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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등어 Apr 21. 2017

비행기를 왼쪽으로 타는 이유

뱃사람들의 이야기

  우리는 대칭과 균형을 볼 때 안정감을 느낀다. 대칭 화면을 위해 영화관의 중앙 좌석을 선택하고, 양쪽 차선의 수가 맞게 중앙선을 긋고, 보고서도 오와 열을 맞춰 쓴다. 하지만, 모든 것이 중앙에 놓이고 균형이 맞을 수는 없는 법. 물은 오른쪽에 빵은 왼쪽에, 영화관의 어느 쪽 팔걸이가 내 팔걸이인지, 짜장이냐 짬뽕이냐 등등 우리는 이분법적인 선택을 종종 하게 된다. 


  그중에서도 특히 암묵적으로 정해진 방향과 관련된 선택은 흥미롭다. 운전석의 위치, 경찰차의 경광등의 색깔, 우측통행 규칙 등은 중앙이라는 개념이 없어 두 방향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사회적 약속들인데, 이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존재이면서도 흥미로운 주젯 거리가 되기도 하고, 간혹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한다. 


  자동차처럼 비행기의 출입구는 옆면에 있기 때문에, 비행기에 오르내리기 위해서는 오른쪽이나 왼쪽 문을 통해 타야 한다. 자동차의 경우 뒷좌석 승객들은 자신이 원하는 문으로 타면 되기 때문에 아무 문으로 올라도 되고, 비행기의 승객 역시 어느 문으로 타든 상관은 없어 보이지만, 들뜬 마음으로 여행길에 올라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고 있던 때들을 떠올려보면, 항상 왼쪽으로만 오르내렸던 것만 같다. 


  브릿지가 왼쪽으로 오르내리도록 설계가 되어서일까? 그렇다면 사다리차로 오르내릴 때는? 사다리차 역시 예외 없이 항상 왼쪽 출입구에 다가간다. 세상 어느 공항을 가든, 비행기는 왼쪽 문으로 타게 된다. 왤까?




참 고집스럽게도 왼쪽으로만 탄다.


선박의 후예

비행기


  공항. 항공. 항로. 순항.

  비행과 관련된 단어들을 쭉 살펴보면 유난히 '항'자가 많이 눈에 띈다. 이때 '항'은 배를 접안시키는 곳을 의미하는 '항구 항(港)'자. 배에서 쓰이는 글자가 비행기에 쓰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의 일 뿐만은 아니다. 공항을 영어로는 airport, 독일어로는 Flughafen이라 부르는데 이때 영어의 port와 독일어의 hafen은 모두 '항구'를 의미. 이외에도 속도 단위로 사용하는 노트(knot), 순항을 의미하는 cruise 등 선박에서 사용하던 용어가 비행기에서도 쓰이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비행기와 배의 어떤 연결고리를 암시하는 대목이다.


  이 정도로 공유하는 것들이 많으면 배와 비행기가 사촌지간쯤 되어 보인다. 아니, 비행기가 배의 후손이라고 보는 것이 맞겠다. 첫 비행이라 해봐야 120년 전 일이지만 배를 탔던 이야기는 고대 이집트 벽화에도 등장하니까.


화물기에 싣는 주화물도 왼쪽으로 적재된다.


  그런데 배는 하늘을 날 수 없고 비행기 역시 바다에 떠다니라고 만들어진 것은 아닌데 둘이 왜 이리 친한 티를 팍팍 내는 것일까? 


  사실, 둘의 공통점은 '길을 찾는 방식'에 있다. 비행하는 것이나 항해하는 것이나, 참조할 만한 지형지물이 없는 공간에서 길을 찾아가야 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땅이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에서 과거의 항해사들은 하늘의 별이나 나침반을 이용해 방향을 잡아갔고, 초창기 비행기도 하늘에서 길을 찾기 위해 별과 나침반을 사용했다. 또, 각각 물과 공기의 '흐름'을 제어해 조종한다는 공통점까지 있어 비행기를 조종하기 위해서도 배에서 습득한 지식이 필요했는데, 비행기와 배의 방향타가 둘 다 러더(rudder)로 이름이 같은 것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기존에 발달해있었던 다수의 항해법들이 비행법으로 전수되었고, 이 과정에서 선박에서 사용되는 용어나 관습들도 같이 넘어온 것으로 많은 사람들은 보고 있다.


공돌이의 노트 #1
  자동차나 기차는 어떨까? 둘 다 차(車)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 둘은 '마차'의 후손들이다. 땅에서 이동하며 지형지물을 참조해 길을 찾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현재 우리가 많이 이용하는 철로나 고속도로들이 과거 마차로 오가던 무역로들 위에 지어졌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새삼 신기하게 느껴진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와 아라비아 상인들이 이용하던 실크로드가 대표적인 예시.


