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덕에서 너븐숭이까지.
네가 나에게 북촌리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물어보는구나. 안 그래도 요 며칠 사이에 북촌리를 다녀왔지.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함덕에서 북촌까지 걸었었지. 그들이 그때 당시 걸었던 길을 느끼기 위해서, 조금이나마 공감하기 위해서.
북촌리는 말이야, 가장 가슴 아픈 곳 중 한 곳이야. 제주4.3사건 당시 가장 큰 학살을 당했던 곳이 북촌이었지. 잠시 북촌리 제주4.3 이야기를 하자면 북촌리에는 똑똑했던 사람들이 많았다고 해. 그만큼 의식이 깨어있었다는 것이지. 그래서 그때 당시 북촌에 있었던 젊은 지식인들은 경찰들의 악행에 대한 반발을 느껴 무장대가 되기로 결심했어. 하지만 젊은이들은 몰랐을 거야. 자신들의 그런 행동이 마을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 줄은. 이렇게 많은 젊은이들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으니깐 군인들은 북촌리를 빨갱이 마을처럼 여겼었대. 그때가 제주4.3사건이 일어난 때이기도 하니 당연히 군인들에게는 북촌리가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어. 그런데 어느 날 밤, 사건이 터져버린 거야. 북촌리로 돌아가고 있는 차를 무장대가 습격해버렸지. 그 일 때문에 2명의 군인이 숨졌어. 그 숨진 군인을 마을 사람들이 파출소로 데리고 왔는데, 군인들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그 사람들을 총 쏴 죽였어. 군인들의 불신이 정점을 찍은 것이지. 그렇게 북촌리 제주4.3은 시작된 거야.
그 날은 바람이 많이 불고 추운 날이었어. 동짓달 보름날에서 3일 정도 지난날, 즉 12월 18일쯤 되는 날이었지. 갑자기 군인들이 마을 모든 집집마다 들이닥쳐서 남녀노소, 노약자들을 다 학교 운동장으로 내몰았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고 해. 그러더니 “불났져, 불났져”라는 소리와 함께 마을 전체가 불에 타기 시작한 거야. 사람들은 당황했어. 자신들의 터전이,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불타버렸으니 당연히 그랬겠지. 그때 모였던 사람들이 약 천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었는데 모두 공포에 떨었어. 비극은 그때부터 시작된 거야.
교단에 오른 현장 지휘자는 그때 당시 민보단 책임자들 여덟 명을 세워 놓았대. 그리고는 그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고 그 자리에서 즉결 사형을 했어. “ 보초를 잘못 섰기에, 그 군인들이 죽은 것이다.” 라면서. 그런데 그 사람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었겠어. 그 사람들이 함정을 설치해 놓은 것도 아닌데 말이야. 결국 억울하게 8명의 목숨이 먼저 떠나가버린 거야. 사람들은 이 모습들을 보고 공포에 떨었대. 사람들이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죽었는데 당연히 두려웠겠지.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어. 그 지휘자가 경찰 가족은 옆으로 빠지라 하고, 아이들에 시켜서 빨갱이 가족들을 색출해 내라고 위협했어. 그런데 뭐, 아이들이 알고 있어 봤자 얼마나 알겠어. 화가 난 군인들은 경찰 친척을 제외하고 남은 사람들을 30명씩 세웠대. 그리고는 갑자기 군인들이 총을 뽑아 들더니 사람들을 향해 막 총을 쏘아대기 시작하는 거야. 군인들은 사람들을 운동장 구석으로, 당팥으로, 옴팡밭으로 데려가 총을 쏘아댔대. 덕분에 사람들은 큰 혼란에 빠졌지. 그때 이야기를 들어보면 옆에서 자신의 이웃들과 가족들이 흩날리는 꽃잎처럼 쓰러져 갔대. 그렇게 몇십 명씩 끌려가 죽임 당해야 하는, 그 억울하고 비참한 죽음을 주민들은 받아드려야만 했어.
한 오후 4시쯤 됐을까. 사람들은 학살하는 군인들 조차 지쳐 갈 무렵. 저 멀리서 “ 사격을 중지하라”라는 소리가 들려왔대. 그리고는 죽임 당하지 않은 사람들을 다시 초등학교로 모았지. 그리고 교단에 오른 사람은 말했어. “ 지금 집이 다 불탔으니, 오늘만 자고 함덕으로 피난 가라.”라고. 약 다섯 시간을 거친 북촌 제주4.3사건이 이렇게 막을 내린 것이지. 다음 날, 눈과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는 날, 남아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터전, 추억, 희망을 그곳에 남겨둔 채 함덕으로 떠났단다.
이게 끝이야. 북촌리 제주4.3사건은.
내가 걸어갔다고 한 길은 바로 남겨진 사람들이 걸었던 피난길이란다. 삶의 터전을 잃고 소중한 사람을 잃었던 그들이 걸었던 길.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공감해보고 싶었단다. 나는 너무 행복하게 자랐기에, 그런 내가 그들을 공감하기란 너무 어려웠기에 몸으로라도 공감하고 싶었지. 다행히 그 길을 걸어보니 그들의 마음을 아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단다. 죽은 가족들, 친구들에게 제대로 된 장례도 못 치러준 채 그저 멍석만 덮어주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심정을. 물론 나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겠지. 하지만 조금이라도 더 노력을 해보는 거야. 늦게나마 그분들의 마음속에 숨겨두셨던 한을 조금이나마 풀어드리기 위해,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진짜 위로이기에……. 나는 우리가 그들의 남겨두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심정을 공감할 수 있도록 노력했으면 좋겠어. 하루아침에 자신들의 사랑, 우정들이 사라져버린 그 기분을 말이야. 살아도 산 것이 아닌 그 기분을 말이야. 지금도 할머니들에게 그때의 이야기를 물어보면 눈물을 감추시지 못하셔. 아직도 그 사람들을 잊지 못하기에,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너무 미안하기에.
지금 우리들은 너무나 딱딱한 세계에서 살고 있어. 지독한 개인주의들, 각자 자신만 바라보도록 세상이 만들어가고 있지.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모두가 알았으면 좋겠어. 우리 주변에는 우들의 관심과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사람들이 많다는 거야. 작게는 우리들의 친구들, 크게는 제주4.3사건 피해자,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유족들, 4.16 세월호 유가족들 등…… 나는 우리가 이런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며 살았으면 좋겠어. 왜냐하면 우리들도, 지금의 모습이 있는 것은 다 누군가의 관심과 위로와 격려가 있었기 때문이니깐.
그러니 이제 우리들 차례야,
그분들을 위로해드리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