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banii Feb 23. 2020

평화학 공부하기@Innsbruck

두려움과 마주하다 Face fear

인스브루크에서 평화학 공부 첫 학기를 시작하면서 (처음에는 남들로부터) 많이 듣고, (나중에는 나 자신도) 하는 이야기 주제 중 하나는 두려움에 관한 것이다. 인스브루크 대학의 평화학은 개인의 주관적인 경험과 정체성으로부터 개개의 평화 개념과 방법이 존재한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다. 그런 이유로 개인에 대한 탐구가 항상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라는 것은 이 브런치 연재에서(아주 오래전에... ㅡㅡ) 언급한 적이 있다. 개인에 대한 탐구를 하다 보면 많은, 아니 모든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두려움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 역시 여러 종류의 두려움이 있었고, 이것은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게 하거나, 자신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로막거나, 결정적인 순간에 나의 한계로 나타난다. 사실 인스브루크 대학에서의 모든 시간 동안 나는 내 안의 그 두려움들을 발견하고, 발견하고 또 발견했다. 


오스트리아에 가기 전까지 인도에 6년 넘게 살면서, 혹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 인생을 살아온 모든 시간 동안, 나는 내가 꽤나 용감한 사람인 줄 알았다. 물론 귀신이라든가, 낯선 장소에서 만나는 괴한 등등을 두려워할 정도로 평균적인 겁의 소유자이기는 하다. 내가 정말 용감해진 것은 내 안의 그 두려움들을 발견하고, 마주한 순간부터였다. 그것은 두려움을 극복하거나, 없애는 것과는 다른 것이었는데,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두려움을 마주한다(face)고 말했다. 그런 많은 나의 두려움 중 하나가 수영, 즉 물에 대한 것이었다.


몇 살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 어린 시절(아마 네다섯 살이 아니었을까), 엄마와 함께 공중목욕탕에 갔다. 엄마가 열심히 몸을 씻고 있는 동안 나는 왜인지 갑자기 그즈음 티브이에서 보던 타잔이 생각이 났다.(타잔의 방영이 1974년 시작되었다고 하니 최소 세 살 이상이었을 것이다.) "아아아아아~" 소리를 지르고는 덩굴을 낚야채 계곡도 물도 건너는 타잔처럼 탕 속에 풍덩 뛰어들었는데..... 그다음 기억나는 장면은 목욕탕 바닥에 누워 눈을 떴을 때 보였던 목욕탕 천장의 모습이었다. 기억인지, 나중에 들은 것인지, 아니면 합리적 추론인지 아무튼 물에서 허우적거리던 나를 건진 것은 엄마였다.(당연하지)


그 때문인지, 아니면 물가라고는 가보지 못한 빈곤한 어린 시절 탓인지 모르지만 늘 물이 무척 무서웠다. 바다든, 계곡이든 물가에 놀러 가서는 무릎까지 담그는 정도로 물놀이를 마쳤고 당연히 수영은 할 줄 몰랐다.(내가 일찍이 등산을 좋아하게 된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한 번은 친구들과 계곡에 놀러 가서 무릎까지밖에 안 오는 그 물속에 누군가 나를 장난처럼 밀어 넘어뜨렸을 때, 비명과 울음이 함께 터지면서 놀란 친구들이 잡아 일으켜줄 때까지 물에서 뒹굴었던 적도 있다. 이런 물 공포증을 극복해 보려고 30대 초반 한참 이런저런 운동에 재미를 붙일 때쯤 수영을 잠시 배운 적이 있었지만, 자유형과 배영을 겨우 하는 정도로 배운 후 인도로 떠나는 바람에 수영인생을 접어야 했다. 


그 후 십여 년이 흘렀고, 이미 수영이라곤 까맣게 잊은 내게 인스브루크 대학의 프로그램 중 하나인 래프팅과 수상구조 훈련은 두려움일 수밖에 없었다. 교수님은 처음엔 수영을 못하더라도 참가할 수 있다고 했지만, 수영을 못하겠다고 나서는 학생 수가 예상보다 많아지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수상구조팀에서 난색을 표했다. 우리를 모두 하나하나 챙기기에는 구조요원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수영을 못하는 참가자에게는 전담인력을 한 명씩 붙이는 것이 원칙인데 수영을 못하는 학생이 너무 많다는 거였다. 결국 프로그램에 참여를 할지 말지를 스스로 결정을 해야 했는데 이것은 책임과 신뢰 사이에 있는 문제였다. 결정은 나의 책임이고, 함께 가는 사람들을 신뢰하는 것도 아닌 것도 결국 내 결정이었다. 책임과 신뢰 역시 인스브루크 프로그램의 중요한 주제이기도 하다. 


