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banii Nov 19. 2018

평화학 공부하기@Innsbruck

나는 어쩌다 인스브루크로 왔을까?

내가 6년 넘게 살았던 다람살라나, 40일을 걸었던 산티아고 길에 관한 이야기는 사실 내 나름대로 기억을 정리하고, 기록을 남겨놓기 위해 쓴 것이다. 다람살라나 산티아고에 관한 정보는 인터넷으로, 책으로 엄청나게 많이 돌아다니고 있고, 예전이나 지금이나 많은 한국인들이 경험해 왔고, 경험하고 있다. 그러니까 내가 굳이 한마디 보태지 않아도 사회 전체로 볼 때는 큰 손실이 아니라고 해야 할까. 내가 사명감을 가지고 기록을 할 필요는 없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평화학에 관해서는 조금 다르다. 물론 한국에도 평화학을 공부한 분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고, 아마도 어딘가에서 공부하는 분들이 계시리라고 믿지만 아직까지 평화학은 이름만으로도 낯선 것이 사실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실은 내 딴에는 내가 하는 공부에 관해 관심을 가질지도 모를, 미래에 평화 운동의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사람들이 혹시라도 내가 쓰는 글을, 정보를 통해 좀 더 좋은, 올바른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는 사명감 비슷한 것이 없지 않다. (그렇게 말하기엔 너무 게으른 글쓰기이긴 하나... ㅡㅡ) 그래서 오늘은 내가 어떻게 인스브루크 대학을 선택하게 됐는지 이야기하려고 한다. 

처음 평화학을 공부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2015년 무렵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평화학이라는 학문이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고, 한국이 아닌 인도 북부 산동네인 다람살라에 살고 있을 때라 평화학을 공부하기 위해 어디를 가야 하는지, 어떤 것을 공부하는 것인지 정보를 얻을 방법이라곤 인터넷뿐이었다. 사진 파일 하나 다운로드하는데도 한참 기다려야 하는 3G 인터넷 환경이었지만, 그래도 집에서 인터넷 사용이 가능해진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그래서 구글에 '평화학'을 검색어로 넣고 돋보기 아이콘을 눌렀을 때 눈에 띈 것이 바로 이 블로그다.  http://peaceinpeace.tistory.com/10 여기에도 소개된 스위스 바젤대학교에서 평화학을 공부하신 반은기 님이 운영하는 블로그인데, 나중에 페이스북에서 뵙게 되어 가끔 활동하시는 소식을 받고 있다. 어쨌든 이 분이 정리해 주신 평화학을 공부할 수 있는 학교들을 하나하나 들어가서 살펴보았다. 모두 다섯 군데의 학교를 소개하고 계신데, 1. 스위스 바젤 대학교, 2. 트랜센드 온라인 대학교, 3.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대학교, 4. 스페인 카세디온 대학교, 5. 영국 브래드포드 대학교다. 일단 온라인 대학교는 관심이 가지 않아 패스. 바젤 대학교와 브래드포드 대학교는 학비가 내가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인스브루크 대학은 조금 부담이 되긴 했지만 감당 못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고, 카세디온 대학교는 그중 가장 학비가 저렴했다. 

그러나 단지 학비만을 기준으로 학교를 선택한 것은 아니고, 트랜센드를 제외하고 나머지 학교들의 교육과정을 살펴보기 위해 홈페이지를 이리저리 둘러봤을 때 가장 풍부하고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던 곳이 인스브루크 대학교였다. 심지어 카세디온 대학교는 개요를 제외하고는 영어 정보가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스페인이 무척 가고 싶었지만 대체 무슨 프로그램을 어떻게 운영하는지 알 도리가 없어서.....(대학 관계자 여러분, 홈페이지가 이렇게 중요합니다~)

