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nakil Depression
Cruelest Place on Earth - National Geographic
어쩔 수 없었다. 온몸이 근질거려 참을 수 없었다. 카피는 자극적이었고, 동시에 도발적이었다. 나의 첫 휴가는 그렇게 지구 상 가장 잔혹한 땅에 발자국을 남기겠다는 소명으로 시작했다.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리아의 국경지역, 펑펑 터지는 용암을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곳, 해수면 아래의 고도로 인해 펼쳐진 소금호수와 소금사막, 다른 행성에 온 것만 같은 유황 지대까지. 이토록 달콤한,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 있을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지만 이번만큼은 그 설렘을 충분히 만끽해도 무방할 것이다.
다나킬이 있는 메켈레(Mekele) 지역은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국내선으로 2시간 거리에 있다. 그러나 나에게 비행기 같은 부유한 교통수단이란 너무나 과분한 존재였다. 모자란 것은 돈이었고 남아도는 것은 시간이었기에, 비행기 티켓 가격을 확인한 순간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11시간의 버스 티켓을 끊을 수 있었다.
본래 아무데서나 눈만 붙이면 잠이 드는 몸이었다. 눈을 뜰 때마다 달라지는 풍경이 지루함을 메워주기도 했다. 에티오피아의 매력을 새삼 느낄 수 있었던 순간들이 이어져 11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지나갔다.
다나킬 여행은 보통 12~2월이 성수기라 보면 된다. 그쯤의 낮기온이 30도 후반에서 40도를 웃도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필자처럼 5월 중순에 가는 사람들은 그보다 더한 폭염을 맛본다는 뜻이다. 누구나 그랬듯 자연스러운 의문이 든다. 이런 살인적인 기후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긴 할까?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 터전을 마련한 사람들이 있다. 해수면보다 낮은 땅에 바닷물이 유입되고 증발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소금 분지, 그 소금을 소득원으로 살아가는 오랜 민족이 있었다. 아파르(Afar)족은 오랫동안 이 땅에 정착해 소금을 캐고 소금을 공급하는 민족이다.
소금사막의 폭염은 살인적이었고, 그들은 매번 생사의 갈림길에서 소금을 다듬고 있었다. 그렇게 그들이 캐는 소금의 가격은 1kg에 200원 남짓.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의 치열한 삶은 그만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정부는 그들을 계속 설득하고 있었다. 이주를 돕기 위해 메켈레 근방에 거처를 마련해주겠다고도 했지만, 그들은 고향을 절대로 떠나지 않겠다고 한다. 메마르고 잔혹한 땅에서.
나는 한참 동안 그 행렬을, 그들의 걸음걸이를 지켜보았다. 그 속엔 분명 내가 느끼지 못하는, 느낀다 해도 차마 다 감당할 수 없을 그들만의 가치와 신념이 내재해 있을 것이다. 이는 내가 카라반들이 소금을 캐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을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만약 찍었다면, 그들의 넋이 그 작은 카메라 안에 담길 수 있었을까.
짐을 가득 실은 사륜구동으로 한 시간여를 달렸을까, 저 멀리 소금 호수가 보이기 시작했다. 어쨌든 직역하자면 'Salt lake', 소금 호수가 맞지만 어쩐지 우리가 알고 있는 호수와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당시에는 물이 발등 언저리에서 노는 수준이었지만 건기가 지속되면 뜨거운 태양볕에 물이 다 말라버리기도 한단다.
어느새 뜨겁고 강렬한 햇빛이 다가왔다. 석양이 지고 있었다. 소금은 강렬한 햇빛과 만나 그 어떤 보석보다 아름다운 광채를 발산했다. 40도를 훌쩍 넘기는 폭염 속에서 한없이 고요했던 자연은 그 빛으로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하늘과 맞닿은 야생의 염전은 그렇게 나에게 난생처음의 경험을 안겨주었다.
썩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던 나를 도촬한 가이드에게 '파이브 브르'(한화로 250원 정도)를 외워대니 킥킥거리며 질색을 한다. (어느 나라든 비슷하겠지만, 현지인들에게 시도 때도 없이 카메라를 들이대는 관광객들이 참 많다. 돈을 요구하는 건 양반이다. 함부로 찍다가 굉장히 피곤해질 수 있으니 조심하자.)
