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두길 잘한 것들의 목록_서윤후
그런 날이 있다. 하루가 내편인 거 같지 않고 고단해 침대에 혼자 시간을 보내게 되는... 나에게는 오늘이 그러했다
모든 말에 부정이 깃든 밤
타오르는 불꽃에 우둑이 서서 바라보는 허망감
잃은 건 아무것도 없지만 허망하게 느끼는 공허함
좀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인생은
무언가 하루하루 성취하지 않는 인생은
잘 살고 있는 게 아닐까?
그만두길 잘한 것들의 목록_서윤후 지음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끝맺음을 선택한다는 것은, 말줄임표를 남기지 않고 무언가 운을 띄울 수 있다는 좋은 징표였다.
#다른 고독을 이해하는 따뜻한 고독감을 가진 사람이었다.
#일기는 생활을 촘촘하게 기록하는 일이니 그 밀도에서 끓는점이 잘 보였고, 하루를 결정짓는 어떤 미묘한 순간이 매일 온다는 것도 발견할 수 있었다.
#특별히 대단하거나 극적이지 않더라고, 혹은 아무런 맥락 없는 하루였더라도 그날 느낀 감정이나 지니게 되었던 마음을 기록하는 것은 나의 흔들림을 정직하게 기록하는 일이었다.
#어쩌면 일기는 그 사람의 가장 투명한 물방울이 맺히는 모서리가 아닐까 싶어서.
#’ 해바라기는 어린 시기에만 햇빛을 따라서 동서로 움직이며 꽃이 피고, 성장기가 지나면 몸을 돌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채울수록 허전해지는 일은 내 생활에서 가장 오래된 멀미이기도 하다.
#책은 좋은 혼돈을 야기한다. 그 혼돈 속에서 책이 우리의 사유를 스치며 만드는 상처를 간직한 채 문장 사이를 헤매는 것이 독자가 누릴 수 있는 순수한 기쁨일 것이고, 그것을 오롯이 누리기 위해 내적 흥분을 가라앉힐 수 있는 생활 속 시간을 마련한다. 책 덕분에 살림이 좀 더 단정해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생활이란 쓸쓸함을 견디는 것입니다” <다자이 오사무_나의 소소한 일상>
#기분이 어딘가에 부딪혀 닳아 없어질 지경이 되면, 언제나 새로운 옷을 입혀주곤 했다. 마치 부끄러운 곳을 새 것으로 가려주듯이. 그 옷이 질리면 또 새로운 옷으로 고쳐 입고, 또 새로운 옷을 기워 입으면서 헐벗은 나의 구석을 가볍고 쉽게 만회했다. 만회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만큼 버려지는 것이 더 많았고, 외면했던 것을 단숨에 다시 마주해야 하는 시간도 찾아왔다.
#새로움이 주는 그 잠깐의 기쁨 대신에 고리타분한 내 것을 더 고쳐주고 돌보며 내게서 지속되는 오래된 마음과 닮은 것들을 갖기로 결심했다.
#거기에 내가 되어가는 시간이 있었고, 시는 내게 가르쳐주었다. 내가 두고 가야 할 것이 무엇인지,
# 그것을 심판하려고 들 때마다 나는 제대로 살고 있지 않은 듯했다. 버티는 힘의 끈기와 참아야만 하는 삶의 속내를 동시에 붙들고 있는 모습이 아무래도 행복해 보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가 견디는 일이나 버티는 일을 그만두고 싶어 하는 것은, 꽉 쥐고 있던 어떤 손톱자국이나 이빨 자국이 오래도록 몸에 남기 때문이다.
#홀연히 떠나는 타이밍이, 놓아주는 느슨함이 더 큰 기다림을 버틸 수도 있게 하니까
#’ 약하고 자연스러운 건축은 건축의 새로운 힘을 획득하기 위한 전략이다. 결국 약함은 균형과 관련된 문제다. 균현 잡힌 약함보다 강한 것은 없다. 약한 것들은 변화에 잘 적응하고 바로 그 약함 때문에 살아남는다”<쿠마 켄고, 약한 건축>
#하루 종일 여러 갈래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결국 하나의 맥락으로 흐르고 있다고 느껴졌다
#”저는 언제나 희망보단 절망 가까이에 있는 편이 좋아요. 희망을 쫓을 때보다 절망에 가라앉아 있을 때 드문드문 발견한 희망들이 더 많았고 잦았거든요.”
#더욱 중요한 것은, 무언가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현재의 현장감을 최대한 만끽하는 것.
#’ 기본’이 선사하는 단정하다는 감각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아간다.
#기본이 어렵다는 것, 삶의 기울기에서 치우치기도 쉽다는 것, 금방 잊히고도 갈망하게 된다는 것, 입속에서 곱씹어본다.
#내가 그 단어를 잊은 게 아니라, 그 단어가 나를 잊었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는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앉아서 기름 난로의 온기를 느낀다. 서로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 차표의 행선지로 가는 기차가 먼저 온 것일 뿐이다.
#혼자 있는 시간 속에서 시의 미로를 헤매고, 길을 만들고 허무는 작업이 좋았다. 정답이 없다는 그 막막함을 무엇이든 해도 좋다는 드넓은 용기로 바꾸는 일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