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지를 통째로 옮겨 놓은 독일 고고학의 저력과 야만성
2011년 경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바빌론 유적지를 여행할 때의 이야기다. 당시 바빌론 유적지 관리를 담당하고 있던 이라크 문화부 소속의 한 교수가 파란색 벽돌로 빛나는 바빌론 유적지 안내를 하면서 갑자기 독일 베를린 페르가몬 박물관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을 드러냈다.
"여기 바그다드에 있는 바빌론 이슈타르 성문은 가짜입니다. 19세기 독일 고고학자들이 성문을 통째로 뜯어갔습니다. 원래 유물은 지금 베를린에 있습니다."
바빌론의 거대한 성문 앞에서 믿어지지 않아서 잠시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도대체 성문을 어떻게 그대로 옮겨 갔을까? 이런 의문은 몇 년 후 고대 그리스 유적지들을 탐방하면서 또 한 번 들었다. 바로 튀르키에 밀레토스 유적지에서 사라진 거대한 시장으로 통하는 문을 역시 그대로 베를린으로 옮겨 갔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의 발상지라 불렸던 밀레토스에는 당대 최고의 지성인들이 모두 모여들었던 곳이기도 하다.
밀레토스를 포함한 고대 이오니아 지역은 동양과 서양의 문명을 결합하면서 눈부신 발전을 이뤘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이오니아 지역을 여행하고 앞선 문명에 감탄했다는 기록을 봐서 당대 서구 지성의 최전성기를 누렸던 곳이 분명하다. 그런 상징적 유적지의 거대한 성문을 분해해서 베를린으로 옮겼다는 것은 쉽게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튀르키에 이즈미르 지역에 있었던 페르가몬 제국의 제우스 대제단을 그대로 옮긴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독일 고고학자들은 어쨌든 그 불가능한 일을 해냈다.
이라크 바그다드 바빌론에서, 고대 그리스 이오니아 지역에 있었던 밀레토스와 페르가몬의 유적지 돌덩어리들을 하나하나 분해해서 독일로 옮긴 그 놀라운 정성, 덕분에 우리는 베를린 '페르가몬 박물관'에 가서 수천 년 전 고대 문명의 발상지를 눈앞에서 그대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한 편으로는 독일 고고학의 열정과 힘에 놀라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문명을 탐하는 권력의 야만성도 발견하게 된다. 19세기 오스만 제국이 어떤 이유에서 독일 고고학자들에게 이와 같은 문화재 발굴과 독일로의 이송에 합의했는지 정확한 것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추정해 볼 수 있는 것은 오스만 제국 말기의 혼란과 돈으로 매수된 관료들의 무능함이 빚어낸 결과가 아닐까 싶다. 여기에 이슬람과 기독교 문명 사이의 종교적 반목과 질시도 한몫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오스만 제국 입장에서는 경쟁 관계였던 고대 그리스 유적지를 보존하고 관리할 이유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2011년 경 고대 그리스 유적지들을 탐험하면서 마음속으로 고대 그리스 철학의 발상지였던 밀레토스에 도착해서 소똥과 말똥으로 넘쳐나던 황량한 유적지들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좀 아팠던 기억도 났다. 철학의 탄생을 알렸던 지성의 성지 밀레토스에는 유물이나 유적지를 보호하는 제대로 된 유리벽 하나 존재하지 않았다.
19세기라고 특별히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느꼈던 2011년의 방치된 밀레토스 유적지의 모습을 19세기 독일 고고학자들 역시 느끼지 않았을까? 물론 이렇게 생각하면 독일 고고학자들에 대한 일종의 면죄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문명을 지키고 보호한다는 것은 그것이 곧 인류 문명의 기원과 역사성을 간직하고 있는 중요한 근거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의 눈에는 찬란한 역사의 유물로도, 또 누군가에게는 황량한 대지 위에 버려진 돌덩어리 정도로밖에는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어쩌면 그런 차이가 베를린의 '페르가몬 박물관'을 만들어낸 차이일 것이다.
모순이겠지만, 고대 유물과 유적지들 속에는 제국주의와 힘에 근거한 야만성과 문명의 보존이라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속성이 교차하고 있는 것 같다. 베를린 페르가몬 박물관을 떠나면서도 그 두 가지 복잡한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