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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덕영 Feb 01. 2024

 세상을 바꾸는 영화 한 편

영화 '건국전쟁' 개봉 다이어리 13편 

글. 김덕영 (영화 '건국전쟁' 감독)


아주 가끔이지만 다큐멘터리 영화 한 편이 세상을 바꿔놓기도 한다. 프랑스 68혁명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1969년 9월, <슬픔과 동정 Le chagrin et la pitie>이라는 제목을 달고 등장한 프랑스 다큐멘터리 영화 한 편이 프랑스 사회를 흔들어 놓았다. 


원래 TV방송을 목적으로 제작된 것이지만, 당시 얼마나 내용이 충격적이었는지 방송사는 방송을 취소했다. '나치 부역'에 관한 감독의 새로운 시선이 프랑스 국민들이 받아들이기엔 시기상조라 판단했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감독인 마르셀 오퓔스가 선택한 곳은 극장이었다. '점령 하 어느 프랑스 도시의 이야기'라는 부제에서 느껴지듯이 이 영화는 나치 점령 아래 프랑스의 도시에서 벌어졌던 저항과 부역이라는 민감한 소재를 들고 나왔다. 


감독은 영화를 통해 아주 솔직하게 '나치 부역'의 진실에 대해 증언한다. 당시 프랑스 국민 대다수가 나치에 부역하거나 심정적으로 동조했다는 불편한 사실을 여과 없이 등장시킨다. 영화 속에서 봤던 레지스탕스 신화는 지나치게 부풀려졌다는 결론이다. 위안부, 독립군 무장투쟁 등으로 상징되는 '반일' 레지스탕스 신화에 열광하는 대한민국 사회와 묘하게 대조를 이루는 부분이다. 


감독은 영화를 통해 비시 정부에 환호하던 나치 부역자들의 얼굴들이 얼마 후 반나치, 애국주의로 상징되는 드골에 환호하는 동일한 인물임을 그대로 여과 없이 드러낸다. 부역자나 저항자나 특별히 다른 존재들이 아니라는 솔직한 고백이다. 그런 현상은 일제 강점기와 해방을 겪는 과정에서 실제로 대한민국 사회에서도 일어났다. 친일파와 독립운동이라는 이분법적 틀을 벗어나 인간의 본성으로 이해하려는 점에서 우리의 현실과 다르다.


그래서 역사 청산이란 관점이 아니라, 그 역사 청산을 명목으로 프랑스 사회가 보여준 잔인함과 무모함을 고발한다. 역사 청산이라는 구호가 정치권에 흘러들어가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거부한다. 여전히 '친일파 청산'을 부르짖고 '반일'의 구호가 난무하는 대한민국의 현실 속에서 의미심장하게 되돌아보게 되는 지점이다. 적어도 프랑스에선 영화 <슬픔과 동정> 이후에 '반나치 청산'의 구호는 사라졌다. 우리처럼 일본을 정부가 나서서 반국가적 개념으로 형상화시킨 무모함도 없다. 그 변화의 시작에 마르셀 오퓔스 감독의 <슬픔과 동정>이란 작품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게 사실에 기초한 다큐멘터리 영화 한 편이 세상을 바꾼다.


'이승만을 죽여야 살 수 있었던 자들'


대한민국 건국 이후 지금까지 온갖 비난과 왜곡의 중심에 섰던 이승만에 관한 영화를 만들면서 한 가지 결심한 것은 '사실'에 대한 겸허한 반성이었다. 그것이 무엇이든 '사실'이 아니면 받아들이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만약 내가 믿고 있던 신념이 사실과 부딪칠 경우, 선택해야 할 것은 신념이 아니라 사실이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관점에서 3년 반의 시간 동안 이승만을 중심으로 벌어졌던 대한민국의 역사를 되돌아봤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반전이 일어났다. 우리 역사에 대한 무지에 통렬히 반성해야 했다. 그리고 사실을 왜곡시키고 거짓이 진실이 되게 만드는 과정에서 수많은 친북적 사고방식에 빠진 역사학자들이 존재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에게 이념의 고향은 남한이 아니라 북에 있었고, 역사의 정통성을 건 싸움에서 승자는 북한이었다. 무엇보다 그들이 저지른 가장 심각한 잘못은 바로 '사실'을 부정하고 왜곡시킨 것에 있다. 거짓을 사실로 둔갑시킨 역사의 반역자들이다. 


북한 입장에서만 놓고 본다면, 이승만 정권은 한반도 소비에트 공산화 프로젝트의 마지막에 모든 계획을 파탄시킨 장본인이다. 남과 북의 이념 대결에서 자신들에게 치명타를 안긴 용서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들에게 '이승만'은 철천지 원수였다. 남한의 경제적 번영과 한미동맹이라는 토대를 닦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오죽했으면 1995년 북한을 방문한 한 목사의 눈에 평양 거리 한복판에 '이승만 괴뢰 도당 타도'라는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가 들어왔을까. 아직도 북한은 '이승만' 타도의 구호 아래 통일 정책을 집행하고 있다는 뜻이다. 


