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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lusive Writing으로 다양성 포용하기 ②

나이와 장애에 대해서

by Sunny Lee

2017년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질병통제예방센터(CDC)를 비롯한 보건·연구 기관에 특정 단어 사용을 피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금지어로 알려진 단어는 다음과 같다.

Vulnerable (취약한)

Entitlement (수급권, 권리)

Diversity (다양성)

Transgender (트랜스젠더)

Fetus (태아)

Evidence-based (증거 기반)

Science-based (과학 기반)


트럼프 행정부의 언어 통제 시도는 언어가 결코 중립적이지 않으며, 사회 안에서 힘과 자원을 더 많이 가진 집단의 관점이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주류 집단의 시선으로 쓰인 언어는 그 밖의 개인이나 집단을 보이지 않게 만들거나, 왜곡된 모습으로 드러내는 결과를 낳는다.

비단 사람의 정체성을 다루는 문장에서만 발생하는 문제는 아니다. 겉보기에 단순한 설명이나 은유적 표현에도 주류 집단의 관점이 스며들어 있을 수 있고, 그럴 경우 의도치 않게 특정 집단을 배제하거나 차별하는 결과를 만든다.


그렇기에 Inclusive writing은 정체성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언어뿐 아니라,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언어 사용 전반에서도 주의를 기울이도록 가이드를 제시한다. 뿐만 아니라 Inclusive writing은 누군가의 정체성을 모욕하는 언어를 저지하고, 언어의 주도권을 정체성을 가진 당사자에게 돌려주고자 한다. 그렇기에 사람의 정체성과 관련된 표현에 가이드 내용이 집중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1편에서는 포용적 글쓰기의 배경, 특징, 한계를 간략히 살폈다. 이번 편에서는 실제 글로벌 기업에서 사용하고 있는 Inclusive Writing 가이드를 기반으로 가이드의 전체적인 방향을 살펴보고, 나이/장애/젠더/인종 등의 카테고리별로 문제 표현과 대안을 영문 예시와 함께 소개한다.




전체 가이드


전체적인 원칙은 크게 두 갈래, 즉 사람에 대해 쓸 때와 사람에 대해 쓰지 않을 때로 나눌 수 있다.


사람에 대해 쓸 때


1. 불필요하다면 정체성을 언급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여성인지, 장애인인지, 흑인인지 알려주는 것이 꼭 필요한 정보인가? 그렇지 않다면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다. 이는 특정 정체성이 ‘기본값’이 아니라는 무의식을 드러내는 것이며, 결과적으로 포용적이지 못한 글이 된다.


2. 언급이 필요하다면 편견이 포함된 언어를 피한다

누군가의 정체성에 대해 언급해야 한다면, 신중한 단어 선택이 필요하다. 무심코 사용되는 언어 속에는 사회의 권력 구조가 그대로 반영된다. 언어는 남성, 이성애자, 백인, 젊은 층, 비장애인, 중산층을 중심으로 편향돼 왔다. 그 결과, 비주류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그 외 사람들’로 납작하게 표현되고, 그 사람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를 그 사람 전부로 치부해버리기도 한다.

주류 중심의 문화와 언어에서 오래 사용된 관용구, 은유, 혹은 익숙한 표현일수록 그 기원과 맥락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 누군가를 배제하고 차별하는 언어라면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3. 정체성을 존중하며 정확히 표현한다

우리가 포용적 관점에서 새로 선택해야 하는 언어는 정체성을 인정하고 당사자성이 존중되는 언어여야 한다. 당사자성을 존중하는 언어는 개인의 정체성을 그가 원하는 방식대로 표현한다. Inclusive Writing을 하려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정체성에 대해 심도 있고 복잡하게 알아야 하는 걸까 걱정이 될 수도 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귀를 기울기고 고개를 끄덕이는 행위이다. 그 행위는 소외받고 배제받았던 누군가에게 스스로에 대해서 가장 잘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그 당사자 자신임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에 대해 쓰지 않을 때

1. 다양성을 의식적으로 반영한다.

특정 개인이 아닌 사람들 전반을 언급할 때에도 신중해야 한다. 자신에게 익숙한 모습만 떠올리며 특정 성별·인종·건강 상태에 국한되지 않도록 주의한다. 대표성이 낮았던 집단을 의도적으로 가시화하는 것이 글을 더 포용적으로 만든다.


2. 단어 선택을 신중히 한다

사람을 직접 묘사하지 않더라도, 특정 단어나 표현이 특정 집단을 소외시키지 않는지 점검해야 한다. 집단의 고통스러운 역사와 연결된 말이나, 비하적 맥락에서 사용된 표현은 특히 조심해야 한다. 이런 언어는 편견과 혐오를 재생산하며, 의도치 않게 누군가를 모욕할 수 있다.


결국 의도보다 영향

포용적 글쓰기에서 가장 핵심적인 원칙은 의도보다 영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배제하거나 상처 주려는 의도가 없더라도, 특정 집단에게 부정적 영향을 준다면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심지어 ‘긍정적인 고정관념’조차 문제를 낳는다. 예컨대 '여성은 온순하다' 같은 말은 칭찬처럼 보일 수 있으나, 결국 특정한 틀에 사람을 가두는 결과를 만들어 당사자는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따라서 내 의도가 얼마나 긍정적이고 숭고한지에 집중하기보단 내 글이 만들 수 있는 영향을 생각하며 신중하게 글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



그럼 이제 카테고리별로 구체적인 예시를 보며 이해해 보자. 카테고리는 나이, 장애, 젠더, 인종, 사회적 계층으로 나눴다. 마지막에 문화와 종교, 정치 상황, 체형에 대한 이야기도 추가했다. 마지막 카테고리를 제외하고 순서는 ABC 순으로 정렬했다. 글의 길이를 고려해 이 글에서는 나이와 장애에 대해 먼저 소개한다.




