번에 좋아졌다. 내가 해본 것 중 가장 빠르게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행위였다. 클라이밍이란 이래서 하는 거구나, 이 재미가 있는 거구나. 이후에는 클래스를 가는 일이 조금 나아졌다.


   그렇게 꼬박 견뎌 남들의 반 정도를 하는 사람이 됐을 때는 클라이밍, 정확히 말하면 볼더링의 인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상태였다. 전염병이 돌아 헬스장이나 필레테스 스튜디오에 가해지는 규제가 상당했는데, 이상하게 클라이밍장에는 인원수 제한 외에는 딱히 규제가 없었다. 다른 운동을 할 수 없고 심지어 재미까지 있으니 사람이 몰렸다. 퇴근하고 클라이밍장에 가면 바글바글한 사람 때문에 입장을 기다려서 하거나 제대로 벽을 탈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내 실력과 이런 상황에 오기가 생긴 나는(비교를 안할래야 안 할 수가 없다. 같이 시작한 사람과 내가 다른 레벨의 문제를 풀고 있으면 화가 난다) 주말 아침 오픈시간에 가서 벽을 타기도 했다. 하다보니 팔에 근육도 붙고 더 높은 난이도의 문제를 풀 수도 있게 되었다. 

    

    그렇게 초급반 완강을 이 주 정도 앞둔 어느 휴일 아침, 욕심내서 내 실력보다 높은 난이도의 문제를 풀다 떨어지고 말았다. 그냥 떨어지는 건 늘 있는 일이라 당연했다. 그러나 그날 나는 떨어지며 듣고 말았다. 발목에서 들리는 청아한 소리… 인대가 나가면 팡!하는 맑은 소리가 난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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