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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il Madigun Apr 04. 2016

연탄재

너는 누군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반쯤 깨진 연탄

언젠가는 나도 활활 타오르고 싶을 것이다

나를 끝 닿는데 까지 한번 밀어붙여 보고 싶은 것이다

타고 왔던 트럭에 실려 다시 돌아가면

연탄, 처음으로 붙여진 나의 이름도

으깨어져 나의 존재도 까마득히 뭉개질 터이니

죽어도 여기서 찬란한 끝장을 한번 보고 싶은 것이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뜨거운 밑불위에

지금은 인정머리없는 차가운, 갈라진 내 몸을 얹고

아랫쪽부터 불이 건너와 옮겨 붙기를

시간의 바통을 내가 넘겨 받는 순간이 오기를

그리하여 서서히 온몸이 벌겋게 달아 오르기를

나도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나도 보고 싶은 것이다

모두들 잠든 깊은 밤에 눈에 빨갛게 불을 켜고

구들장 속이 얼마나 침침하니 손을 뻗어 보고 싶은 것이다

나로 하여 푸근한 잠 자는 처녀의 등허리를

밤새도록 슬금슬금 만져도 보고 싶은 것이다

-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全文


오늘 우연하게 한 브런치를 읽고나서 제일 먼저 떠오른 시는 바로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였다.


퇴사의 이유


글 중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그 녀석 사수가 김 차장이었잖아. 그 사람 모습이 자신의 10년 뒤라고 생각하니까 미련 없이 그만두고 싶어 졌대. 그게 가장 큰 이유였다더라."


글의 김 차장은 회사에 가장 먼저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하는 어떤 의미로는 일 중독(Workholic)일 수도 있고, 회사에 굉장히 헌신하는 사측의 입장에서는 유능한 임직원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글의 나온 이는 이러한 김 차장의 모습을 보면서 퇴사를 결심했다고 한다.




요즘의 사회는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무색해질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직장을 평생 다닐 수 없는 경우가 많고, 그만큼 평생 다니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드물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는 그러한 변화에 맞추어서 최고의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을 원하고,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그렇게 다양하고 많은 일들을 하면서 모든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는 어렵다(물론, 그런 소위말하는 천재들은 존재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말하는 것은 일반적인 경우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취업을 하기 위해서 스펙을 만들고, 그러한 취업의 관문을 넘어선 직장인들은 이직과 미래를 위해서 공부하고 새로운 스펙을 만들어내고 있다. 자신이 있을 자리를 계속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노력하고 바쁘게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평생직장과 이직에 대한 생각들, 그리고 앞의 '퇴사의 이유'를 보면서 느껴지는 묘한 감정들은 이게 다른 누구의 일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에 대한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누군가의 글이나 기사들이 아니라 나의 피부로 느껴지는 일들이 최근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 필자가 속해 있는 팀이 해체되었다. 덕분에 모든 팀원들이 각자 다른 팀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일이 있었다. 팀의 해체 이유도 납득이 되고 지금은 그렇게 허겁지겁 팀원들을 모두 다른 팀으로 옮기려 했던 이유도 알게 되었지만, 결국 나는 그 와중에 경기도에 있는 곳으로 사무실이 옮겨졌다.


사실, 그 와중에 발생한 모든 일들은 나를 말 그대로 혼란스럽게 만들었고, 그로 인해 스스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면서 불평과 불만을 쏟아내는 마이너스 감정 덩어리로 지내왔다. 지금이야 조금은 그러한 기분을 추스리고 나름 객관적인 시선으로 나 자신이 굉장히 못 났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항상 입으로는 '회사는 절대 임직원들의 사정을 고려해 주지 않는다'라고 이야기 하면서 나 자신은 그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을까...


그 이후 나와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는 회사 선배인 대학원 선배와 대학교 후배들을 만나 오랜만에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있었다.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 지하철에 몸을 싣고 이동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의 끝에 그 동안의 나의 사회생활에 대해서 조금은 곱씹어보게 되었는데 참 재미있었다.


대학교에 복학하고 우연하게 만난 지도 교수님을 따라 처음으로 MIS(Management Information System)라는 학문을 접하게 되고 연구실에 속해지면서 이런저런 프로젝트를 많이 경험할 수 있었다.


대표적인게 지금 논문을 작성하고 있는 부정 탐지 시스템(Fraud Detection System). 경매라는 부분과 시스템이라는 IT를 겪을 수 있던 프로젝트였다. 도메인은 농수산물 유통.


그 다음 프로젝트는 모 문화예술 작품을 전시, 공연하는 공연장의 예매 시스템 관련 프로젝트였다. 말그대로 도메인은 문화예술.


이후에 취업을 한 직장은 IT 보안 솔루션 업체였다. 솔루션을 기획하고, 향후 로드맵을 계획하는 역할로 입사를 했지만, 중소기업의 현실은 내가 하는 일만 할 수 없다였다. 기술 영업도 해야했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PoC나 BMT도 직접 해야했으며, 시스템 구축이나 유지보수까지... 말그대로 개발을 제외하고 거의 다 해보긴 해봤다(물론, 내가 그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들만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중소기업에서 유일하게 하지 않았던 개발자로 현재의 직장에 입사를 하게 되었다. 입사 후 첫 프로젝트는 의료 솔루션. 그리고 지금 옮겨온 팀에서는 제조업의 SCM 운영의 역할을 맡고 있다.


신기하고 재미있게도 정말 많은 도메인에서 많은 역할을 거의 1년을 주기로 바꾸면서 살고 있다. 나도 이제 내년에도 같은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라는 장담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미래가 불확실하고 불투명하다. 그리고 아마도 머지 않은 시일 내에 나는 또 새로운 곳, 새로운 도메인, 새로운 역할로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서두가 엄청 길어졌지만, 결국 내가 '퇴사의 이유'라는 길을 읽고 나서 이 모든 생각들을 하게 된 이유, 그리고 안도현의 너를 묻는다라는 시가 떠오른 이유는 과연 이렇게 갈지자로 살고 있는 나는 누군가에게 Role Model이 될 수 있는 사람으로 살고 있는 가라는 의문이었다.


앞에서 말한 대학원 연구실에서 일을 하던 시절 많은 후배들이 나와 나와 동거동락했던 나의 두 동기들을 보러 많이 방문했었다(주로 내 동기들을 보러와서 나를 함께 보는 것다고 해도 말이다). 그 많은 후배들의 눈에 과연 나는 어떠한 사람으로 비추어졌을까? 그들이 늘 말했던 것처럼 '형들처럼 살고 싶어요'라는 무서운 말이 정말로 그들의 진심이었을까?


나 스스로는 어리석고 방황하고 있고 나 자신이 어떻게 살아갈지도 떠올리지 못하는 못난 사람이라고 판단할 때가 많은데, 자신에게 보다 관대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특성 상 그들이 정말로 나를 Role Model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나도 어쩌면 글 속의 김 차장처럼 그들에게 내가 가는 길의 끝의 부정적인 면들만을 보여주는 반면교사적인 인물이지 않았을까?


글 한 편에 문득 불안해지고 걱정이 많아지는 밤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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