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얘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나는 운동을 잘 못한다.
라고 시작하는 운동 관련 얘기가 차고 넘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 문장으로 시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못하는(불가능이 아니라 기능의 잘과 못에 대한 얘기다) 나라도 이렇게 해내고 있으니 너도 할 수 있어! 의 종류는 아닐 것이다. 그냥, 얘기하고 싶은 거다. 지금 나에게 가장 재밌는 일은 운동이고, 사람은 누구나 내가 재밌어하는 것에 대해서만 떠들고 싶어 한다. 그러나 운동은 현대인에게 늘 과업처럼, 해내지 못한 숙제처럼 여겨지는 행위라 친구들을 붙잡고 말하기가 영 민망하다. 그러니 글이라도 써야만 하는 것이다.
운동을 좋아한다. 하지만 잘 못한다. 운동을 지속해 온 지난 이 년 간을 돌아봐도 역시 그렇다.
'운동을 잘한다'라고 하면 아무래도 운동 수행능력 - 그러니까 자세나 호흡 등을 정확히 해내는 능력이나 기록에 근거하는 것일 텐데 나는 둘 모두 영 잘 해내지 못한다. 한 가지 자세를 몸에 익히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기록이 빠르게 단축되지도 않는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나는 전형적인 ‘체육싫어학생’ 이었다. 운동회에 대표로 뽑힐 일은 당연히 없었고 체육시간이 다가오면 심드렁해졌다. 가장 싫은 건 피구였다. 공을 던져서 누굴 맞추는 것도 싫었고 맞기도 싫었다. 이 활동을 유난히 잘 해내는 친구들이 받는 스포트라이트를 방해하는 일은 더더욱 싫었다. 체력장은 그냥 보통 정도로 해냈다. 너무 못하거나 잘해서 특별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돌아보면, 수업이 싫었던 거였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수행하는 동작을 평가받고, 많은 학생들이 지켜보고, 그게 점수로 매겨지는 일을 어떻게 좋아할 수 있겠는가. 나는 어릴 때부터 잘 걷는 사람이었다. 바른 자세로 걷는다기보다는 걷기를 지루해하지 않을 수 있는, 그러니까 움직이는 몸으로 즐거워할 준비가 되어 있던 거다.
평가가 싫은 것과 별개로 나는 모범생이었다. 수행평가 시즌이 오면 나는 쉬는 시간마다 연습을 해야 했다. 무용도 그렇고 체육도 그랬다. 하나의 스텝을 해내는 일에, 공을 제대로 튀겨 올리기에 다른 사람보다 두 배의 시간이 들었다. 두 배의 시간을 들여 겨우 보통이 됐다.
덕분에 알게 된 면도 있다. 나는 몸으로 무언가를 해내려면 남들보다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는구나. 물론 이게 신체의 움직임에만 국한된 건 아니었지만, 머리가 쓰이는 것보다는 몸이 쓰이는 게 즉각적으로 보이니까 더욱 도드라졌겠지.
초, 중, 고를 거치는 십이 년 간의 학습 덕에 대학에 들어가고 성인이 되어서도 운동과는 먼 삶을 살았다. 그래픽디자인으로 먹고사는 일을 선택하는 바람에 하루의 반 이상을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으므로, 그리고 그게 진짜 잘하고 싶은 일이었어서 더욱 몸을 쓰지 않았다. 물론 그 기간 동안의 내 다짐도 모두의 새해 다짐과 동일해서, 무수한 운동을 시도해 보고 석 달 안에 실패하기를 반복했다. 그게 또 십 년짜리의 실패다. 그러니까, 장장 삼십 년 동안을 이렇게 살아온 거다.
그랬던 내가 어느 날, 주변 사람들 모두에게 ‘생활체육인’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잘 하지도 못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