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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라면순한맛 Feb 07. 2018

싫어함으로써 나아갈 수 있다.

불호에서 기인되는 개인의 신념

 잠시 오피스 직장인에게 가장 신성한 시간인 점심시간을 상상해보자. 어떤 맛과 향으로 심신이 고단한 직장인의 허기를 채울 것인지 고민하는 순간 말이다. 한 시간 남짓의 여정을 함께할 동료들과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하게 메뉴를 정하는 바로 그 순간,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은 어젯밤 자기 전에 떠올랐던 인도 커리의 향이나 주말 예능에서 유심히 봤던 낙지철판구이의 시뻘건 빛깔 등이 될지 모른다. 하지만 이내 동료들이 먹지 못하거나 싫어하는 음식 리스트가 떠오를 테고, 그 리스트에 인도 커리나 낙지철판구이가 있다면 아쉽지만 자연스레 다른 메뉴를 고민하게 될 것이다.

원래 낙지철판구이 좋아한다.

 이처럼 무엇인가를 싫어한다는 것은 자연스레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다. 매운 음식은 입에도 대지 못하는 동료는 시뻘건 낙지철판구이가 점심메뉴 후보에 들어가지 않은 것에 고마움을 느낄 순 있지만, 미안함을 느낄 필요는 전혀 없다. 나와 동료가 모두 좋아하는 메뉴가 있을뿐더러, 배회 중인 오피스 지구 도처에는 수많은 맛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는 불호는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그렇다면 개인의 가벼운 불호가 아닌 양보할 수 없는 신념에 대한 이야기라면 어떨까?

이런 불호 말고

 사실, 무언인가 싫은 것이 있다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것이다. 불호라는 것은 어떠한 가치에 관하여 깊게 생각해 본적이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것을 취하지 않는데 온 힘을 쏟을 수 있을 정도로 강한 불호의 가치라면, 그것은 당신의 삶에 가장 우선되어야 할 긍정적인 신념이 될 수도 있다. 개인의 신념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 인생의 방향성을 제시해준다.


 한 개인에게 양보할 수 없는 불호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을지 생각해보자. 인공적으로 주입된 가치관이 아닌 이상, 아마도 언젠가 정말 최악이라는 생각이 들법한 상황을 맞닥뜨리고 지나쳐오면서 아로새긴 흉터와 같은 것일 수 있다. 혹은 조금씩 인생을 거쳐오며 시나브로 스스로 깨우친 십계명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누구나 겪는 삶의 굴곡들은 짧거나 길게 빙글거리며 저마다의 곡선을 그리게 되고, 이는 곧 지문처럼 개인의 몸 일부이자 정체성을 증명하는 신념이 되는 것이다. 절대로 부동산을 투자의 대상으로 보지 않겠다거나, 절대로 술먹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겠다거나. 나의 경우, 정말 좋은 무엇인가를 겪었을 때보다는, 정말 싫은 무엇인가를 겪었을 때 더욱 선명하게 빗어졌다.

"Faith"

 신념. 이렇게나 거창하게 이야기했지만, 사실, 현실 속의 불호는 거르는 음식 정도의 왜소한 체격을 지니고 있으며, 존재하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평소에는 좀처럼 찾아볼 수가 없다. 현실에서는 극단적인 상황이 잦지 않으며, 우리의 일상에서는 생각보다 양보와 조율이 굉장히 빈번하다. 그렇기에 정말로 양보할 수 없는 불호를 주장해 본 적이 있는 이 많지 않다. 심지어 누군가는 자신이 무엇을 싫어하는지 잘 모르는 사태에 이르기도 한다. 하지만 언젠가는 '인지상정의 하한선'을 수비하는 방범순찰대로서, 나의 멋진 불호가 삶에 짜잔 하고 나타나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분명 꽤나 중요한 인생의 이정표가 그 순간에 꽂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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