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반복작업이 만들어내는 기초체력의 예술
요즘 남편과 함께 테니스를 배우고 있다.
기초체력이 받쳐주는 남편은 진도를 쭉쭉 빼는데 나는 몇날 며칠째 제자리 걸음이다.
같이 배우기 시작했는데 나만 뒤쳐지는 느낌이 싫어서 괜시리 마음까지 초조해진다. 레슨 받을 때 왜 이렇게 공이 잘 안맞지, 스윙 폼이 이상한가 잡생각을 하는데 선생님께서는 정석과도 같은 말씀을 해주신다.
"아영씨는 아직 기초체력이 안 되서 그런거에요. 포핸드 치기 전에 매일 코트 뛰는것부터 해야겠네"
그래서 요즘 테니스장에 가면 라켓 잡기 전 코트 구석구석을 열심히 뛴다.
누군가는 맨날 공도 못치고 뛰기만 하면 재미없지않냐고 물어보지만 그래도 난 즐겁다. 이 기초체력 훈련들이 결국 내가 상상하는 멋진 코트 위의 나를 만들어줄 것이라고 백퍼센트 믿기 때문이다.
기초훈련 이라는게 말이 쉽지 실상은 지루함의 연속이다.
새로 하나씩 배워나가는 것이 아니라 매일 똑같은 코스를 반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음은 코트 구석구석 공을 꽂아 넣는 프로 선수인데 현실은 라켓도 잡지 못하고 뛰고 또 뛰어야 한다. 반복되는 체력 훈련들은 무언가 진도가 나가는 느낌이 아니라 매일 같은걸 반복하기 때문에 더 지루할 수 밖에 없다. 옆의 누구는 벌써 진도를 이만큼 빼고 있는 모습을 의식하게되면 더 이 기초훈련들이 지루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초체력훈련을 기쁜 마음으로 수행하는 이유는 몇 해간 일을 하며 '기초체력'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몸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테니스를 잘 치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건 멋진 스윙을 배우는 것도, 화려한 기술을 익히는 것도 아니다. 바로 날아오는 공을 끝까지 쫓아다닐 수 있을 정도의 기초체력이다. 기초체력 없이 멋들어진 기술만 배운다고 실전에서 잘 해낼 리가 없는 사실을 나는 회사에서 배웠다.
회사에서의 나도 한 때는 단순반복되는 '잡스러운' 일들을 싫어했었다. 좀 더 주목받는 업무를 하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다. 매일 생기는 뒷단의 오퍼레이션 업무보단 전략, 기획 등이 들어간 업무가 신입의 눈에는 멋지게 보일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그런데 연차가 쌓여갈수록 신입때는 쳐다도 보기 싫었던 오퍼레이션 업무들의 소중함이 느껴진다. 단순반복되는 지루한 업무들을 처리해나가면서 나도 모르게 업무를 쳐내는 기초체력이 쌓이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회사 직원들 역시 오퍼레이션 업무를 수행해봤냐, 아니냐에 따라 업무에 대한 이해도가 천지차이로 갈린다. 단순반복되는, 노가다성 업무들을 어떤 툴을 활용해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를 직접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많다. 내가 왜 이런 잡스러운 일을 해야하는지 회의감이 들고, 하기 싫어서 단순반복업무는 안하려는 방법만 고민하다보면 결국 업무의 기초체력이 쌓이는 시간을 놓치게 된다.
그렇게 단순반복되는 업무를 통해 쌓은 기초체력을 기반으로, 하나씩 성과를 쌓아올려야 금방 무너지지않고 기복없이 안정적인 퍼포먼스를 내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그 재미없는 지루한 일들이 쌓여야 비로소 내 힘이 되는 이유다. 지금 단순반복되는 일들을 하느라 재미없으신 분들에게, 이 시간들이 쌓여 언젠가 꼭 빛을 발하게 될 것이라고 소심하게 마음을 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