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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laus Jun 30. 2022

5. 회계가 중요하긴 하네요

[회계는 어떻게 역사를 지배하였는가] 독후감

#추천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돈을 모으고 싶어 하지만 정작 돈 관리는 잘하지 않는다. 당장 주변을 둘러보아도 가계부를 쓰는 사람이 드물다. 자신의 재정상황을 기록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자신이 정확히 얼마를 쓰고 얼마를 버는지 모른다. 그러다 보니, 아껴 쓰는데도 남은 돈이 얼마 없는 기현상을 겪는다. 이 책은 나 같이 돈 관리의 중요성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역사 속에서 회계가 나라의 조직의 흥망성쇠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를 알게 되면, 당장 오늘부터 가계부를 쓰고 싶어 진다. 



#내용

 저자는 고대부터 리먼사태까지 회계로 인해 조직이 운명이 바뀐 사례를 나열한다. 비록 로마 숫자와 단식부기의 한계로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회계는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에도 존재했다. 그리스는 델로스 섬의 금고를 장부로 관리했고 로마 또한 군단과 정부의 장부를 기록했다. 중세에도 이러한 전통이 이어져 기득권층들은 개인 장부를 만들어 사유재산을 관리했다. 


 회계가 본격적으로 꽃핀 곳은 중세-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이다. 이탈리아 상인들은 이익을 정확히 산출하기 위해 아라비아 숫자, 대수학을 아랍 세계로부터 받아들이는 동시에 복식부기 기법을 만들어 사용했다. 이 중 가장 두각을 나타낸 세력은 그 유명한 메디치 가문이다. 메디치 가의 전성기를 만든 코시모 메디치는 체계적인 회계감사 시스템을 만들어 전 유럽에 퍼져있는 메디치 은행들은 통솔했다. 이후 네덜란드 상인들이 전통을 이어받아 회계를 적극 활용하여 자신들의 부를 관리했다. 반면, 왕정이었던 스페인과 프랑스는 지배계층이 '회계'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 결과 무리한 지출과 부정부패로 국가 재정이 망가지게 된다. 

 이웃나라인 영국은 전쟁으로 국가 재정이 어려워진 점은 프랑스와 동일했다. 그러나 영국의 지배층은 냉정하게 회계를 통해 국가 재정 상황을 파악하고 대처하여 위기를 넘긴다. 당시 신생국이었던 미국은 지배층들이 회계 지식을 갖고 국가 재정 시스템을 정비하여 빠르게 안정화될 수 있었다. 


 산업시대를 거치며 정부와 기업이 방대해지고 각종 회계 기법이 도임되며 회계는 지나치게 전문적인 영역이 된다. 그 결과 회계 감사를 담당하는 회계 법인들이 견제 없는 권한을 갖게 된다. 이는 도덕적 헤이로 이어져 최악의 회계 부정 사건 중 하나인 엔론 사태가 발생한다.  엔론 사태 이후 반대의 현상이 나타난다. 회계법인은 대중의 신뢰를 잃고 감사 대상인 기업과 은행들에 휘둘린다. 회계 감사 기능이 마비되자 은행들은 방만하게 상품을 운영하였다. 결국 이러한 상황이 리먼 사태가 발생하는 직 간접적 원인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부록으로 한국 회계 역사에 대한 자료가 실려 있다. 부록을 쓴 전성호 교수에 따르면 고려시대 개성상인들은 이탈리아 상인들보다 먼저 복식부기를 사용했다. 또한 상업이 천대받았다 여겨지는 조선시대에도 정부 회계와 비영리 회계 분야의 발전이 있었다고 말한다. 글쓴이는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한국에도 18세기 후반부터 '합리적 자본주의'가 실존했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주장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 회계는 조직의 명운에 영향을 준다. 특히, 리더의 회계 인식(재무적 책임성)과 조직 내 회계문화의 유무가 중요하다. 리더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스페인 왕국이다. 당시 스페인은 유럽 최강국이었다. 하지만 국왕은 회계를 중요시 여기지 않았고, 스페인은 막대한 부를 식민지에서 벌어왔음에도 적자 신세를 면치 못했다. 황금시대 네덜란드의 번영은 국가 내 회계 문화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당시 네덜란드에는 회계 교육기관이 많았고 네덜란드인들은 회계를 중요한 지식으로 생각했다. 덕분에 회사들은 비교적 투명하게 운영되었으며 금융시장이 발달하였다. 

