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건국전쟁' 개봉 다이어리 3편
'그 나라에서 존경받는 것이 곧 그곳에서 양성될 것이다'
플라톤이 한 말이었다. 그의 말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의미 있는 문장으로 다가온다. 그 말이 그대로 우리 사회에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대중들의 가장 존경을 받았던 것은 '지혜'였다. 척박하고 거칠기만 한 그리스 땅에서 찬란한 문명이 탄생했다는 것 자체가 모순적이다. 인류의 4대 문명지라고 불리는 갠지스, 황하, 메소포타미아, 나일 문명까지 모두 거대한 강을 중심으로 발달했다.
그에 비하면 고대 아테네는 예외다. 강은 고사하고 하천조차 제대로 발달되어 있지 않다. 그리스를 여행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거친 황무지를 걸어가는 느낌이 든다. 여름 한나절에는 작열하는 태양의 열기 아래 숨이 막힐 정도다. 그런 기후에 살아남을 수 있는 올리브 나무 또한 이파리가 그리 넓지 않다. 겨우 몇 사람 그늘을 피할 정도다. 그런데 인류의 4대 문명보다 더 귀중한 자원을 우리에게 안겨줬다. 그것이 바로 '철학'이라는 선물이었다. 철학의 어원 자체가 '지혜에 대한 사랑'이란 것을 봐도 잘 알 수 있다. 그렇게 고대 그리스에서 철학이 탄생했다.
언젠가 고대 그리스의 유적지를 찾아서 한 달간 배낭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그 여행을 통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은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지혜'가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가를 확인 순간들이었다. 그리스인들은 탐욕스럽게 욕망을 추구하기보다 '지혜'를 찾아 여행을 떠났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지혜를 사랑하는 정신 또한 타락했다. 고대 그리스 최고의 현자이자 철학자였던 소크라테스에게 독배를 들게 한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라는 거대한 철학자를 탄생시키는 밑거름이기도 했다.
고대 로마의 역사를 보면, 그리스인들과 달리 로마인들이 얼마나 '힘'을 존경했는지를 알 수 있다. 힘에 대한 존경은 권력을 향한 의지로 변화했고, 그것은 곧 더 넓은 땅을 차지하기 위한 욕망이었다. 고대 그리스가 정신적 영토를 넓히는데 관심이 있었다면, 고대 로마는 실질적인 땅을 차지기 위한 전쟁에 몰두했다. 고대 로마 제국 또한 그렇게 탄생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사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것이 그 사회에서 양성되고, 결국엔 공동체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플라톤의 그 말은 매우 현실적이고 정확하다. 그렇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것은 무엇일까?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다 보면, 대한민국의 미래도 보일 것이다.
최근 '서울의 봄'이라는 12.12사태를 둘러싼 군부의 갈등을 소재로 한 영화가 인기다. 감독은 거듭해서 픽션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걸 단지 허구라고 믿는 대한민국 국민은 없다. 그게 허구라면 왜 주인공을 맡았던 황정민이 광주에 내려가서 굳이 눈물까지 흘리며 '늦게 찾아와서 죄송하다'고 말을 하겠는가.
게다가 몇 달 후면 또 한 번의 대한민국 정치 지형도를 뒤바꾸게 될 총선거가 있다. '길위의 김대중'이란 다큐멘터리 영화도 개봉한다고 하는데, 이 모든 걸 우연이고 단순한 해프닝이라고 보기엔 석연치 않다. 그냥 솔직히 총선을 겨냥해서,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군부 독재의 악몽을 떠올리게 만들고, 과거 우파 정권과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현 정부를 전복하겠다는 매우 구체적인 정치 전략에 따라 만들어졌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한 가지 분명히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서울의 봄'을 통해 영웅으로 부각된 장태완 장군(영화에서는 이태신 역)이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전두환 정부 산하 공기업 중 하나인 한국증권전산 사장으로 부임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나름 남은 여생을 편안하고 윤택하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감독이 자신의 영화를 허구라고 강조하고 싶은 것도 이런 뒤끝이 개운하지 않은 탓도 있을 것이다.
