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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아영 Jan 04. 2020

엄마가 암 선고를 받았다.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기

“조직검사 결과 양쪽 가슴에 있는 종양이 모두 암이라고 나오네요. 많이 놀라셨겠지만 이제부터 정신 잘 차리시고 빨리 큰 병원 예약부터 잡으세요.” 


의사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암 판정을 내려왔을까. 무심한 듯 보이지만 우리를 걱정하는 마음이 담긴 말을 듣고 눈 앞이 아득해졌다. 


2019년 12월 3일. 엄마가 유방암 판정을 받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집에 가서 밥을 먹다가 부모님 건강검진을 받으라는 말을 무심코 꺼냈다. 정말 별 뜻 없었는데 순간 밥상이 조용해졌다. 그러다 한참 후 아빠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엄마 오른쪽 가슴에 멍울이 만져져서 조직검사를 받으러 가기로 했어. 돌아오는 화요일에.”


우리가 미리 걱정할까봐 검사를 다 받고 말하려 했다며 내 눈치를 본다. 왜 이제서야 말하는지 울컥 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결국 이렇게 엄마가 말을 늦게 하게 만든, 가슴의 멍울이 만져질 때까지 아무것도 몰랐던 나 자신의 무심함에 더 큰 화가 났다. 


처음 가슴에 멍울이 만져진건 한참 전이었다고 한다. 환갑 맞이 가족여행이 있어서, 할머니 기일 1주기가 있어서, 누구 먼 친척의 결혼식이 있어서. 말이 안 되지만 그럴듯한 이유로 엄마는 병원 가는 것을 미뤘다. 그렇게 쌓인 세월은 엄마의 오른쪽 가슴에 5cm, 왼쪽 가슴에 1.5cm 암덩어리를 키웠다. 가난과 무심함, 자식에게 빚지기 싫은 미안한 마음들이 세월을 만나 엄마의 몸 한 구석을 망가뜨리고 있었다. 


누구 하나라도 정신을 잡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슬퍼할 겨를 없이 절차를 챙겼다. 암 중증환자 등록하는 절차와 큰 병원에 하루빨리 검진 예약을 하는 것, 국립암센터에 가져갈 조직검사 결과지와 영상 CD를 챙기고 암보험 진단금 수령을 위한 서류 발급까지. 뭐라도 할 일이 있어 정말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엄마를 위로하지도 못하고 멍해진 나 자신을 추스리기 바빴을 것이다. 마음이 심란할 때일수록 몸을 바삐 움직여야 근심 걱정이 쌓일 새가 없다는걸 또 한번 실감한 나날들이었다. 


본래 퇴사 후 2주간 따뜻한 나라로 여행을 가려고 비행기와 숙박을 모두 예약한 상황이었다. 그러다 엄마 조직검사를 받는다고 들은 후 어느 날 아침, 술기운이 깨지도 않은 채 비몽사몽간 수수료를 다 물고 여행을 취소했었는데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어쩌면 나도 모르게 엄마의 병세를 눈치챘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짜맞춘듯 내가 퇴사한 후 백수가 된 시점에 엄마의 병세를 알게되어 여러번 왔다갔다 해야하는 병원 동행을 도와줄 수 있는 것도 신기할 따름이었다.


애초에 나는 엄마에게 살가운 딸이 아니었기에 엄마의 마음을 따스하게 위로해주기 보다는 단단하게 중심을 잡고 서있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나를 보고 엄마는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을 수십번 반복했다. 자기가 미련하여 병을 키웠다고 미안하다고 했다. 엄마의 미안하다는 말을 들을 때면 가슴 한 켠이 꽉 막히면서도 왜 이렇게 화가 나는지. 늘 미안해만 하는 엄마에게 나는 또 화가 났다. 그 화는 결국 먹고살기 바빠 엄마를 살뜰히 챙기지 못한 내 자신에게 나는 화였다. 


지나간 일을 후회한들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해야만 한다. 

엄마의 쾌유를 위해 공부하고 찾아보고 그 과정들을 기록해나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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