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워즈' 향수 불러일으키는 우스꽝스러운 장면
행성 스페이스볼의 지도자 스크룹(멜 브룩스 분)은 공기가 고갈되자 휘하의 다크 헬멧(릭 모라니스 분)과 샌더스(조지 와이너 분) 대령을 시켜 깨끗한 공기가 가득한 행성 드루이디아의 베스파(데픈 주니거 분) 공주를 납치해 행성의 보호막을 열 비밀번호를 알아내는 계획을 세운다. 아버지인 롤랜드(딕 밴 패튼 분) 왕의 강압에 못 이겨 은하계 유일한 왕자와 억지로 결혼할 신세였던 베스파 공주는 시녀 로봇 도트 매트릭스(조안 리버스 목소리)를 데리고 행성 바깥으로 도망치다가 그만 다크 헬멧에게 붙잡힌다.
딸이 납치되었다는 걸 알게 된 롤랜드 왕은 근처에 있던 우주선 이글5의 선장 론 스타(빌 풀만 분)와 그의 친구인 반인반견 바프(존 캔디 분)에게 도움을 청한다. 악명 높은 악당 피자 더 헛(돔 들루이즈 분)에게 큰 빚을 진 론 스타는 거액의 포상금을 받을 욕심에 베스파 공주의 구출에 나선다.
미국의 영화감독, 각본가, 배우, 제작자인 멜 브룩스는 <무서운 영화> 시리즈로 친숙한 '패러디(특정 작품을 흉내내거나 익살스럽게 인용하는 형식) 장르'의 실질적인 창시자로 평가 받는다. 그는 1968년 뮤지컬 영화 <프로듀서>로 영화감독 데뷔를 한 이래 공포 영화를 패러디한 <영 프랑켄슈타인>(1974), 서부극을 패러디한 <브레이징 새들스>(1974), 무성 영화를 패러디한 <무성 영화>(1976), 스릴러 영화를 패러디한 <고소공포증>(1977), 역사물을 패러디한 <세계사>(1981)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멜 브룩스가 개척한 패러디 장르는 이후 <에어플레인> 시리즈와 <총알탄 사나이> 시리즈로 유명한 ZAZ 사단에 의해 세계적인 인기를 끌며 오늘날 코미디 영화의 주요한 화법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멜 브룩스는 많은 연출작을 쏟아내던 1970년대와 달리 1980년대엔 자신이 세운 영화사에서 <엘리리펀트 맨>(1980), <여배우 프란시스>(1982), <더 플라이>(1986), <태양의 전사들>(1986)을 제작하거나 <사느냐 죽느냐>(1983)의 주연배우로 활동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가 <세계사> 이후 6년 만에 내놓은 연출작 <스페이스볼>(1987)은 SF 장르의 패러디를 꾀한다. 멜 브룩스는 어느 날 SF 장르를 패러디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순간부터 <스페이스볼>의 아이디어를 구상했다고 밝힌다.
<스페이스볼>은 SF 장르의 걸작 <스타워즈> 시리즈의 이야기와 인물을 '대놓고' 우스꽝스럽게 베낀다. 줄거리는 <스타워즈> 클래식 3부작(에피소드 4,5,6)을 단순화한 버전이다. 론스타는 루크 스카이워커와 한 솔로를 섞은 인물이다. 바프는 츄바카, 다크 헬멧은 다스 베이더, 베스파 공주는 레아 공주, 도트 매트릭스는 C-3PO, 스크룹은 팰퍼틴 황제, 피자 더 헛은 자바 더 헛에서 가져왔다. 극의 중반에 등장하는 요거트(멜 브룩스 분)는 요다를 패러디한 캐릭터다.
자막이 올라가고 우주선이 나오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인트로 전통도 그대로 따른다. 물론, 패러디 영화답게 테마 음악은 난데없이 <죠스>(1975)를 연상케 하고 엄청나게 긴 우주선이 나오는 등 웃음으로 새롭게 꾸며졌다. '포스'는 배우 아놀드 슈워제네거에서 따온 '슈왈츠'로 말도 안 되게 바뀌었으며 명대사 "포스가 함께 하길"과 "내가 너의 아버지다"도 엉뚱하게 사용된다. 광선검을 사용하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다스 베이더 격인 다크 헬멧이 인형들을 갖고 노는 당혹스러운 대목도 나온다.
멜 브룩스 감독은 영화 촬영 전에 <스타워즈>의 원작자인 조지 루카스에게 패러디 사용에 대한 허락을 구했다고 한다. 조지 루카스는 <스페이스볼>과 관련한 상품을 만들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패러디를 흔쾌히 승낙했다. 이후 조지 루카스는 자신이 설립한 시각효과 스튜디오 ILM을 통해 <스페이스볼>의 특수효과에 도움을 주었고 <스타워즈>(1977)에 미사용한 영상(<스페이스볼>의 탈출 포드 시퀀스에 나옴)까지 제공했을 정도로 관심을 가졌다고 알려진다. 멜 브룩스는 조지 루카스에게서 <스페이스볼>을 보다 너무 웃어 거의 쓰러질 뻔했다는 편지를 받았다고 말한다.
<스페이스볼>은 이야기와 캐릭터는 <스타워즈> 3부작을 기반으로 하되 <혹성탈출>(1969), <에이리언>(1979), <스타트렉>(1979) 등 주옥같은 SF 걸작 영화를 비롯해 <오즈의 마법사>(1939), <모던 타임즈>(1939), <인디아나 존스>(1985), <람보>(1982),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 <블루스 브라더스>(1980), <콰이강의 다리>(1957) 등 숱한 영화의 장면을 차용한다.
애니메이션 <트랜스포머>나 <루니툰>도 인용되었다. <폴리스 아카데미>(1984)에서 모든 소리를 흉내내던 배우 마이클 윈슬로우와 <에일리언>의 배우 존 허트를 이용한 배우 개그도 보여준다. 이 외에도 숨겨진 패러디가 상당하다.
<스페이스볼>은 언제나처럼 멜 브룩스의 색채가 깊이 묻어있다. 유대인 출신이니만큼 나치와 히틀러에 대한 조롱은 어김없이 등장한다. 영화와 관객 사이에 존재하는 '제4의 벽'도 가볍게 깬다. 다크 헬멧이 론 스타 일행을 찾기 위해 아직 출시하지 않은 <스페이스볼> 비디오테이프를 검색하는 독창적인 전개도 돋보인다. 속편, 불법 비디오 시장, 영화를 이용한 캐릭터 산업 등 그 당시 영화 산업에 대한 비판도 엿보인다. 오늘날 많은 패러디 영화가 단순한 베끼기를 하는데 급급한 반면 멜 브룩스는 패러디가 단순한 복사본이 아니어야 한다는 점을 자신의 영화로 확실히 증명했다.
<스페이스볼>은 개봉 당시 평단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제작비 2천만 불을 들였지만, 극장 수익은 3천 8백만 불(북미 기준)에 불과했다. 당시 받은 성적표만 본다면 분명 실패작이었다.
<스페이스볼>은 멜 브룩스가 1960~1970년대에 만든 작품들만큼 뛰어나진 않다. 재미있는 부분도 있지만, 진부한 구석도 상당하다. 그러나 멜 브룩스의 장르에 대한 애정은 누구보다 깊다. 또한, 멜 브룩스만의 웃음은 분명히 각인되어 있다. <스페이스볼>은 <스타워즈> 클래식 3부작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엔 부족함이 없는 96분이다. 아마도 <스타워즈>의 포스가 사라지지 않는 한 <스페이스볼>의 슈왈츠도 빛을 잃지 않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