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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하는 사유 Jul 04. 2023

사랑이 도대체 뭔가요?

세상에 존재하는 80억 가지의 사랑

  테레즈는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남들 눈에도 매력적으로 보이면 거기에서 특별히 쾌감이 느껴진다고 한 글을 본 적이 있었다. 테레즈는 그렇지 않았다. 캐롤이 가끔 테레즈를 쳐다보다가 윙크를 날렸기에 테레즈는 거기에서 한 시간 반이나 얌전히 앉아 있을 수 있었다. 그것이 캐롤이 바라는 바였기에.

 

  - 패트리샤 하이스미스 '캐롤' 中


  어플로 이성을 만나 결혼에 골인한 지인을 보며, 나는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서로 외롭다는 이유로 시작된 가벼운 만남이 어떻게 결혼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걸까.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을 함께하자는 약속일지인데. 자고로 사랑이란 단 한 번의 마주침으로 일상을 무너뜨리고, 조각난 파편을 새롭게 맞춰가며 남은 인생을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뒤바꿔 놓는 것일지인데. 무엇이 그를 결혼으로 이끌었을까. 혹시 사랑도 아닌 것이 본인을 사랑이라 속여가며 지인의 마음 깊숙한 곳에 엉뚱한 확신을 불어넣은 것은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사랑도 아닌 것을 스스로 사랑이라 속인 것은 아닐까. 나는 그들의 연애사에 아무런 관심도 없다가, 결혼 소식을 듣자마자 그들의 진정성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내게 있어 사랑은 불편하고 골치 아픈 것이다. 터치스크린보다는 다이얼에 가깝고, 블루투스보다는 안테나에 가까운 것. 스마트폰 속 사진첩보다는 누렇게 색이 바랜 앨범 속, 오래된 사진과 같은 것이다. 한 번 잃어버리면 쉽게 찾을 수 없고, 다시 되찾을 때까지 밤잠 이루지 못하게 만드는 것. 지극히 아날로그와 같은 것이 내게는 사랑이다. 그래야만 사랑이 비로소 진정성을 인정받는 기분이다.


  하지만 삶을 살아오며 이 모든 것을 부정하는 사랑의 시작을 수도 없이 목도했다. 누군가는 게임으로, 누군가는 어플로, 누군가는 소개팅으로. 나는 그것들을 차마 사랑이라 부를 수 없었다. 사랑이란 오랜 시간을 함께하면서 서로의 체취에 완전히 스며들어, 눈 먼 강아지가 단번에 주인을 찾는 것과 같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시작은 찰나와 같아야 하는, 모든 퍼즐 조각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져야만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일 같지만, 사랑이란 원래 그런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주변의 사랑을 지켜보다 보니, 이제는 그들의 사랑을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기가 어렵다. 개개인이 마음에 품고 있는 사랑의 정의가 각기 다른 모습을 띠고 있을 뿐, 그리 잘못됐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만 내가 공감할 수 없을 뿐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을 운명적이라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치기 어린 청춘의 일탈로 바라보는 사람도 있듯이, 사랑의 형태는 변화무쌍하면서도 각자의 마음속에서는 완벽한 형태로 자리하고 있는, 불완전하면서 완전한 것이다


  라고 아무리 떠들어봐야 사실 달라질 건 없다. 세상 모든 곳에 사랑이 있다고 말하면 내게도 사랑이 쉽게 찾아올까 싶어 떠드는 주저리일 뿐이다. 언젠가 찾아올 것이다. 결국은 내릴 것이다. 영원히 오지 않을 사랑을 기다리며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미련한 제사장의 모습. 사랑을 찾아 먼 여정을 떠난 마도로스의 항해를 비웃으며, 정신병 걸린 제사장은 오늘도 사막 한 가운데 발을 파묻은 채 절을 올렸다.


  제발, 내일은 사랑을 내려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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