밤하늘을 이불 삼아 선잠을 치른 다음날, 간단한 끼니를 챙긴 후 곧장 달로 화산(Dallol Volcano)으로 향했다. 90년 전 화산 폭발로 인해 용암과 유황, 수증기, 지하광물이 어우러진 지역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라고는 믿기지 않는 환상적인 풍광을 뽐내는 곳이다. 정말이지 말 그대로 '환상적'인 곳이었다.
드넓은 평야를 달릴수록 확연히 달라지는 지형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차에서 내려 걸어가는 동안 그 변화는 계속됐다. 시야에 담긴 모든 것들이 다감각적으로 흡수되고 있었다. 이내 느껴진 이질감은 나 역시 같은 의문을 들게 했다. 정말 여기가 내가 알고 있는 지구 맞는가, 싶은 의문을.
형형색색의 땅은 어쩐지 좀 화가 난 듯했다.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작은 분화구들을 통해 끓는 액체를 토하고 있었다. 냄새도 풍기기 시작했다. 숨쉬기가 어려울 정도로 지독한 유황가스가 바람에 날렸다. 이 낯설고 기이한 땅은 끊임없이 나의 오감을 자극하며 앞선 의심이 절대 과장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해수면에서 불과 100m 아래 위치한 지각의 단면이다.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우리가 보지 못한 지구의 속살은 도대체 얼마나 더 경이로울까? 자연을 무분별하게 향유한 반대급부가 진행 중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직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은 것들이 훨씬 많은 것이 아닐까? 미래에, 우리는 그것들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부글거리는 유황수에 손을 넣어 보았다. 생각보다는 뜨겁지 않고 기름처럼 미끌거렸다. 다나킬의 카라반들은 해충이나 염증에 효과적인 유황수를 낙타의 피부에 바른다고 한다. 유황이 피부에 좋다는 말은 언젠가 들어본 것 같은데, 진흙 호수로 유명한 랑가노에서도 여드름만 늘었던 것이 떠올라 손만 담가보고 말았다.
폭염 속에서 녹초가 된 몸을 추스리기 위해 메켈레 부근으로 건너가 하루를 묵었다. 가정집에서 오랜만에 커피 세레모니를 대접받으니 꼭 이웃집에 초대받아 큼지막한 사랑방 하나를 내어받은 손님이 된 기분이었다. 뜨끈한 분나와 팝콘을 즐기며 늘어져 있을 때, 어디선가 익숙한 언어가 들렸다. 한국말이었다.
앳된 얼굴이었다. 얼굴은 확실히 현지인이 맞는 것 같다. 그런데 한국어로 통화를 하고 있었다. 외국인들이 한국말을 할 때 느껴지는 특유의 어색한 억양도 없다. 알고 보니 우리가 묵게 된 집주인 아주머니의 딸은 한국 드라마, 그것도 이민호의 어마어마한 팬이었다. 심지어 아이돌 이름은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여행 중 맞닿은 우연이란 것이 이렇게 반갑구나 싶었다. 현지 여행에서 현지인과의 대화를 통해 향수를 느꼈던, 신기한 경험이었다. 우리는 그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했고, 못다 한 말을 위해 후일을 약속했다.
분명 맥주를 위장에 쏟아붓다시피 들이켰지만 컨디션은 날아갈 듯했다. 아마도 얼마 후에 펑펑 터지는 용암을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두근거림이 온몸에 가득 차서 그 어떤 상태나 감정이 비집고 들어올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해장은 맥주보다 차갑고 습한 새벽 공기만으로도 충분했다.
다행히도 살인적이었던 폭염이 주춤해졌다. 가이드 친구가 알아봤더니, 오늘의 최고기온이 45도를 넘기지는 않을 것 같단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말에 안도했던 나 자신이 참 대견하다. 대견하고 끔찍하다.
쉽사리 허락된 길은 아니었다. 하긴, 그 난폭한 화산이 누구에게나 쉽사리 길을 허락한다면 그간 품었던 두근거림이 무색하지 않겠는가. (사실 가장 고생한 사람들은 가이드와 운전기사 친구들이었다..)