이 부분에서 한 가지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의 상상력 하나를 발동시켜 보고 싶다. 물론 이 또한 자기 멋대로의 허구이니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만약 전두광(전두환 대통령의 영화 속 인물)이 쿠데타를 일으키지 않았다면, 1979년 대한민국은 어떤 사회가 되었을까? 모두들 전두광을 욕하느라, 전두광 같은 존재가 없었으면 당시 한국 사회가 어떻게 돌아갔을까, 하는 상상은 할 여지가 없는 것 같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의 시해부터 12월 12일까지 그 두 달간의 시간은 어쩌면 대한민국의 운명을 뒤바꿀 엄청난 사건들이 잠재되어 있던 시간들이지 않았을까? 역사에서 가정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지만, 어쨌든 전두광이란 인물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엄청난 혼란과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어갔을 것이란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심지어 김재규와 그를 추종하는 세력들 혹은 정체불명의 제3세력들이 등장해서 나라를 혼란에 빠뜨릴 수도 있었다. 그건 이미 1960년에도 경험했던 일이다. 4.19혁명 이후 들어선 장면 정권은 지금까지 역사상 가장 무능한 정권이었다. 오죽했으면 4,19 부상자들이 국회 단상 위에 목발을 짚고 난동을 부릴 정도였으니 말해서 무엇할까.
민중의 힘으로 일으킨 혁명은 민중에게 빚을 지게 된다. 잔인한 보복과 피의 살육이 반복된다. 절체불명의 민중적 힘은 결국 나라를 망치는 망국의 근원이다. 프랑스 혁명을 비롯해서 모든 민중 혁명이 실패로 돌아간 이유도 거기에 있다. 프랑스조차 평가 절하하고 있는 프랑스 혁명을 자랑스러운 혁명의 유산이라며 가르치는 나라는 아마 대한민국이 유일할 것이다.
다시 플라톤의 말로 돌아가서 '그 나라에서 가장 존경받는 것이 그 나라에서 양성된다', 그 말은 곧 '민중의 혁명을 가장 존경하는 나라에서 정체불명의 민중 혁명이 양성된다'는 말이 된다. '서울의 봄' 역시 역설적이지만, 민중의 혁명을 부채질한다. 이미 그들의 민중 혁명은 한 번 성공한 적도 있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한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그렇기 때문에 '윤석열 탄핵'도 여전히 가능한 일이라 믿는다. 돌이켜 보면 박근혜 탄핵이 대통령을 탄핵시킬 만큼 심각하고 위중한 범죄였던가. 여기에 제대로 답을 하는 사람은 이제 없다.