슬픈 것은 이런 북한의 주장에 여과 없이 동조한 대한민국의 역사학자들이 권력과 손을 잡은 것에 있다. 권력화된 거짓 이론은 대한민국 사회를 송두리째 거짓의 공화국으로 몰고 갔다. 그들이 퍼붓는 비난과 왜곡의 화실이 집중된 곳 역시 '이승만'이란 과녁이었다. 그들은 소위 '우리민족끼리', 화해와 통일을 부르짖지만, 실제로는 북의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보조수단에 불과했다. 


'이승만'이란 존재를 악마화시키고, '이승만'이란 개념을 더럽히는 것이야말로 북의 입장에선 어느 시기에나 절실한 이념적 과제였다. 그것 없이 자신들이 늘 한반도 역사에서 우위에 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70여 년 동안 '이승만'이 철저하게 대한민국 역사에서 비난과 왜곡의 중심이 되어야 했던 비극의 시작이기도 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수많은 지식인들이 그 거짓의 역사를 알면서도 침묵했다. 


'사실만이 진실로 나아가는 길을 인도한다'


이승만의 복원은 그래서 대한민국 사회에 많은 의미를 갖는다. 대립과 갈등의 역사를 뛰어넘어 진정 선진화된 사회로 나아가는 길목에서 이승만에 대한 저주는 반드시 풀고 가야 할 숙제 같은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실'의 복원이다.


영화 '건국전쟁'에서 비중 있는 발언을 했던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그렉 브레진스키 교수는 한국인들을 위해 뼈 있는 중고를 한 마디 한다. 그는 한국이 더욱 성숙된 사회를 발전하기 위해서는 '1950,60년대 사실에 대한 철저한 원전 조사와 연구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한국과 같이 여전히 이데올로기적인 대립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사회에서 진정한 해결책은 오로지 '사실'로 복귀하는 것에 있다고 강조한다. 사실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걸 통해서 무엇이 옳은 것인지를 판단하라는 주문이었다. 그의 주문은 결국 친북 좌파 역사학자들, 이론가들에 대한 날 선 비판을 담고 있다. 


'한강다리를 끊고 자기 혼자 살겠다고 도망친 대통령, 런승만', '한강다리 폭파로 800명을 숨지게 한 죄인', '친일파 이승만 정권', '미국의 꼭두각시 이승만', 심지어 하와이 갱단 두목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사실에 대한 검증도 없는 온갖 거짓말들이 난무했다. 주로 인기를 끄는 유튜브 학원 강사들이 이런 거짓의 나팔수가 되었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선 이승만을 젊은 여성편력에 빠진 플레이보이라고까지 칭했다. 심지오 이승만이 그 일 때문에 기소까지 당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들이 근거로 내세운 '하와이 이민국 조서' 두 번째 페이지에 수사 담당관이 이승만을 보호해야 할 인물로 주장하고 있는 부분은 왜 이야기하지 않고 있는가? '이승만은 미국이 보호해야 할 중요한 인물'이라면서 수사를 담당한 검사가 이승만의 보증인이 되었다는 사실에는 왜 침묵하고 있는가? 그걸 몰랐다면, 그들은 무능한 역사학자들이다. 그걸 알고도 침묵했다면, 당신들은 역사의 범죄자들이다. 


'이승만이 수백만 달러를 스위스 비밀계좌에 넣고 하와이로 망명했다'고 경향신문은 보도했다. 비록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경향은 그 보도가 오보였음을 스스로 인정할 용기는 없는가? '똥은 비단보에 싸서 하와이로 보냈다'며 조롱했던 시인 구상과 동아일보 역시 그 비난이 지나쳤음을 사과할 용기는 없는가? 이승만의 역사를 복원하기 위해선 프랑스 사회처럼 우리 사회에서도 겸허한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 


그렇게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이 드디어 오늘 개봉을 한다. 전국 134개 극장이다. 누구나 어디에 있든 쉽게 영화관에 가서 진실이 담긴 영화를 볼 수 있다. 사람도 나이를 먹으면 키가 커져 새 옷을 입어야 하듯, 국가나 사회 역시 발전할수록 새로운 가치로 변화해야 한다. 그런 노력 없이 사회 공동체의 진정한 발전은 있을 수 없다. 영화 <건국전쟁>이 그 작은 출발이 되길 희망한다. 때론 그렇게 다큐멘터리 영화 한 편이 세상을 바꾸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나는 그걸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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