 두 번째, 회계는 서양 서상사에 영향을 주었다. 중세시대 서양인의 삶에 중심이었던 기독교는 돈을 버는 대부분의 행위를 죄악시했다. 따라서 당시 상인들은 항상 양심의 가책에 시달렸다. 상인들은 회계의 논리를 종교에 대입하여 이러한 딜레마를 극복했다. 돈을 벌면 죄(부채)가 쌓이고 선행을 하면 죄가 탕감된다는 논리이다. 이러한 논리는 후에 종교개혁의 시발점이 된 면죄부에 활용되다는 점 그리고 지금까지 이러한 문화가 서양의 기부문화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저자는 근대 사상에도 회계가 영향을 주었다고 주장한다. 두 계정이 균형을 이루는 복식부기의 원리로 벤담은 행복을 계산하였고, 맬서스는 인구의 균형을 설명하였다. 찰스 다윈의 진화론도 회계에서 일부 영감을 받았으며, 경영학의 시초 격인 프레드릭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은 아예 회계 장부의 수치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감상

 이 책을 통해 회계관리의 중요성을 배웠다. 난 경영학과를 졸업하였지만 회계는 경영활동에 있어 별로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기업들의 성공 사례를 보면 혁신적인 경영 전략과 빛나는 아이디어로 성공한 이야기는 많지만, 회계 관리를 잘해서 성공했다는 기업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회계가 역사 속에서 활용된 사례들을 보니 회계 또한 경영활동에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알 게 되었다. 물론 아직도 회계가 역사를 '지배'했다는 제목에는 동의할 수 없다. 예컨대 책에 나온 메디치 가나 네덜란드의 성공이 전적으로 '회계 능력'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회계를 통해 객관적인 재정 상황을 모니터링하면 성공을 극대화하거나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회계에서 중요한 건 회계 지식이 아닌 꾸준히 기록하는 성실성과 재정 상황을 직시할 수 있는 용기임을 배운 점도 큰 소득이다. 메디치가는 지속적인 회계감사의 중요성을 잊어 재정적으로 몰락했다. 루이 14세는 전쟁으로 엉망이 된 장부를 외면하여 화를 키웠다. 회계법인의 회계사들은 엔론사의 장부가 이상하다는 점을 발견하였지만, 회계 법인 경영진이 이를 묵살하여 엔론 회계부정 사태가 발생했다. 나도 이제 내 재정 상황을 그만 외면하고 냉정하게 기록해 보아야겠다. 

 책의 결론 부분과 부록은 아쉽다. 저자는 리먼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 관련자들의 처벌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과연 단순 처벌만으로 회계의 역사와 함께해 온 도덕적 해이와 회계 부정이 사라질지 의문이다. 부록에서 전성호 교수가 주장한 내용도 납득하기 힘들다. 우리나라는 금속 활자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금속 활자는 구텐베르크의 금속 활자와 다르게 사회 변화로 이어지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고려시대 혹은 조서시대에 높은 수준의 회계장부가 있었다 한들 사회적 영향력이 없었는데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단순히 이러한 증거를 가지고 '합리적 자본주의'가 실존했다고 볼 수 있는가?

 

 정리하자면, 뒷부분은 살짝 아쉽지만 회계의 역사를 다방면에서 다룬 수작이다. 회계가 왜 중요한지 모르겠다면 꼭 한 번 읽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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