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말고 현실의 이야기들
엄마가 유방암이란 사실을 알게 된 병원은 대학병원처럼 큰 곳이 아니었다. 알고보니 암 관련 종합병원을 예약하려면 곧바로 가기보단 작은 병원에서 먼저 조직검사를 시행해 내가 암인지 아닌지를 먼저 확인해야 이후 절차가 빠르다고 한다. 엄마는 내게 말도 하지 않고 인터넷으로 이리저리 검색하고는 조직검사 먼저 예약했고 검사결과 통보 자리에 내가 있게된 것이었다. 본인도 암이라는 것을 직감했던 걸까.
엄마의 유방암 판정을 받던 장면을 다시 그려본다. 조그만 진료실은 엄마와 아빠, 나까지 들어가니 꽉 찼다. 모니터에는 흑백 엑스레이 사진이 떠 있고, 의사 선생님은 정직하게 조직검사 결과 암이라는 사실 그 자체를 말해준다.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지만 현실은 드라마와 달리 의사 선생님을 붙잡고 대성통곡을 할 틈조차 없었다. 돌이켜보면 이성적인 말투로 내게 암 환자의 보호자로서 처리해야 하는 업무들을 깔끔하고 정확하게 안내해주신 점이 감사할 따름이다.
우선 가장 먼저 엄마를 중증 암환자로 등록하는 일부터 이뤄졌다. 건강보험 대상자가 조직검사 등을 통해 암 진단을 받게 되면 중증 암환자로 등록할 수 있다. 이 경우 5년 동안 암과 관련한 치료, 입원에 드는 비용 중 5%만 본인이 부담하면 된다.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의 비용은 제외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비용이 줄어든다. 암 치료비용 부담을 덜고 오롯이 치료 자체에만 전념할 수 있게 뒷받침해주는 좋은 제도다. 사실 내가 해야하는 일은 없었고 조직검사 결과를 안내받은 병원의 원무과에서 접수를 대신 진행해주셨다. 몇 번의 키보드 두들기는 소리와 생년월일 확인, 서명 후 엄마는 중증 암환자로 등록됐다.
이후 조직검사 결과를 들고 찾아갈 큰 병원을 알아보고 예약을 잡는 일이 가장 시급했다. 의사 선생님이 지금 당장 정신이 없을테지만 이것만은 잊지말고 진행하라고 했던 일이기도 했다. 보통 암환자의 경우 수술과 항암, 방사선 치료, 향후 추적검사까지 정기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집에서 가까운 병원일수록 환자와 보호자의 심적 부담이 적다. 그렇지만 막상 무작정 가까운 병원만을 찾아가기에는 암이라는 병명이 주는 무게감이 상당했다. 보호자의 심정으론 어떻게든 훌륭한 의사 선생님이 계시다는 병원을 수소문해 그 곳에서 치료받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수술 일정이 빨리 잡히지 않을까봐, 혹시라도 실력없는 의사가 배정될까봐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우리 가족 역시 어느 병원에서 치료를 시작할지에 대해 많은 고민이 있었다. 그렇지만 우선 암 치료는 장기전이라는 것을 생각해 최대한 집에서 가까운 병원으로 예약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다행히도 집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은 먼 지방에서도 환자들이 애써 찾아온다는 국립암센터였고, 몇 번의 전화연결 시도 끝에 유방암전문 교수님과의 면담 예약을 잡을 수 있었다.
어렵게 국립암센터 예약을 잡았지만 곧바로 치료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었다. 우선 엄마의 몸 전체를 샅샅이 검사해 어느 곳에 얼마만큼 암덩어리가 번져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초음파, PET CT, 골밀도, 심전도, 혈액 및 소변, MRI… 몸의 이상 여부를 알아내기 위한 검사의 종류는 수도없이 많았고 각 검사는 별도의 예약이 필요했다. 위 검사를 마치기까지 총 3차례 병원을 방문했으며 2차례의 금식과 조영제 투여가 이뤄졌다. 절차가 진행될수록 가까운 곳으로 치료 병원을 정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타이밍 상 일을 그만두고 시간적 여유가 생겨 엄마의 병원 방문에 계속 함께할 수 있었는데 둘러보면 보호자 없이 혼자 병원에 오는 환자들도 상당했다. 아픈 것도 힘들텐데 홀로 병원에 오는 심정이 어떨지 생각하니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병원에 올 때마다 느끼는거지만 세상엔 참 아픈 사람들이 많다.
가족들의 마음은 불안하기만 한데 병원의 행정 절차는 왜 이렇게 길고 대기 환자는 어쩜 그렇게 많은지. 격무에 시달리느라 그런 것이겠지만 퉁명스러운 병원 관계자들의 말투에 나도 모르게 신경이 쓰였다. 엄마가 그런 말투에 상처받을까봐 더 신경이 쓰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암 선고를 받은 직후 예민한 상태에서 사람들의 말투 하나하나가 신경에 거슬리는 상황이었을지도 모른다.
병원을 들락거리는 일정 중 짬을내어 엄마의 암보험 서류 접수를 돕는 일도 처리했다. 보험이란 것이 평소에는 쓸데없는 돈이 나가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다가도 이렇게 안좋은 일이 생겼을 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다. 엄마의 조직검사결과지와 암 진단서 등 필요한 서류를 떼 직접 보험사 지점을 방문해 접수했고 며칠 후 손해사정사가 집을 방문해 이것저것 묻고는 돌아갔다. 이후 엄마의 통장으로 암진단비 명목으로 보험금이 들어왔다. 작은 암보험이었음에도 어느정도의 목돈이 들어오니 더욱 치료에 전념할 수 있겠다는 든든함이 느껴진 순간이었다.
지난한 과정들을 거친 후에는 엄마의 종합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2주 정도의 텀이 있었다. 이 기간에는 계속 잡생각이 머리를 가득 메웠다. 혹시라도 암이 온 몸에 번져있을까봐 불안했지만 가족 누구도 그런 기분을 티낼 수 없었다. 각자 마음 졸였지만 얼굴을 마주할 때는 애써 긍정적인 말들을 더 열심히 주고 받았다. 그러다 엄마의 항암 치료가 시작되기 전 짧게라도 즐겁게 여행을 다녀오자는 이야기가 나와 베트남 패키지 여행도 야무지게 다녀왔다. 잠시 암 생각을 잊고 베트남 경치를 즐기며 맛있는 음식을 먹고 희망찬 기운을 공유했다. 이 기운으로 앞으로의 험난한 일정들을 잘 이겨내자고 굳게 다짐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