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반응체로서의 건축가

사유가 ‘언어화되기 직전의 감각’

by 전이서

나는 스스로를 ‘반응체’라 부른다.

세계가 나를 향해 다가올 때, 그 파문에 몸을 기울이는 존재.

내가 먼저 세계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결이 내 안을 건드릴 때

그 떨림에 반응하며 건축을 생각한다.


나는 그 사실을 처음 자각했을 땐 자괴감이 들었다.

스스로 창조의 불씨를 지피는 자율적 창작자가 아니라,

무언가를 마주해야만 움직이는 존재라는 사실이 나를 주저하게 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나의 건축은 ‘발화’가 아니라 ‘응답’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그 응답 속에서 나는 세상과 나, 그 경계의 미세한 틈을 본다.


건축은 사유의 그림자이다.

감각의 층위를 따라 내려가면, 언어 이전의 세계가 있다.

공기의 밀도, 빛의 흐름, 손끝의 온도 같은 것들.

그 미세한 것들이 쌓여 하나의 논리를 만든다.

나는 그 논리를 건축의 언어로 번역하려 애쓴다.

때로는 그것이 하나의 수식처럼, 때로는 기도의 리듬처럼 내 안에서 반복된다.


그러나 감각의 층위를 다루는 일은 언제나 불안하다.

그 결과는 명확하지 않고, 증명되지 않으며,

보이는 형태보다 느껴지는 여운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내 건축은 종종 ‘모호하다’.

하지만 나는 그 모호함 속에서 진실을 본다.

세상은 단정하지 않으며, 모든 현상은 늘 그 경계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이 많은 사람이다.

철학자는 아니지만, 사유의 무게를 다루는 사람.

세계가 건네는 미세한 신호들을 오래 바라보며,

그 속에서 작동하는 질서와 리듬을 더듬는다.

그 사유의 궤적들이 내 안에 쌓이고,

언젠가 형태로 응결될 때, 그것이 나의 건축이 된다.


이제는 안다.

나는 세계를 향해 먼저 말을 거는 사람이 아니다.

다만, 들려오는 속삭임에 반응하며

그 속에서 하나의 질서를 찾아내는 사람이다.

그 반응의 흔적들, 그것이 곧 나의 건축이며

내가 걸어온 사유의 궤적이다.


_반응체로서의 건축가 전이서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다시 걸을 수 있는 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