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침 Nov 03. 2020

11년간의 일을 정리해보다

애도

최근 몇 년 동안 풀리지 않는 고민이 있다. 그건 일에 대한 내 방향성에 관한 것인데 여기서 오는 일종의 히스테리를 풀려면 지난 10년 넘게 ‘일’이라는 걸 하고 산 나의 경험을 정리해야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에 들은 팟캐스트에서 엄마들이 아이가 커 가는 모습을 보며 일종의 상실감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예를 들면 아이가 스스로 척척 화장실을 가거나, 씩씩하게 인사하고 유치원을 갈때면 대견한 마음과 슬픈 마음이 공존하는데 그 복잡한 감정을 잘 소화해내기 위해선 더 이상 볼 수 없는 아이의 인생의 한 부분을 충분히 애도해 나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일을 향한 내 생각과 감정도 11년 동안 켜켜이 겹쳐 정체를 알 수 없게 되었다. 이 정체불명의 라자냐의 속을 들여다볼 용기를 내야만 이게 어떤맛인지 알 수 있을것 같았다. 이 작업을 시작하게 된 또 하나의 계기는 친구가 ‘사업을 하려면 그 모티브가 중요한 것 같아, 아니면 사업이 내 삶을 삼켜버릴 것 같거든.’이라는 말이 내 마음에 남았기 때문이다. 사업이란 건 너무 거창한 말인 것 같지만 나만이 할 수 있는 것들을 꾸준히 하기 위해선 이익을 남겨야 모멘텀이 유지가 되는데 그걸 사업이라고 부를 뿐이다. 마음의 이유야 남이 알아줄 것까진 없고, 가족도 이해할 수 없겠지만, 나 자신도 설득시킬 수 없어 정체가 되었다면 그건 내게 문제가 되었다. 또 이젠 내가 번 돈에 의지해서 사는 사람들이 생겼기에 정말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이유가 아니면 안됐다. 마지막 이유는 내가 대대적인 구조조정에서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어떤 회사를 다녀도 흠... 짤리면 그걸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새로운걸 해 봐야지! 했지만 그건 정말 쫄보스럽다는걸 인정했다. 사실 짤릴만큼 일을 대충할 용기도 없다. 언젠간 내가 선택하고 공부하고 준비해서 도전해야 하는 일이라는것을 직시하게 됬다.


포트폴리오 형 웹사이트를 만들까 고민도 했지만 일단 중요 목적은 나의 11년간의 여정을 기리기 위해서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글로 써 내려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프롤로그:

대학을 2009년 5월에 졸업하고 그 10월부터 난  헬무트 랭에서 인턴을 시작했다. 인턴을 한지 삼 개월 정도만에 그 당시 내 기준엔 꽤나 짭짤하게 돈을 벌 수 있는 프리랜서가 되었고 8개월 정도 더 일하다가 더 경험이 있는 다른 사람을 정직원으로 고용하게 되면서 나오게 된다. 당시 헷무트 랭은 뉴욕에서 꽤나 인기 있었고 그 경험이 레쥬메에 들어갔다는 이유로 벳지 존슨, 나토리 등등 여기저기서 단기 프리랜서와 피팅모델, 통역 알바를 하면서 한 달 벌어 한 달 살아간다. 이시기 잡다한 경력은 과감히 생략하겠다. 그러다 지인의 소개로 외모 빼고 서로 많은 게 닮아있는 그녀! 를 만나고 우리는 같이 텍스타일 스튜디오를 열게 된다.


나는 내 일에 대한 애도를 시작하며 이 부분에서 제일 놀라게 되었다. 사실 내 커리어의 시작은 사업이었구나! 이 사실 하나를 깨닫는 게 나에게 벌써 얼마나 큰 열쇠가 되었는지 모른다. 실로 이 열쇠를 쥐게 되며 이후의 행보가 나 자신에게 어느정도 설명되었고 일에 대한 가치관이 얼마나 일관적이었는지 알게 된다.


그 텍스타일 스튜디오 이야기는 다음 편에!

작가의 이전글 핼러윈과 밤 산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