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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라면순한맛 Apr 11. 2021

영화 자산어보(The Book of Fish,2021)

조선구마사 사태 뒤 자정작용과 같은 영화

정씨네 형제기(記)


  평범한 대한민국의 성인이라면 역사 속 정약용이라는 인물에 대해 꽤나 자주 마주했을 것이다. 그를 마주한 곳이 학교 안의 수업이든 학교 밖의 드라마든, 그에 대한 이야기는 높은 확률로 대중의 호감을 얻을 수 있는 필살기와 같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 역사적 사실과 거리가 먼 이야기 또한 많이 만들어졌고, 이는 필터링이 거의 되지 않은 채 대중들에게 흡수되곤 한다.

영화 자산어보(2021)

  이러한 맥락에서 소위 흥미 유발이나 경제논리에 목숨을 건 역사적 콘텐츠들이 횡행했고, 결국 선을 넘어버린 조선구마사 사태와 같은 일까지 벌어지게 됐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조선구마사 사태가 벌어지자마자 마치 자정작용이라도 일어난 듯 자산어보라는 영화가 등장했다.

  영화 자산어보는 콘텐츠로 빈번히 소비되었던 역사적 인물 정약용과 관련이 있지만 결코 흥미를 위해 그를 소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형 정약전의 고증 가득한 서사를 통해 단순한 창작물이 아닌 우리와 닮아 같은 고민을 했던 선조들의 이야기를 담담히 풀어낸다.

영화 자산어보(2021)

  물론 이 영화에 대한 호감의 시작은 정약용과 관련되었을 확률이 높지만, 지금까지 친숙했던 자극적인 방법이 아닌, 역사적 고증을 토대로 정씨네 형제기로 하여금 그들의 마주했을 현실이자 우리의 과거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리고 200년 전 그들이 마주한 현실과 고뇌가 우리가 가진 그것들과 닿아있음을 영화를 보며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200년 전의 오래된 현재

  영화 속 배경은 신유박해 직후 성리학의 폐단으로 똘똘 뭉친 조선시대 후기이다. 농민들을 향한 부패한 관리들의 착취는 상상을 초월고, 헬조선이라는 단어의 진정한 의미가 어떤 것인지 여과 없이 보여준다. 그러한 배경 속에서 주, 조연을 맡은 캐릭터들의 고뇌는 참으로 익숙해 보인다. 200년 전 헬조선에서 살던 그들의 고뇌가 200년 후의 같지만 다른 헬조선에서 우리가 하고 있는 고민들과 어느 정도 닿아있기 때문이다.

영화 자산어보(2021)

  언제나 사회는 거지 같고 하나같이 만만치 않다. 약자들은 핍박받고 내가 바라는 게 커다란 것도 아닌데 있는 힘껏 손을 뻗어봐도 도무지 닿을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순수했던 시절 막연한 환상을 갖고 뛰어든 현실의 실체는 도무지 인정하고 싶지 않은 고됨의 연속이다.

  200년 전의 헬조선보다 많은 부분이 나아졌을지언정 여전히 살아내기가 쉽지 않은 오늘이다. 그런데 200년 전 그 험한 조선시대 후기 최악의 유배지인 흑산도에서 물고기 도감을 만들려는 그들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위로를 건네준다.


  그 시절 최고의 성리학자가 유배지에서 물고기 도감을 만드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우리는 2시간의 잔잔한 서사를 통해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이 서사가 단순히 창작물이 아닌 200년 전 오래된 현재임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위로를 받으며 다시 한번 세상을 마주할 용기를 얻게 되는 것이다.

  영화는 흑백의 스크린 속에서 참으로 잔잔하다. 감독의 전작 동주보다도 훨씬 흑백과 잘 어울리는 서사였다고 생각한다. 실제 흑산도를 방문했던 사람들로부터 섬의 아름다움이 흑백이란 이유로 온전히 담기지 못했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했지만 말이다.

  2시간 동안 흑백의 선조들은 그들이 겪은 이야기를 담백히 풀어내며 200년 뒤 후손들에게 힘내라는 위로를 건네고 있다. 그 위로의 진정성은 특히나 믿을 수 있는 역사 콘텐츠가 희귀하게 된 오늘날, 더욱더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다.

영화 자산어보(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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