비행기의 방향타(수직 꼬리날개)와 배의 방향타 둘 다 Rudder로 이름이 같다.


  그렇다면 비행기를 왼쪽으로 타는 것과 같은 관습이 배에도 있었던 것일까? 사실 이 질문에 대한 힌트는 비행기와 배가 공유하는 또 다른 용어에 드러나있다.


  항공과 항해 분야에는 좌현(왼쪽)은 포트(port), 우현(오른쪽)은 스타보드(starboard)라는 방향을 지칭하는 고유의 용어가 있다. 흥미롭게도 각 단어들은 배의 양측이 각각 어떤 용도로 사용됐던 것인지 암시해주고 있다. 우현을 의미하는 starboard에서 눈에 띄는 단어는 'star'. 별이라는 의미지만, 사실 우현의 star는 방향을 조절한다는 뜻의 'steering(스티어링)'에서 유래한 단어다. 과거에는 배의 오른편에서 배의 방향을 조절했다고 하는데, 여기서 우현의 이름이 유래했다. 한편, 좌현을 의미하는 port는 항구를 뜻하는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단어다. 

  엇? 눈치가 빠른 분들은 느낌이 왔을지도 모르겠다. 좌현의 이름이 port로 지어진 것은 바로 왼쪽이 배를 항구에 정박시켰던 방향이었기 때문! 사실 좌현의 원래 명칭은 '화물을 싣는 쪽'이라는 뜻의 larboard(load-board의 준말)였다는 것을 보면 항구에 배의 왼편을 댔던 것이 더욱 확실해진다.


  비행기의 선조인 배에 왼쪽으로 오르내렸던 역사가 있으니 아무래도 비행기의 탑승 방향 역시 선박의 오래된 관습에서 왔을 확률이 높아 보인다.


자 그렇다면 다음 질문.

왜 하필 왼쪽이었을까?




오른손잡이들의 흔적

왼쪽으로 정박하는 배


  배를 왼쪽으로 정박했던 이유는 아주 먼 옛날에 쓰이던 배의 형태로부터 찾을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지금의 비행기처럼 배도 방향을 조절하기 위해 방향타 혹은 러더(rudder)라고 불리는 판을 사용한다. 그런데 이 러더가 발명되기 전, 옛날 배들은 지금의 좌우로 펄럭이는 러더 대신, 선회노(steering oar)라는 나무로 된 노를 이용해 방향을 조절했다. 문제는 이 선회노가 배 옆으로 튀어나온 형태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선회노가 장착된 쪽으로는 배를 정박할 수가 없었다는 점. 

  즉, 오른쪽에 선회노가 있으면 왼쪽으로 배를 정박하고, 왼쪽에 노가 있었다면 오른쪽으로 정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배의 오른쪽이 steering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starboard라고 불리는 것을 안다. 즉, 배를 항상 왼쪽으로 댔다는 것은 옛날 뱃사공들은 선회노를 오른쪽에 두었다는 뜻!


맨 왼쪽의 사람이 선회노를 쥐고 있다.


  그렇다면 하필 왜 선회노를 왜 꼭 오른쪽에 두어야 했던 것일까?

  눈으로 보는 게 제일 쉬우니 그림을 보자. 잘 보면 타수로 보이는 맨 뒷자리 사람은 오른손 한 손으로 선회노를 잡고 있는 것이 보인다. 배에는 8명가량이 타 있는데 한 개의 노로 방향을 바꾸는 일이 쉽지는 않아 보인다. 아마 사람들은 힘을 많이 낼 수 있는 쪽으로 노를 두지 않았을까, 예상해볼 수 있다.

  힘을 많이 내는 쪽의 손? 그렇다! 결국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의 문제였던 것! 오른손잡이들은 오른쪽에, 왼손잡이들은 왼쪽에 노를 두었을 것인데 인류의 85~90%는 오른손잡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른쪽에 선회노를 두었을 것이고, 어쩔 수 없이 과거 뱃사람들은 배를 왼쪽으로 정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결국 이 관습이 굳어져 배의 왼쪽으로는 화물과 사람들이 오르내리게 되었고, 오른쪽으로는 필요 없는 물건들이 버려지곤 했다.




고대 뱃사공부터

지금의 비행기까지


  왼쪽과 오른쪽의 역할을 분할하는 것은 운영 효율상의 이점이 많았기 때문에 선박도, 비행기도 이 관습을 꾸준히 유지했을 가능성이 크다. 오늘날 비행기의 위층에 탑승하는 사람이나 화물은 모두 왼쪽으로 탑승 및 적재되고, 기내식이나 승객들의 짐들은 오른쪽으로 공급된다.


엔진의 번호와 시동 순서는 반대다.


