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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라면순한맛 Aug 02. 2018

영화 어느가족(Shoplifters, 2018)

어두운 현실속에서 증명해낸 새하얀 마음

[스포 주의]

어느 가족 (Shoplifters, 2018)

 선의(善意), 혹은 호의(好意)를 이야기하자면, 의심부터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세상이다. 그렇게 된 이유가 장소을 불문하고 창궐하는 정치놀음 때문인지, 호황의 씨가 말라버린 경제지 기사 때문인지, 아니면 진심으로 지구를 걱정하게 하는 세계 곳곳의 기상이변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을 살고 있는 많은 이들이 더 이상 새하얀 무언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게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삶이 진행될수록 만인에 대한 만인의 의심은 커져갔고, 실은 정말로 새하얬을지 모를 많은 마음들이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회의와 의심의 소용돌이는 우리 사회의 전통적인 가치들을 무너뜨리는 세태로 이어졌다. 부모 자식 간의 도리는 더 이상 숭고하고 절대적인 것이 아니게 되어버렸으며, 막역한 사이, 심지어 혈연관계의 누군가에게 크게 뒤통수를 맞고 분노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오곤 하였다. 서로에게 마음 놓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는 마치 반딧불이이나 은하수와 같은 희소성을 지니게 되었고, 우리들은 속는 놈이 바보라며 인간관계에 맞설 무쇠 갑옷을 여미며 일상을 살아가게 만들었다.

어느 가족 (Shoplifters, 2018)

 과장됐지만 누구나 공감할만할 우리의 현재이다. 사회는 우리의 삶이 아무리 텁텁하더라도 웃음을 잃지 말고 씩씩하게 살아가자고 다양한 방법으로 이야기하지만, 실은 마음을 터놓을 상대 하나 없이 살아가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오늘 하루의 식감이 얼마나 모래알 같았을지 잘 알고 있을 우리들이다.


 고레에가 히로카즈의 영화 '어느 가족'이 특별한 이유는 영화 중간에 나오는 어느 한 지점 때문이다. 영화는 시작부터 중반부까지 고되고 기구한 '어느 가족'의 일상을 비추며, 그럼에도 그들이 느끼는 작은 행복의 위대함을 역설한다. 하지만 그런 건 스크린상에서나 가능한 가짜 행복이라는 것쯤은 능히 간파할 수 있는 현대의 관객이기에, 관객들이 느낄 수 있는 마음의 울림은 제한적이기만 하다.

어느 가족 (Shoplifters, 2018)

 감독은 당연히 그것을 알고는 '어느 한순간'을 연출한다. 단순히 절망적인 삶의 무게를 지울 뿐만 아니라, 가히 '인각 실격'이라 칭할만할 원죄를 '어느 가족'에게 부여한다. 그들은 소시민이 아닌 범죄자 집단이 되어버리고, 나아가 서로에게 더 이상 가족이 아닌 그저 이용대상이 되어버리기까지 한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들의 선의(善意)가 관객들에게 명확히 빛나기 시작한다.


 그들을 빛에 비유하자면 스펙트럼상 파장이 짧고 강한 감마선과 같다. 스스로를 지킬 방법이 없어 더 많이 흔들리기 때문에, 더 강하고 극단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주변에선 이를 위험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러한 행동은 외부로 인해 유발된 행동이자 여느 현대인이 무쇠 갑옷을 여미는 것과 같은 메커니즘이다. 감마선과 같은 '어느 가족'을 보며 관객들은 그들이 흔들리는 와중에 보여준 호의를 명확히 볼 수 있게 된다. 이 호의는 명백하게 새하얀 마음이기 때문에 관객들의 마음은 충분히 동하게 된다. 무척 현실적인 배경과 더욱 현실적인 인물들의 행동 속에서 새하얀 마음의 존재를 증명해낸 마법같은 순간이다.

어느 가족 (Shoplifters, 2018)

 사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따로 있다. 비극이 시작되기 전 '어느 가족'의 소소한 행복을 비춰준 장면 중 낚시용품 가게에서 수조를 앞에 두고 쇼타와 린을 비춰주는 장면과, 린에게 선택받은 가족들이 함께 옷을 고르기 위해 쏟아지는 햇살 속에서 길을 걷는 장면이다. 화면은 그들이 누구이고, 어떤 상황인지를 잊게 만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소확행의 실재는 오로지 시각적으로만 존재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고레에가 히로카즈의 이번 영화 역시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가족의 의미를 매우 잘 담았다고 생각한다. 그의 가족시리즈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그의 가족영화가 모두 담긴 한 권의 책이 발간된다면 꼭 사서 소장해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어느 가족 (Shoplifters,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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