인스브루크 대학교의 평화학 과정 홈페이지에는 이 과정의 철학적 기반이 '많은 평화의 철학 The Philosophy of the Many Peaces'라고 밝히고 있다. 이것은 세상에 단 하나의 평화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평화의 형태가 가능하다는 것이고, 더 중요한 것은 평화를 실현하는 방법론 역시 일반적인 사회과학의 방법론과는 다르다. 이것을 the principles of transrationality and elicitive transformation(이 말은 번역을 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ㅡㅡ)라고 부르는데 홈페이지의 자세한 설명을 읽어봐도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특히 elicitive는 영어 사전에도 없는 단어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무엇을 가르친다는 것인가? 무수한 정보들을 접하면 접할수록 호기심이 더 생겼다. 무엇보다도 다양한 층위의 평화가 가능하다는 설명에 마음이 끌렸다.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스페인을 놓고 결정을 미루다가 2017년 초에 한국에 돌아가 본격적으로 입학 준비를 하기 시작한 여름이 되어서야 최종적으로 결정을 했다.(나중에 깨닫게 된 것은, 보통 유럽이나 미국의 대학원에 진학할 때 몇 군데 원서를 내서 합격하는 곳에 간다는 것이다. 워낙 정보도 얻지 못하는 인도에 내내 있다 보니 그런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한 학교에 지원해서 떨어지면 그냥 가지 말아야지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이다.)

학교에서 요구하는 서류, 자격은 영어 시험과 추천서, 자기소개서가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나머지는 졸업 증명서라든가, 보험, 통장 잔고, 건강 진단서 같은 행정적인 것들이다) 이것도 역시 학교에 입학학 후에 보니 다른 유럽 대학원들에 비해면 무척 간소한 편이었던 것 같은데, 나에게는 그래도 준비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 추천서는 대부분 대학 시절 교수님에게 받는다고 하는데, 대학을 졸업하지 20년도 더 지난 내가 지금 연락을 드리면 기절초풍하실 것이 분명해 보여서 포기했다. 대신 인도에서 일하던 티베트 난민 지원 단체 '록빠'의 대표와 한국에서 일하던 '대화문화아카데미'의 동료(지금은 귀농해 농부가 되어 있는)에게 부탁을 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두 사람 다 여자였고, 두 사람다 그동안 내가 평화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꿈을 처음 가질 때부터 나의 허황돼 보이는 그 꿈에 대해 들어주었던 사람들이었다. 덕분에 나로서는 무척 만족스러운 추천서를 받을 수 있었다. 

영어시험은 Ielts나 Toefl 점수를 내도록 되어 있었는데, 신기하게 컷 점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몇 점 이상 지원자격이 있다는 정보가 아무리 둘러봐도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냥 내 취향대로 Ielts를 보기로 결정하고(Toefl보다 왠지 있어 보인다는 사소한 이유로... ㅡㅡ), 서점에서 파는 교재를 두 권 사서 보고, 인강을 한 과목 듣고, 다음 학원 주말반에 등록해서 4번 정도 다닌 후에 시험을 쳤다. 운이 좋았던지 7.0을 받았고, '이거면 됐지'라고 역시 혼자 생각해서 서류를 보냈다.(컷 점수를 따로 제시하지 않은 것은 그만큼 점수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 않을까 라고 역시 혼자 추측) 그리고 한 달 후쯤 입학 요청이 받아들여졌다는 메일을 받았다.(친구들은 유학 사기 아니냐고, 그렇게 쉽게 유럽 대학원을 가다니 믿을 수 없다고 주장 ㅡㅡ;;;) 

돌아보면 학교 선택부터 입학 결정까지 너무 얼렁뚱땅 해치운 것 같아서, 사실 평화학으로 유학을 가려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정보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내가 얼렁뚱땅 선택한 이 학교의 프로그램이 나에게는 최선이었고, 지금 생각해도 정말 잘 결정했다는 것이다.(물론 이제 1학기를 마친 처지에 성급한 평가일지 모르지만...) 내가 110% 만족하고 있는 인스브루크 대학교의 평화학 프로그램, 과연 어떤 것인지 다음번 글에서 소개하도록 하겠다.


작가의 이전글 평화학 공부하기@Innsbruck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