이 시점에서 묻고 싶다. '당신은 대한민국이 민중 혁명의 나라라고 믿는가?' 그런 혁명적 유산을 반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믿는가? 혁명적 유산을 계승한 중국 공산당과 같은 나라에서 살고 싶은가? 플라톤의 가르침은 그래서 소름 끼치도록 현실과 맞닿아 있다. 지금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건국전쟁'은 우리가 가장 존경하고 존중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묻는다. 70여 년의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 속에서 저들이 감추고 왜곡했던 거짓 역사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감독은 '진실'이란 단어조차 쓰기를 거부한다. 진실은 결국 주관에 의해서 서로 다른 입장의 충돌만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이 모든 혼란을 잠재울 수 있는 것은 '사실'(Fact)이다. 과연 무엇이 사실이었는지, 정확하게 판단하기 위해서 우리는 역사적 자료들로 눈을 돌여야 한다.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한 가지 놀랍고도 흥미로운 일이 벌어졌다. 그건 문재인 정권과도 관련되어 있다. 2021년 문재인 정부 막바지에 4.3사태를 민중의 정당한 항쟁으로 둔갑시키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심지어 공영방송인 KBS에서는 '메이데이 제주'라는 희귀 필름을 발굴했다며 호들갑을 떨면서 '희생자' 중심으로 4.3사태를 보도했다. 그런데 '메이데이 제주'라는 희귀 필름을 자신들만 발굴했다고 오판한 것이 문제였다. 영화 '건국전쟁' 제작팀 역시 우연한 통로로 '메이데이 제주'의 필름 전체 원본을 확보할 수 있었다. KBS라는 거대 언론사가 발굴한 그 역사적 원본 필름을 운 좋게 한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또한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래서 전체 내용을 가감 없이 살펴볼 수 있었다. 저들은 자르고 가리고 숨긴 부분까지 속속들이 말이다. 그리고 정말 웃기지도 않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KBS는 희생자 중심의 보도를 위해서 두 명의 남자가 초라하게 경찰서 앞에 서 있는 장면을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위압적인 미군 앞에서 긴장한 듯 벌벌 떨며 겁에 질린 두 명의 남자'. 그런데 뒤이어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우리가 확보한 원본 필름에는 1948년 당시 촬영자가 구체적인 촬영 날짜와 장소, 그리고 그가 촬영한 내용들이 자세하게 적혀 있는 기록 노트가 발굴된 것이다. 아마 그 기록 노트는 KBS도 확보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기록 카드 원본에는 KBS가 미군 앞에서 벌벌 떨며 겁에 질려 있는 두 남성들에 대한 충격적인 설명이 첨부되어 있었다.
'두 명의 민간을 살해했다고 자백한 두 남자'
놀랍지 않은가. 어떻게 살인자가 한순간에 희생자로 변신을 할 수 있는가. 제작진은 그 원본 자료를 보고 눈을 의심했다. 도저히 믿기지 않았지만 그것이 사실이었다. 어떻게 이런 거짓말이 공중파 TV를 통해 방송될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도 대한민국 최고의 공영방송 KBS를 통해서 말이다. 만약 영화 '건국전쟁'을 통해 제주 4.3 '메이데이 제주'의 원본 필름이 확보되지 않았다면, 아무도 모르고 넘어갔을 일이었다. 당시 기자는 기록필름의 내용을 적은 데이터조차 확인하지 않고, 자기 멋대로 기자가 기사를 썼다는 뜻이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알면서도 자기 멋대로 사실을 날조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간다.
이것이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가짜가 진짜로 둔갑하는 방식이다. '서울의 봄' 역시 마찬가지다. 정우성이 폼나게 연기하는 정의(?)의 화신 이태신이 전두광 정권 아래에서 호의호식하며 살았다는 역사적 사실은 그저 자기들 멋대로 지워버릴 수 있는 역사의 지푸라기들일뿐이다. 사실이 아니라 허구라면, 왜 굳이 광주까지 가서 눈물을 흘리며 참회를 한다고 하는가. 멋대로 허구와 사실을 넘나드는 자들, 그렇게 '거짓말하는 사람'을 존경하는 나라, 거대한 탐욕과 거짓의 이데올로기가 양성되는 나라에서 진정 당신은 행복할 수 있는가?
저들은 믿기지 않겠지만, 영화 속 전두광 정권 아래서 대한민국은 가장 눈부신 고도 경제 성장을 이룩했다. 물론 저들은 그걸 믿고 싶지 않겠지만... 그래서 국민이 근면하고 성실해서 이룩했다고 말하고 싶겠지만, 그럼 전 세계 모든 나라가 근면하고 성실하면 다 선진국이 되어야 하지 않았을까? 부디 미몽의 잠에서 깨어나 현실을 직시하길 바란다.
영화 '건국전쟁'은 문화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압도적인 열세에 놓여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싸움은 여전히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사실'을 통해 거짓 이데올로기가 사라지고 건강한 상식이 올바르게 양성될 때까지 우리의 싸움은 계속될 것입니다. 많은 성원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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