  비행기와 왼쪽의 관계는 비행기의 엔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브릿지 탑승 방식이 없던 시절에는 승객들이 비행기에 탑승하기 위해 엔진 바로 옆을 걸어 다녀야 했다. 승객들이 왼쪽으로 탑승하던 것을 고려해 왼쪽의 엔진은 승객들이 모두 탑승한 뒤 시동을 걸었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오른편의 엔진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이 관습 역시 브릿지를 이용하는 지금까지 일부 여객기들에 남아 오른쪽 끝의 엔진부터 시동을 걸고 순차적으로 왼쪽의 엔진을 가동한다고 한다. 엔진 번호는 글을 읽는 방향을 따라 왼쪽부터 1-2-3-4번으로 부르지만, 시동은 4-3-2-1 순인 것.


앞으로 친구가 왜 비행기는 왼쪽으로 타는지 물어본다면 한 마디 해주자. "오른손잡이"


공돌이의 노트 #2
  좌우에 따라 엔진 시동 순서를 결정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따라서 현대 여객기들은 엔진과 관련된 기기장치들의 연결상태에 따라 엔진 시동 순서를 결정하도록 설계되었다. 특히, Airbus사에서 제작한 기종의 경우 왼편부터 시동을 거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람부터가 비대칭적인 존재다. 대칭형 얼굴, 양손잡이라는 것이 신기한 것으로 간주되곤 하니까. 당연하게 여기던 오른손잡이 중심의 사회가 알게 모르게 많은 것들의 '방향성'을 결정했다는 사실이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소름이 돋는다. 예부터 이어져와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는 것은 얼마나 많을지, 나아가 우리가 '전혀 모르게' 영향을 주고 있는 것들은 또 얼마나 많을지 생각해보면 다소 두렵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오른손잡이가 많았던 인류, 그렇게 결정된 고대 선박의 정박 방향, 그 전통을 이어받은 비행기, 그리고 오늘도 port side로 비행기를 타는 우리까지. 참 흥미진진한 연결고리다.




*이 글은 '더퍼스트미디어'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많은 구독 부탁드려요!

비행기를 왼쪽으로만 타는 이유(feat. 옛날 옛적 뱃사공) | 더퍼스트미디어

우리는 대칭과 균형을 볼 때 안정감을 느낀다. 대칭 화면을 위해 영화관의 중앙좌석을 선택하고, 양쪽 차선의 수가 맞게 중앙선을 긋고, 보고서도 오와 열을 맞춰 쓴다. 하지만, 모든 것이 중앙에 놓이고 균형이 맞을 수는 없는 법. 물잔은 왼쪽에 빵은 오른쪽에, 영화관의 어느쪽 팔걸이가 내 팔걸이인지, 짜장이냐 짬뽕이냐 등등 우리는 이분법적인 선택을 종종 하게 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암묵적으로 정해진 방향과 관련된 선택은 흥미롭다. 운전석의 위치, 경찰차의 경광등의 색깔, 우측 통행 규칙 등은 중앙이라는 개념이 없어 두 방향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사회적 약속들인데, 이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존재이면서도 흥미로운 주젯거리가 되기도 하고, 간혹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한다. 자동차처럼 비행기의 출입구는 옆면에 있기 때문에, 비행기에 오르내리기 위해서는 오른쪽이나 왼쪽문을 통해 타야한다. 자동차의 경우 뒷좌석 승객들은 자신이 원하는 문으로 타면 되기 때문에 아무 문으로 올라도 되고, 비행기의 승객 역시 어느 문으로 타든 상관은 없어보인다. 하지만 들뜬 마음으로 여행길에 올라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고 있던 때들을 떠올려보면, 항상 왼쪽으로만 오르내렸던 것 같다. 브릿지가 왼쪽으로 오르내리도록 설계가 되어서일까? 그렇다면 사다리차로 오르내릴 때는? 사다리차 역시 예외 없이 항상 왼쪽 출입구에 다가간다. 세상 어느 공항을 가든, 비행기는 왼쪽문으로 타게 된다. 왤까? 참 고집스럽게도 왼쪽으로만 탄다. 선박의 후예, 비행기 공항, 항공, 항로, 순항… 비행과 관련된 단어들을 쭉 살펴보면 유난히 '항'자가 많이 눈에 띈다. 이 때 '항'은 배를 접안시키는 곳을 의미하는 '항구 항(港)'자. 배에서 쓰이는 글자가 비행기에 쓰이고 있는 것. 이런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의 일뿐만은 아니다. 공항을 영어로는 airport, 독일어로는 Flughafen이라 부르는데 이 때 영어의 port와 독일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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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jetphotos.net, kr.pinterest.com
참조 자료: en.wikipedia.org/wiki/Port_and_starbo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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