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고 미루던 귀농을 시작하다.
"나 문경으로 갈 거야."
문경은 내 고향이다. 경상북도 북쪽 끝에 자리 잡고 있고, 충청북도와 맞닿아 있다. 문경새재라는 고개가 있는데, 조선시대에 선비들이 과거 시험을 보러 가기 위해 넘던 길이었다고 한다. 오래전 이야기지만, 그 길은 지금도 남아 있다. 그래서 문경은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묘하게 공존하는 곳이다. 그런 느낌을 좋아한다.
정확한 시점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대학을 졸업할 즈음이었을 거다. 그때부터 문경에서 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 마치 이유를 알 수 없는 꿈처럼, 그저 머릿속에 자리한 채 사라지지 않았다.
직장에서도 동료들은 내가 문경으로 가고 싶어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일에 소홀했던 건 아니다. 난 디지털 마케팅으로 커리어를 시작했고, 운이 좋게 몇몇 회사를 거쳐 마케팅 실장 자리까지 올랐다. 인정도 받았고, 성과도 있었다. 그런데도 늘 내 마음속에는 문경이 있었다.
하지만, 마음만 가지고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걸 나도 알고 있었다. 그냥 막연한 생각만으로는 문경에 갈 수 없었다. 그렇다고 직장을 덜컥 그만두는 건 더더욱 아니었다. 인생이 그렇게 쉽게 풀리진 않으니까.
그래서 스스로에게 말했다.
"할 수 있는 것부터 천천히 시작하자."
그렇게 나는 귀농을 준비했다. 주말이면 서울 근교의 농장을 찾아가 보기도 했고, 관련된 교육도 열심히 들었다. 코로나 때문이었는지, 정부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농업 교육 사이트에 콘텐츠가 많았다. 그렇게 하나하나 쌓여간 교육 시간은 어느덧 300시간에 달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교육을 듣는 것이 귀농 관련 국가지원사업 신청의 기본 요건이였다.)
오프라인 교육에도 참여했다. 가장 먼저 간 곳은 서울 용산에 있는 농업기술자협회에서 주관하는 귀농 교육이었다. 교육 참가자들은 모두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대부분은 은퇴 후 새로운 길을 찾는 사람들, 귀농을 고민하는 사람들이었다.
60세 즈음의 어느 참가자가 내게 말을 걸었다. "은퇴하고 나니 할 게 없네. 귀농도 생각하고 있는데,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고."
그의 말에는 묘한 공허함이 깔려 있었다. 서초동에 집도 있는 사람인데, 그렇게 열심히 살아왔으니 충분히 여유로워 보일 법도 했다. 하지만, 뭔가 방향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나름대로 잘 살았는데,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기분. 그런 사람들을 여러 명 만났다.
그리고 그때 문득 겁이 났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다음 기회는 없을지도 모른다. 지금 용기를 내지 않으면, 영영 못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