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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덕영 Apr 22. 2023

때로는 다큐멘터리 영화 한 편이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프랑스 다큐멘터리 '슬픔과 연민'처럼...

'때로는 다큐멘터리 영화 한 편이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2023년 4월 15일, '당신의 한 표가 세상을 바꾼다'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국회에서 상영되었다. 현역 의원 2명이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자리에 앉아 마지막 크레딧이 올라가는 것을 지켜 보았다.  


어떤 행사든 맨 앞에서 축사 한 마디 남긴 뒤, 단체 기념 사진 찍고 서둘러 자리를 떠나는 모습을 보았던 나로서는 그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그만큼 영화에 대한 뜨거운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한 편으로는 영화 자체가 완성도 있게 관객을 설득할 수 있도록 재밌게 구성되어 있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시사회 장에서는 영화 상영 내내 탄식과 울분, 박수와 함성 소리가 이어졌다. '선거'라는 어렵고 딱딱할 수 있는 소재를 가지고 감동과 재미를 불러 일으켰다는 관객들의 평가는 어떤 형태로든 감독 입장에서도 기쁘고 감사한 일이다. 


'때로는 그렇게 다큐멘터리 영화 한 편이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1971년 프랑스 파리의 극장에서 마르셀 오퓔스 감독의 <슬픔과 연민>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되었다. 영화는 '(나치) 점령하 어느 프랑스 도시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었다. 이 영화가 프랑스 지성계에 던진 충격은 실로 어마어마 했다.  


감독은 영화를 통해 2차 대전 당시 대다수 프랑스 국민이 나치에 저항하였고 부역자들은 소수에 국한되었다는 신화가 사실이 아님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당시의 프랑스인들 내부에 존재했던 저항과 부역이라는 증오와 갈등을 여과 없이 드러냄으로써 '통일된 프랑스 국민'이라는 신화를 부숴 버렸다.  


영화는 분명 프랑스인들에게 불편한 진실을 담고 있었다. 나치에 협조했던 비시 정권의 페탱에 열렬히 환호했던 바로 그 얼굴들이 얼마 후에는 해방된 파리를 진군하는 드골에 환호하는 모습이 화면에 교차되었다. 같은 얼굴이 한 번은 부역을 위해 환호하고, 또 한 번은 저항을 위해 열광하는 이중적 모습이었다. 


결국 두 모습 모두 프랑스의 얼굴이고 역사였다는 것을 영화는 부인하지 않는다. 그것은 독일 지배에 협력한 많은 사람들이 어떤 대의를 따른 것이 아니라 단지 승자 편에 섰던 것이었음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어떤 시대에나 총칼 앞에 저항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역설적이지만 그래서 저항은 영웅이 되고, 부역은 처단의 대상이 된다. 대한민국에서는 언제난 반일이 정답이 되고, 노재팬 운동 같은 선동의 '촛불'로 따올랐던 근원적인 힘이다. 일반 대중들 다수는 저항과 부역의 두 가지 모습을 함께 지니고 있는데, 그럼 대중들은 처단의 대상인가, 영웅의 속성을 지닌 존재들인가? 역시 답을 쉽게 할 수 없는 질문들이다. 


<비시 프랑스>라는 책을 쓴 미국 역사학자 팩스턴은 '저항과 협력이 하나의 행위 안에서 공존할 수 있다'면서, 조금은 역사의 사실 앞에 솔직해 질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의 책은 마르셀 오퓔스의 다큐멘터리 영화와 더불어 통일된 프랑스라는 신화의 전복을 이끈 두 개의 기둥으로 불린다.  


대한민국의 과거 역시 부역과 저항은 공존한다. 그게 사실이다. 일제에 저항한 사람도 있고, 어쩔 수 없이 협조한 사람들도 존재한다. 당시엔 총독부 직원이된다는 건 출세를 의미했고, 가문의 영광이기도 했다. 박완서는 자신의 소설을 통해 이런 사실들을 담담히 고백하고 있다.  


"발음하기 어려운 나의 이름 보쿠엔쇼보다 '하나코'나 '하루에'로 창씨개명한 같은 반 친구들의 이름이 부러웠다... 하지만 창씨개명이 강압적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거의가 자발적이었다는 뜻이다. 프랑스 비시 정부 아래 부역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그렇게 비슷한 지배의 역사를 경험한 두 나라지만, 프랑스의 독일에 대한 입장과 대한민국의 일본에 대한 입장이 다른 이유는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영화감독 루이 말은 논쟁에 가세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치에 협력한 자들은 특별한 악한이 아니었으며, 자신이 하는 일에 통제권이 없었던 불행한 개인이었다...저항하지 않았을 뿐, 적극적으로 협력하지도 않았다.'  

사실 그게 솔직한 평가다. 프랑스가 과거 나치 부역의 역사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솔직함이었다. 전후 통계에 의하면 프랑스 성인 인구의 2%만이 적극적 저항했고, 10% 정도만이 레지스탕스가 발행하는 지하신문을 읽고 있었다. 일제 시대 창씨개명에 참가한 한국인이 90퍼센트에 이른다는 통계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작가 시몬 베이유 역시 비시 프랑스를 평가하며, '몇몇은 잘 행동했고 몇몇은 나쁘게 행동했으며 다수는 두 가지를 동시에 했다'는 말로 프랑스인들의 저항과 부역을 솔직하게 평가했다. 사람 사는 일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했다. 


마르셀 오필스의 다큐멘터리 <슬픔과 연민>은 그렇게 프랑스 지성계에 자성을 촉구했다. 오로지 나치에 대한 저항만을 영웅시했던 신화에서 벗어나, 언론과 역사학계에 진지하게 과거를 성찰하고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프랑스 역사학계의 '되돌아보기 사조'가 탄생한 것은 그런 배경 때문이었다. 


때로는 그렇게 다큐멘터리 한 편이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영화 '당신의 한 표가 위험하다' 역시 어쩌면 그렇게 대한민국을 조금은 더 이성적이고 검증가능한 사회로 이끌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2020년 4월 15일, 대한민국 총선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리 모두가 부정의 가능성들을 진지하게 되돌아 보는 것은 미래를 향한 질문이기도 하다. 선거의 안정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하는... 그것 없이 민주주의는 존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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