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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깡아지 Aug 01. 2024

역치 낮은 남편의 이모저모

서로의 빈틈을 채워 주는 부부가 되기를




무던한 성격인 남편은 대부분의 면에서 역치가 낮은 편이다.

객관적인 시선에서 좋고 싫음으로 판단할 수도 있지만, 나는 그것을 그냥 남편 그 자체로 여기기로 한다.



청결의 역치


남편은 청결의 기준이 나보다 낮은 편이다.

연애 시절 남편 자취방에 가보면, 남편 눈에는 보이지 않는 덜 청소된 것들이 내 눈에는 보였다.

손님이 온다기에 분명 청소를 했을 테지만, 아주 기본적인 것들만 치운 뒤에 '좋아, 이정도면 깨끗하군.' 하고 청소도구를 내려놓았을 게 눈에 선했다.ㅋㅋ


그때부터 그냥 결심했던 것 같다. 나와 다른 남편의 기준을 끌어올리려 애쓰기보다, 내 기준과의 차이는 내가 메꾸는 방식을.

말하자면 더러운 거 못 참는 사람이 더 치우는 거지 뭐... (물론 남편이 그렇게 더러운 사람은 아니다.^^)


본가에 살 땐 반대로 내가 엄마한테 잔소리를 들었었다.

나는 내가 괜찮을 만큼만 치우고 지내는데, 엄마는 내 방에 들어올 때마다 방 좀 치우라고 했던 것이다.

타인을 내 기준에 맞게 바꾸려고 하는 건 소모적인 일이거니와, 쉽게 바꿀 수도 없다.


남편이 한 집안일이 80% 정도만 만족스러울 때 슬쩍 가서 나머지 20%를 처리하곤 한다.

내가 하는 '방법'이 더 낫다고 생각할 때는 이 방법으로 해보라고 말하지만, '정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기로 했다.

딱히 불만은 없다. 저마다 잘하는 일이 있고 못하는 일도 있는 거니까. 남편도 어떤 면에서는 내가 100% 완벽하다고 생각하진 않겠지.


정답이 없는 옳고 그름에 대해 이기고 지는 것보다, 서로의 빈틈을 채워주는 부부가 되고 싶다.



아름다움의 역치


남편은 아름다움의 역치가 낮은 편이다. (아니면 미적 감각이 없는 걸지도...)

연애 초기에 서로를 그려주는 데이트를 한 적이 있다. 우리 둘 다 그림 실력이 출중하지 않기에, 나는 남편을 캐릭터처럼 그렸는데

남편은 나의 눈코입을 아주 현실적으로 그려 놓고선 예쁘게 그렸다며 혼자 감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진짜 못생기게 그려서 상처받을 뻔 했다. 근데 아직도 본인의 만행을 인정하지 않는다(!)


살다 보면 디자인이 질려서, 마음에 들지 않는 딱 한 구석이 자꾸 거슬려서, 버리고 새로 사는 물건들이 많다.

하지만 디자인이 너무 튀거나 누가 봐도 이상하지 않은 한, 남편 눈에는 대부분 괜찮게 여겨진다.

이사를 하고 보니 옷이 듬성듬성 걸려 있어 단촐했던 남편의 옷장은, 웬만한 것들에는 깊이 신경쓰지 않는 그의 성격을 보여주는 듯했다.



행복의 역치


남편은 행복의 역치가 낮아서, 행복해지기 위해서 대단한 게 필요 없다.

자취할 때는 금요일에 퇴근하고 치킨 한 마리 시키면 그게 행복이었다고 한다.

결혼하고 나서는 그냥 주말에 동네 마실만 나가도 행복이다.

딱히 돈 쓸 데가 없다며 용돈 인상 투쟁도 하지 않는다.


반면 나는 항상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높은 곳을 바라봤던 것 같다. 

애매해서, 어중간해서 더 자격지심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항상 '가장 좋은 것'은 가져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냥 내가 가진 평범한 것들을 있어 보이게 잘 포장하며 살아왔는데, 처음으로 정말 좋은 것을 가져본 기분이다.


20대 내내 마음이 가난했던 내가, 마음이 부자인 남편을 만나고 비로소 가득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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