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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ㅎㅎ Sep 12. 2023

클라이밍 : 그래도 해야지 어떡해

그래 클라이밍은 익스트림 스포츠였어

다음날 절뚝거리며 출근을 했다. 그때까지는 내 부상에 대한 자각이 크게 있지는 않았다. 통증이 사그라들지 않아 점심시간 근처 약국에서 보호대를 구매했다. 그때부턴 직장동료들이 다쳤냐고 물었다. 나는 어색하게 벽에서 떨어졌다는 대답만 반복했다. 그저 낫길 기다릴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든 건 오후시간부터였다. 업무를 하며 회사 근처 병원을 검색했다. 결국 퇴근 후 코 앞에 있는 정형외과에 갔다. 야간할증은 직장인의 숙명이라지. 한산한 정형외과에서 내 차례를 기다렸다. 곧 이름이 불려 발을 절며 진료실에 입장했다. 마주 앉은 선생님이 뭘 하다 다쳤냐 물었다.


클라이밍이라 답했다.

선생님은 ‘왜 그런 운동을…’이라는 표정을 지으셨다.

짐작컨대 정형외과 선생님이 싫어하는 운동 중 탑쓰리 안에 클라이밍이 있지 싶었다.


보호대를 벗기니 발목 쪽에 퍼렇게 멍이 들어있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인대가 터지면 피부로 멍이 올라온다. 심하게 다쳤다는 뜻이다. 다행히 뼈는 다치지 않았지만 반깁스를 해야 한다는 선생님의 제안에 나는 극구 안된다는 의사표시를 했다. 그런 두툼하고 단단한 기구로 발을 감싸고 클라이밍을 하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지금 그만두면 클라이밍과는 멀어질 거다. 그렇다. 초급반 완강은 하고 싶었다.


결국 깁스 없이 치료만 받았다. 이후에 몇 번의 정형외과행 이후에 알게 된 사실이 있다면, 정형외과 선생님들은 운동하다 다친 사람들은 어차피 다친 채로 계속 운동을 한다는 사실을 경험상 알고 계신 것 같다. 남은 초급반 강의도 쉬엄쉬엄 들었다. 따로 연습을 하지 못하니 실력이 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클라이밍의 기초는 배울 수 있었다. 그렇게 찬찬히 버텨 발목에 통증이 없어질 때쯤 클라이밍을 다시 열심히 했다. 물론 그 기간 동안 러닝은 하지 못했다. 러닝을 잘해보려고 시작한 운동인데 말이다. 마침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8월이기도 했어서 겸사겸사 쉬게 된 것 같기도 하다(이렇게 합리화하면 마음이 좀 낫다).


그렇게 반년을 지속한 후, 홀로는 도저히 늘지 않는 실력에 답답해하며 초급반의 다음 코스를 들었다. 그러다가 또 부상을 당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볼더링을 일 년 간 지속했다. 삼 개월차의 실력에서 더 나아가진 못했지만 그래도 계속했다. 서울 시내의 여러 볼더링장을 다녀보기도 했다. 실력이 늘지 않아도 꾸준히 지속했던 이유는, 러닝을 꾸준히 해봐서기도 하지만 초급반 첫 달에 느낀, 쉬운 성취감으로 상쾌해진 그 기분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클라이밍은 필연적으로 부상과 함께하는 운동이다. 익스트림 스포츠로 분류되는 운동에서는 다치지 않기가 더 어렵다. 이후에 깨닫게 된 건, 모든 운동이 그렇지만, 클라이밍은 더욱 조급할 필요가 없다. 클라이밍장에 꾸준히 다니다 보면 함께 시작한 사람들이 서서히 사라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단순히 클라이밍에 흥미를 잃어서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부상으로 사라진다. 빠르게 가려다 오래 멈추는 클라이머를 여럿 보았다.


하지만 이런 마음이라도 늘 같은 레벨에서만 머물 수는 없다. 사람이란 참 이상한 게, 앞으로 나가지 않으면 재미가 느껴지지 않는다. 일주일에 세 번을 가던 볼더링장에 두 번을 가고, 이젠 그만할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던 건 아무리 해도 늘지 않는 실력 때문이었다. 나보다 늦게 시작한 사람들이 곧장 더 어려운 문제를 풀었다. 내가 열 번째 실패하고 있는 문제를 남들은 쉽게 풀어내고 벽을 떠나버렸다. 내 몸놀림은 아무리 좋게 생각해 줘도 어색하기만 했다. 작은 키 탓을 해보려다가도 우리나라 최고의 클라이머가 나와 같은 신장이라는 사실을 상기하게 됐다. 아무리 욕심이 없다지만 이런 상태는 곤란했다. 열등감이 활력으로 이어지면 좋으련만 쉽게 자학이 됐다. 생활 체육 레벨에선 아무래도 재미가 없으면 지속할 이유가 없다.


그렇게 볼더링 실력이 꽤 오래 답보상태였을 때, 함께 이 운동을 하던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다. 그런데, 못 보던 사이에 이 친구의 몸놀림이 아주 달라진 거다. 그는 자신의 집 근처에서 근지구력 훈련 - 그러니까 리드 클라이밍에 알맞은 훈련을 하고 있다고 했다. 사실 관련한 내용은 이전에 여러 사람에게 들었다. 레벨업이 되지 않는다면 ‘지구력벽’에서 훈련을 해야 한다. 내 고민을 초급반 선생님에게 얘기했을 때 들었던 답변이기도 했다.


그때 깨달았다. 근지구력 훈련을 해야 하는구나. 볼더링만으로는 0에 수렴했던 상체 근력이 원하는 만큼 좋아지기란 불가능했다. 일 년이나 해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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