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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후 Sep 12. 2021

영화 리뷰 <옴진리교: 지하철 사린 사건과 나>

"그의 진실에 대해 전혀 알 수 없어요"... 진행형인 옴진리교 사건


1995년 3월 20일 월요일, 아사하라 쇼코가 세운 신흥 교단 '옴진리교'가 일본 도쿄의 주요 관공서 밀집 지역을 지나는 지하철 5개 차량을 맹독성 사린 가스로 공격한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은 13명이 사망하고 6200명이 이상이 중경상을 입는 인명 피해를 발생시키며 일본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1996년 일본 정부는 옴진리교의 종교법인 자격을 박탈하고 2018년 7월 6일과 7월 26일에 테러를 주모하고 교사한 혐의로 교주 아사하라 쇼코를 비롯한 옴진리교 간부 12명의 사형을 집행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옴진리교: 지하철 사린 사건과 나>(2020)는 역사적 사건의 증인으로서 가해자 한 명과 피해자 한 명을 호명한다. 연출을 맡은 감독 사카하라 아쓰시는 사건 당시 지하철을 탔다가 사린 가스를 흡입한 피해자로 2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피로와 손발 저림,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등 각종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아라키 히로시는 사건 당시 체포된 후 석방되거나 비교적 짧은 형량을 받은 옴진리교 관련자 가운데 한 명으로 현재 옴진리교의 후신 격인 '알레프'(일본 헌법은 '사상과 양심의 자유는 침해받지 아니한다'고 명시한다)에서 간부로 활동 중이다. 옴진리교가 대체 무엇인지 정체를 밝혀야겠다고 결심한 사카하라 아쓰시는 1년에 걸친 설득 작업 끝에 아라키 히로시와 만나 함께 과거로의 여행을 떠난다.



<옴진리교: 지하철 사린 사건과 나>는 옴진리교의 역사나 아사하라 쇼코 교주를 파헤치는 탐사 다큐멘터리 영화가 아니다.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도 간단하게 언급할 뿐이다. 영화는 기차와 지하철을 이용하여 고향집과 마을, 다녔던 대학교 등을 방문하고 삶의 기억과 추억을 소환하여 대화를 나누는 것이 전부다. 로드 무비에 가깝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헤드폰으로 같이 음악을 듣고 물수제비를 만들려고 돌을 퐁당퐁당 던지며 유대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은 재미있다. 특히 야구 모자를 눌러쓴 사카하라 아쓰시 감독은 <화씨 9/11>(2004)의 마이클 무어 감독을 연상케 하는 유쾌함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사이좋은 소꿉친구처럼 보이던 두 사람은 옴진리교를 두고선 평행선을 달린다. 사카하라 아쓰씨 감독이 "지금도 아사하라 쇼코 교주가 옳다고 생각해요?"란 질문을 던지자 아라키 히로시는 제대로 대답하지 않으며 변죽만 울린다.


"모든 걸 이해하고 아는 건 아니에요. 굉장히 의문점이 많고 어둠이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모르는 것투성이긴 하죠. 다만, 여러 사건이 재판을 받고 제자들이 증언을 해도 그의 진실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가 없어요."



사카하라 아쓰시 감독과 아라키 히로시는 의외로 공통점이 많다. 둘은 비슷한 나이로 가까운 동네에서 자라 같은 대학에서 공부했다. 하지만, 어릴 적 가족사의 불행을 겪은 아라키 히로시는 대학에서 아사하라 쇼코 교주의 강연을 듣고 가족과 친구를 포함한 그동안의 삶을 버린 채 옴진리교에 빠졌다. 삶의 방향을 잃은 아라키 히로시를 보면서 고학력자인 젊은이들이 왜 교주의 지시 아래 무차별 테러를 가담했는지, 사회는 이들을 막을 방법은 없었던 건지 안타까운 의문이 들었다.


한편으론 독일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 같은 역사 속 악행은 광신도나 반사회성 인격장애자들이 아니라 국가에 순응하며 자신들의 행동을 일반적이라 여기게 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행해진다고 주장한 '악의 평범성'이 떠올랐다. 아라키 히로시의 생각을 들어본 사카하라 아쓰시 감독은 유교, 도교, 불교를 비교한 구카이의 <삼교지귀>를 언급하며 인생의 '선택'에 대해 조언한다.


"당신의 얘길 들으면 당신에겐 복수의 선택지가 없는 것 같아요. 두세 가지만 있고 네 번째는 없는 것과 하나밖에 없는 건 근본적으로 다르잖아요. 다른 것과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자기 자신도 이해할 수 없겠죠."


 

영화의 마지막 대목에서 아라키 히로시는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의 피해자 위령패를 모신 분향소를 방문하여. "피해를 당한 분들과 이제 더 이상 말을 걸 수도 없는 사망하신 분들을 생각하며 헌화했다"라며 "부채감을 짊어진 채 살아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미안하다", "죄송하다", "사죄드린다"는 말은 끝내 하질 않았다. 영화는 차 속에서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사카하라 아쓰시 감독과 아라키 히로시를 보여주다가 갑작스러운 암전으로 끝난다. 어둠의 의미는 무엇일까?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은 현재진행형이다. 부상자 중 70%는 아직도 이상 증상을 느끼고 일부 피해자는 병상에서 투병 생활을 이어가는 중이다. 국가의 배상 역시 완결되지 않았다. 테러 사건의 핵심 주동자들의 사형은 집행됐지만, 사건의 진상은 지금까지 오리무중이다. 아사하라 쇼쿄가 입을 굳게 다물었고 옴진리교의 이인자였던 무라이 히데오가 체포 전 피살되는 바람에 옴진리교가 대규모 화학 테러 사건을 벌인 이유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았다. 사과하는 이조차 없다.


도리어 옴진리교 신자들이 단체명을 바꾼 '알레프'나 '히키리노와'의 신자가 늘어난다는 소식이다. 사회적 불만, 무력감, 고립감을 느끼는 젊은이들이 옴진리교에 빠져들었던 상황이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특정 집단을 향해 공개적으로 차별과 혐오 발언을 일삼는 조직이 나타나는 일본의 상황을 보노라면 제2의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노릇이다. 옴진리교가 드리운 어둠을 아직 걷지 못한 일본 사회. 옴진리교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제18회 EBS 국제다큐영화제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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