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오후
이 시간 나에게 필요한 것은 남은 오후를 지탱해줄 진한 커피한잔. 누군가는 비타민, 콜라, 소주 한두잔 일수도 있겠다. 삶은 닮콤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악마와도 같다. 작은 악마, 큰악마, 귀여운 악마, 미운악마 등등.
내가 쓰는 연한 갈색 원목 책상위에 커피 한 잔을 올려 놓고 천천히 한 모금씩 마신다. 문득 커피 한 잔이 여기 놓이기까지 어떤 역사적 사연들이 있었을까? 궁금해졌다. 커피 한 모금 삼키고 나서 핸드폰 검색을 해본다.
생각보다 많은 가설들이 있었다. 이야기들을 편집해 스토리를 만들어 본다.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를 따 먹고 정신이 맑아져 선악을 구분하게 된다. 도대체 이 열매가 무엇일까? 바로 커피. 보통은 사과라고 하지만 사과 먹고 머리가 맑아진 사람은 거의 없다. 그 선악과가 있던 에덴동산은 아마도 지금은 에티오피아 일거라는 설이 있다.
시간은 흘러 에티오피아의 "칼디"라는 염소지기가 등장한다. 그는 늙은 염소가 빨간열매를 먹더니 잠도 안자고 뛰어다니는 것을 발견한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수도원 원장에 가져가 물어본다. 빨간 열매를 직접 먹어본 원장은 커피 효과를 체험한 후 수도원의 누구도 커피를 먹지 못하게 엄명을 내렸다. 정신이 맑아지고 잠이 오지않는 효과는 악마의 유혹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벽난로에 열매를 던져 태운다. 그런데 그 커피 굽는 냄새가 온 수도원에 퍼지고 누군가 몰래 탄 커피 열매 가져와 물에 끊여 마시게 된다. 이렇게 사람들 사이에 커피가 퍼지게 되었다고 한다.
기원전 1000년쯤 시바의 여왕(예멘)이 솔로몬에게 선물을 한다. 그 선물 목록에는 커피가 있었다. 당연히 솔로몬은 커피를 마시게 되고 무역을 통해 인근 지역으로 퍼져나간다.
기원후 610년쯤에 마호메트가 동굴에서 수행 중에 건강이 매우 안 좋와진다. 이때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빨간열매를 따 먹으라 한다. 이 열매를 따먹고 건강을 회복한 마호메트로 인하여 이슬람 전체가 커피를 마시게 된다.
커피가 유럽으로 건너온 시기는 이슬람이 커피를 즐기기 시작하고 1000년이 지나서라고 한다. 물론 십자군 전쟁(1069-1291)때 부터라는 설도 있다. 그러나 정설은 오스만제국(지금의 터키)의 유럽침공(1683) 때문이라는 설이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패한 오스만은 퇴각할 때 커피 원두를 상당히 남겨두었는데, 이것이 커피의 유럽 전파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커피의 효과는 유럽 지식인들에게 과로를 허락했다. 루소(1712-1778)은 매일 커피를 즐겨 마시며 사색을 했고 임종 직전 "이제 커피잔을 들 수 없구나"라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 나폴레옹도 커피를 즐겼는데, 특히 아침에 커피를 마시지 않고는 기상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병사들에게도 커피를 보급품으로 제공 했다. 발자크는 커피를 하루에 100잔을 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독일의 괴테는 하루에 커피 30잔을 마시고 파우스트를 썼다. 프랑스 혁명의 시작은 카페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개항과 함께 커피가 들어왔지만 본격적으로 대중에 알려진 것은 625사변 미군의 c레이션이라고 한다. 그후 1956년 동숭동에 학림다방이 생기면서 대학가에 커피가 유행한다. 1976년 동서식품에서 인스탄트 커피를 판매하면서 다방보다는 집, 직장에서 커피를 마시게 되었고 이때부터 다방은 영업을 위해서 음악다방과 성인다방이 변신한다. 1976년 동서식품은 세계 최초로 커피믹스를 만든다. 올림픽과 더불어 원두 수입제한이 풀리고 압구정에 '자뎅' 카페가 오픈하면서 커피 전문점 시대가 시작된다.
시간을 흘러흘러 2018년 2월 중순, 내 쓰는 연한 원목 책상위에 커피 한잔이 놓여있다.
나에게도 커피는 꼭 필요한 필수 음료가 되어버렸다. 수면부족, 나태, 게으름으로 사라져가는 열정을 붙잡아 줄 묘약으로.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기 오래 전 부터 커피는 나를 기다렸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