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못 먹었지만 공간은 익었다.
건축가의 밥그릇_ 전이서
한국에서 건축가의 밥그릇은 비어 있다.
아니, 비어 있는 것도 건축가가 설계했을지도 모른다.
“비워야 공간이 생긴다”는 말을 너무 믿은 탓이다.
그래서 밥 대신 개념이 담겨 있고,
반찬 대신 심의서류가 올라온다.
젓가락은 키보드와 마우스
그리고 국은… 아직 설계 중이다.
가끔은 진짜 밥을 먹으려 해도 쉽지 않다.
도시락을 열면, 현장 사진이 들어 있고
수저를 들면, 견적서가 붙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축가는 그 밥그릇을 놓지 못한다.
왜냐면 그 빈 그릇 속에
언젠가 ‘자기 이름이 적힌 건물’이 밥처럼 담길 걸 믿기 때문이다.
밥은 못 먹었지만, 오늘도 공간은 익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