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전쟁' 개봉 다이어리 15편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봤다, 영화 <건국전쟁>
글. 김덕영 (영화 '건국전쟁' 감독)
작년 필리핀에서 영화 '건국전쟁'에 등장하는 토지개혁에 관한 부분을 취재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리서치를 하던 도중 한 가지 흥미로운 자료가 등장했다. 바로 요즘 화제의 주인공이 되고 있는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토지개혁에 관한 강연 내용이었다.
"개인적으로 저는 1950년의 농지개혁이야말로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오게 된 가장 결정적 장면 중 하나였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이게 없었더라면 대한민국은 지금과 많이 다른 나라였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현직 법무부장관의 입에서 이승만의 토지개혁에 관한 업적을 치하하는 발언이었다. 아마 1960년 4.19 이후 대한민국 국무위원으로서 이승만의 공적을 높게 평가하는 첫 번째 발언이었지 않나 싶다. 하지만 형식적인 의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의 발언이 지니는 무게였다.
"이 농지개혁이 만석꾼의 나라였던 대한민국을 이병철, 정주영, 구인회, 최종현 회장과 같은 여러분들의 선배 기업인들이자 대한민국의 영웅들이 혁신을 실현하고 마음껏 활약할 수 있는 기업인의 나라로 바꾸는 대전환의 계기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말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번영과 발전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를 명확히 하고 있다. 실제로 수많은 경제 전문가들은 대한민국의 기적과 같은 경제 발전의 원인을 토지개혁의 성공에서 찾고 있다. <아시아의 힘>이란 책을 쓴 조 스터드웰은 한국과 대만에서 토지개혁이 성공함으로써 지주 계급의 독점적 이해에서 벗어서 산업자본이 신속하게 육성될 수 있었다고 진단한다. 실제로 다른 동남아 국가들이 여전히 대지주와 소작농의 관계를 탈피하지 못하는 현실에 비하면 엄청난 차이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토지개혁은 단지 자작농의 등장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자기 땅을 가진 농민들은 피땀 흘려가며 농사를 지었고 그렇게 번 돈으로 자식들을 대학에 보낼 수 있었다. 토지개혁이 모든 사람들에게 '하면 된다'라는 정신을 불러일으켰고, 누구나 땀 흘려 일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줬다. 토지개혁이 교육혁명과 같은 국민들에게 미친 정신적 영향은 돈으로 환산할 수도 없는 막대한 것이다.
그렇다면 원점으로 돌아가서 그걸 누가 해냈는가, 하는 데 있다. 영화 '건국전쟁'은 그 주인공이 바로 이승만 대통령이었음을 명확히 한다. 시대를 앞서가는 탁월한 지도자 한 명이 나라의 운명을 바꾼 것이다. 실제로 필리핀의 경우엔 우리와 정반대다. 지난 10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거의 모든 정치 지도자들이 토지개혁을 시도했지만 성공한 경우는 하나도 없다. 이유가 뭘까?
결론부터 말하면 대통령부터 국회의원, 정관계 인사까지 모조리 대지주들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토지개혁을 실시하려고 해도 요리조리 법망을 피해서 토지개혁을 무력화시키는 또 다른 법안을 만들어 낸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토지개혁이 제대로 이뤄질 리 없다. 필리핀을 취재하는 동안 대한민국에서 벌어졌던 1949년의 토지개혁의 의미, 그리고 이승만의 탁월한 리더십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우리의 행복과 번영은 거저 얻은 것이 많다. 1945년 해방 자체도 따지고 보면 미국이 일제를 패망시킨 것이 결정적 원인이었다. 1948년 여성에게 부여된 투표권 역시 서구 사회와 비교해 보면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얻은 여성의 권리였다. 대한민국이 북한을 압도하고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앞서 나갈 수 있는 결정적 모멘텀이 되었던 1953년의 한미상호방위조약 역시 국제무대에서 오랜 경험을 갖고 있던 이승만의 개인플레이였다. 미국의 아이젠하워나 영국의 처칠, 소련의 스탈린조차도 몇 수는 발아래 둘 정도로 탁월한 정치 감각의 소유자였다. 하물며 30대 중반이었던 북한의 김일성은 상대조차 되지 않았다.
1960년대 필리핀은 일본의 뒤를 이을 아시아의 차세대 주자였다. 그런 필리핀이 현재까지도 1960년대에 머물고 있는 원인을 필리핀 마닐라대학의 타뎀 교수는 '토지개혁의 실패'에 원인이 있다고 명확히 말하고 있다. 2005년 한국을 방문했던 브라질 대통령 룰라는 브라질처럼 풍부한 자원을 가진 나라에 왜 5천만 명이 넘는 절대빈곤층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한국은 과거 1950년대에 농지개혁을 했지만 브라질은 그러지 못했고, 아직도 그것이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이쯤 되면 이승만의 토지개혁이 얼마나 우리에게 고맙고 위대한 것이었는지 실감이 갈 것이다. 영화 '건국전쟁'을 만들면서 개인적으로 내가 누리는 안락과 평화의 출발이 나라가 힘들고 어려웠던 고비의 순간마다 과감하게 정책적 결단을 실천에 옮긴 이승만의 리더십 덕분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말이 고마웠다. 그의 연설 장면을 영화에 넣은 것도 거기에 있다. 영화 시사회 초대장을 들고 여의도 당사를 찾아간 것이 지난 1월 4일이었다. '부디 한동훈 비대위원장에게 이 초대장이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간곡히 부탁을 하고 왔지만 국민의힘으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드디어 한 달을 조금 넘긴 어제 2월 12일, 그가 '건국전쟁'을 극장에서 봤다는 기사가 넘쳐 났다.
그가 영화를 어떻게 봤는지는 잘 모르겠다. '제가 영화에 나오던데요'라고 첫마디를 던지는 모습에서 한동훈 특유의 솔직함이 느껴졌다. 개인적으로도 그가 잘 되길 바란다. 부디 영화를 보며 시대를 앞서가는 이승만의 리더십과 정치 감각을 느꼈으면 좋겠다. 하지만 무엇보다 간절히 바라는 것은 현실 정치의 가장 유력한 차세대 대권 주자로서 이승만의 순수한 '애국심'을 그가 가슴에 간직하길 바란다. 영화 '건국전쟁'을 만든 감독이 추운 겨울 낯선 여의도 당사까지 찾아서 그에게 초대장을 전달하려고 했던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는 이승만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빚을 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