방향감각은 옛적에 상실했다. 포장도로는 있을 리 만무했고, 그저 앞으로 가고 있다는 믿음만으로 평야를 가로지를 뿐이었다. 우리의 기운찼던 사륜구동은 그 평야에서 수도 없이 진흙탕에 빠져댔다.
그렇게 빠지고 빼내기를 반복하며 수 시간을 달렸다. 뉘엿뉘엿 기울어지는 태양을 마주칠 즈음 현무암 지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까워짐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자동차로 갈 수 있는 길의 마지막 지점인 소초에 도착해 간단히 끼니를 때우고 본격적인 트래킹을 시작했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트래킹이었다. 하지만 그간 함께한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나아갈 수 있었다. 한국, 프랑스, 이스라엘, 뉴질랜드.. 그렇게 한 자리에 모이기도 힘든 서로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현장은 우리들만의 비정상회담이었다. 하늘은 고요했지만 우리의 발걸음은 그렇게 떠들썩했다.
쉬어가던 차에 가이드는 나에게 은밀하게 자신의 물통을 건넸다. 이럴 수가, 찬물이었다. 한밤중에도 40도를 육박하는 더위 속에서 우리가 마실 수 있는 물은 항상 뜨끈했다. 그런데 어째서? 무려 군용 알루미늄 수통이었다. 24시간 만에 마신 찬물 한 모금으로 삶의 감사함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오랫동안 빛이라고는 손전등과 밤하늘의 별이 전부였다. 그리고 마침내, 저 멀리 벌겋게 솟아오르는 연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불콰한 자연이 기세 좋게 트림하는 것 같았다. 발걸음을 재촉하기에 충분한 도발이었다.
에티오피아 군인이 교대로 근무하는 듯한 초소에 도착했다. 초소 너머로 불친절하게 만들어놓은 돌계단을 내려가니 숨이 막히기 시작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내뿜는 가스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도 압도적이었다. 용암은 숨 막히는 고요함 속에서 그저 숨쉬고 있을 뿐이었다.
한참 동안 지켜보았다. 경외감을 넘어선,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휘몰아쳤다. 황망한 순간이었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얼굴은 타들어갈 듯했지만 그 순간을 온몸에 오감으로 새기고자 꼿꼿이 지켜보았다.
가이드는 내게 맘에 들지 않냐고 물었다. 어딘가 김샌 표정이란다. 아니라 답했지만, 그다음의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제야 생각해보면 나는 그 앞에서 무척 힘빠진 기색이었던 것 같다. 압도당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무섭지는 않았으며, 어딘가 뜨거웠지만 피곤하기도 했다. 불안하며 초연했다.
한 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광경을 뒤로하고 초소에서 잠을 청했다. 밤하늘을 벗삼아 잠을 청하는 마지막 밤이었다. 이명처럼 남은 용암 소리는 끝없이 온몸으로 울려 퍼졌고, 그것만으로도 그날의 잠자리는 오성급, 아니 밤하늘의 별 개수만큼 별점을 줄 수 있는 완벽한 초호화 호텔이었다.
3년 4개월 같았던 3박 4일의 여정은 이렇게 끝이 났다. 에티오피아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아니 평생 잊지 못할 순간 중 하나였던 이 여정만큼은 더 이상 흐릿해지기 전에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지옥 같은 더위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이 일궈나가는 지난한 삶들이 자기와는 무관하다는 듯 태연하지만 압도적인 자연, 그 속에서 켜켜이 쌓인 세월이 말하는 세상의 순리, 뿐만 아니라 다 말할 수 없고 이루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찰나에 묻어난 시간들이었다.
가끔 끄집어내 천천히 되짚어본다. 현실이지만 현실 같지 않았던, 시뮬라크르의 연속이었던 삶에 잠시나마 세상의 본질을 사유했던 시간들, 어떠한 여지도 남기지 않았던 특유의 아우라, 긴 호흡의 반성.. 그리고 이내, 현실로써 존재하는 자신을 돌아본다. 지금은 얼마나 별것도 아닌 자극에 놀라고 경계하는 나 자신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