어쨌든 나는 안 그래도 인강의 험한 물살을 보고(인강은 알프스 산맥에서 눈 녹은 물이 흘러내려 만들어진 강인데, 온통 바위와 자갈이 깔린 지형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흘러간다.) 기가 죽었던 터라 참가를 포기하고 말았다. 나처럼 남겨진 학생들이 6명. 학교 측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인강을 따라가며 래프팅팀을 구경하라고 배려해주었지만, 예멘에서 온 자와헤르는 눈물을 터뜨렸다. 그녀는 자전거도 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울먹이는 자와헤르를 달래주고, 자전거 하이킹을 시작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는 왜 수영을 못한다고 했을까. 래프팅 때 입은 스위밍 슈트는 그 자체만으로도 부력이 있어서 몸이 뜨는 데 문제가 없는 데다, 구명조끼도 입게 되어 있었다. 우리는 그저 보트를 타고 험난 강을 내려오면 되는 건데, 그런 건데, 나는 너무나 무서웠다. 그랬다. 나는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두려움을 안고 있었다. 그 날, 나는 종일 패배자가 된 기분이었다. 다른 친구들도 비슷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뭐라 설명할 수 없지만 누구에게 진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두려움에 무릎을 꿇었다. 


그 여름학기가 지나고, 인스브루크에서 맞이한 방학 동안 나는 자와헤르와 함께 학교 스포츠센터에서 운영하는 수영 강좌에 다녔다. 다음번 여름학기에는 다시는 그런 수모를 당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 그다음 겨울학기 후에는 방학을 보내러 한국에 들어왔는데, 그 몇 달 동안에도 나는 수영을 배우러 다녔다. 두려움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냥 나는 다음 여름에 래프팅 프로그램에 빠지지 않겠다는 의지로 수영강좌에 참석했고, 이른 아침의 출장이나, 전날의 늦은 야근 때문에 아침 수영을 빠지는 날은 기분이 울적해졌다. 그럭저럭 10여 년 전에 배웠던 자유형과 배영이 다시 익숙해질 때쯤 여름학기를 위해 인스브루크로 돌아갔다. 


인스브루크의 프로그램은 학기마다 조금씩 달라지는데, 두 번째 여름이자, 나의 세 번째 학기인 2019년 여름에는 물에서 하는 프로그램 이틀로 늘어나 있었다. 첫날은 인강에서의 수상구조 훈련과, 호수에서의 수상구조 실습. 여전히 빠른 물살의 인강과 깊은 호수가 나를 두렵게 했지만,  이제는 거기에 두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두려움이 거기 있는 것, 아니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내가 수영을 하는 행위를 가로막지는 않는다. 아니 그 사이에는 어쩌면 어떤 상관관계가 없는지도 모른다. 


호수에서의 수상구조 실습 시간에 스위밍 슈트만 입고 구명조끼도 없이 친구들과 수영을 하는 나를 보며 교수인 볼프강이 두 손을 벌리며 물었다. "너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설명 좀 해볼래?" 나의 대답은 "지난 몇 달 동안 수영강좌를 들었거든."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의 수영이 모두 성공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수상 프로그램 이틀째에 있었던 인강의 다리에서 물로 뛰어든 후(내가 그걸 하다니. 미친 게야) 강에서 헤엄쳐 탈출하는 프로그램을 마치고 나는 너무나 무서웠던 나머지 벨기에 친구인 소피의 가슴에 안겨서 엉엉 울었다. 프로그램을 잘 마치고 왜 울었는지 그때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볼프강을 비롯해 모두는 따뜻하게 위로해 주었다. 나중에 볼프강은 내게 "나는 네가 자랑스러워. 너 자신을 봐. 누에고치에서 나비가 된 것 같은 변화야. 어제의 너와 오늘의 너는 아주 다른 사람이야."라고 말했다. 


그 프로그램을 마치고 낸 Reflection Paper에서 두려움에 대해 썼다.(인스브루크 대학에서는 매 2주마다 프로그램에 대한 자기 과제를 Reflection Paper라는 이름으로 제출한다) 볼프강은 나를 자랑스럽다고 말해주었지만 나의 두려움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그 자리에서 아주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그저 그 두려움을 곁눈질하거나 눈을 감는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마주하고 바라보았을 뿐이다. 그 결과 그 두려움을 겪어내었다고나 할까. 그러므로 두려움을 극복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지난 8월 한국에 돌아와 바로 수영강좌에 다시 등록을 했다. 이제 더 이상 래프팅이건, 수상구조건 하지 않아도 되지만 수영을 끝까지 배우겠다고 생각했다. 왠지 그렇게 수영에 능숙해지고 나면 자와헤르에게, 소피에게, 그리고 볼프강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두려움은 그대로 있지만, 나는 이렇게 아직도 수영을 하고 있노라고. 그런데, 이것은 아주 최근의 일인데 물이, 더 이상, 두.렵.지.않.다. 


신종 코로나 19 덕분에 수영을 다니던 종로올림픽기념국민생활관이 계속 휴관이다. 어서 다시 다녔으면 좋겠다. 그리고 신종 코로나 19 덕분에 오랜만에 두려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 새로운 질병이 나도 조금 두렵다. 우리 모두의 마음에 두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바라보면 조금은 달라질 수 있다. 우리 모두.

작가의 이전글 평화학 공부하기@Innsbruck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