나이(Age)


우리 모두는 한때 어린이였고, 언젠가는 노인이 된다. 오늘날은 역사상 가장 많은 노인이 함께 살아가는 시대다. 그럼에도 언어는 여전히 소위 말하는 ‘젊은 사람’이라는 20~40대 나이 중심으로 짜여, 어린이와 노인을 사회의 일부로 인정하지 않는 듯 소외시킨다.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글쓰기 방법을 알아보자.


나이가 다른 사람에 대해 쓸 때는

1. 불필요한 나이 언급을 하지 않는다

글을 읽는 이를 20~40대라고 가정하고 ‘어린이’나 ‘노인’을 별도로 언급하는 것은, 그들을 독자가 될 수 없는 존재로 설정하며 타자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2. 고정관념과 편견을 담지 않는다

고령자는 사회의 별개 집단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고령자는 성인의 하위 그룹이다. 즉, 나이가 많은 성인이라는 것이다. senior같은 표현은 고령자를 사회의 일부가 아닌 ‘다른 집단’처럼 인식하게 만들 수 있으므로 주의해서 사용한다.

the elderly, elders처럼 개인을 사람이 아닌 나이라는 속성으로만 규정하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나 어린이를 스스로 돌볼 수 없는 ‘취약한 존재’로 묘사하지 않는다. 노화는 인간 경험의 정상적인 일부이며, 치매와 같은 질병이나 장애와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또한, 어린이를 무능한 존재 또는 지능이 부족하거나 비전문적인 존재로 상정하는 것도 피해야 한다.

세대 구분(베이비붐, 밀레니얼, MZ, Gen Z 등)도 개인을 설명할 때에는 피해야 할 표현이라고 한다. 세대 관련 연구 주제에서는 사용할 수 있겠지만, 이런 표현은 개개인의 다양성을 세대라는 틀로 뭉뚱그려 일반화할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3. 대신 사람 중심의 정확한 표현을 사용한다

'older adults', 'older people'처럼 사람을 중심에 두는 명확한 표현을 쓴다.

가능하다면 나이 범위나 평균값 등 구체적인 수치로 명확하게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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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제한하는 사용성보다는 모든 나이가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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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게시물을 보기 전에 락 페스티벌은 젊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생각해 보면 락 음악은 특정 연령대만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락 페스티벌은 다양한 락 음악을 라이브로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이나 나이가 많은 사람은 페스티벌이라는 공간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것일까? 물론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조금 더 높아진다. 어린이의 청력 손상이나 노인들의 안전 문제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그들의 출입을 제한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것인가?

나이가 다른 사람의 출입을 막지 않아도, 차음용 헤드폰과 안전한 관람존 같은 창의적인 해결책으로 모두가 함께 락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다. 나이가 다른 사람에 대한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들에 대해 글 쓰는 것은 어렵고 까다로운 일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을 고려하며, 글을 쓰다보면 더 창의적이고 포용적인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장애 (Disability)


비장애인 중에서는 장애를 자신과 먼 이야기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장애인의 87.9%는 후천적인 원인으로 장애를 갖게 된다(2020년, 대한민국 기준). 단순히 내가 장애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장애인을 포용하자는 뜻은 아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다르게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언어는 비장애인 중심으로 재편되어 있다. 장애인을 포용하는 글쓰기 방법을 살펴보자.



장애가 있는 사람을 표현할 때는

1. 불필요한 장애 유무나 장애 상태 언급은 하지 않는다

비장애인이라면 굳이 드러내지 않았을 신체적 특성을,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강조하지 않는다.


2. 고정관념과 편견을 담은 표현은 피한다

the disabled처럼 개인을 사람이 아닌 장애라는 속성으로만 규정하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장애를 비장애인의 시선으로 주관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장애를 극복해야 할 것으로 여기는 것, 영감을 주는 존재로 묘사하는 시혜적인 표현, '질병에 걸렸다', '고통받는다' 같은 동정적인 표현이 그 예시다.

addict, cripple, lunatic, psycho, schizo 등은 장애가 있는 사람을 비하하거나 낙인찍는 표현은 당연히 사용하지 않는다.


3. 정체성을 존중한 표현을 사용한다

person with disability처럼 사람 중심 표현(person-first)을 기본으로 한다.

다만, 집단에 따라 identity-first를 선호하기도 하므로, 해당 집단의 선호를 우선 확인한다.


person-first와 identity-first

person-first는 정체성 대신 사람에 초점을 맞춘 표현이다. 예를 들면 person with autism, 즉 '자폐가 있는 사람'처럼 누군가가 가지고 있는 특징이 자폐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identity-first는 반대로 정체성에 더 초점을 맞춘 표현이다. 예를 들면 autistic person, 즉 '자폐인'이라고 누군가를 정체성으로 정의하는 표현 방식이다.

일반적으로 Inclusive writing에서는 person-first를 권장한다. 그러나 어떤 집단은 자신의 장애를 정체성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identity-first를 선호하기도 한다. 따라서 집단의 선호 방식을 먼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비장애인을 표현할 때는

비장애인을 표현할 때에도 주의해야 한다.

비장애인을 묘사할 때 ‘정상/일반(normal)’, ‘건강한(healthy)’, ‘보통의(regular)’, ‘신체 건강한(able-bodied)’ 등의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이런 표현은 장애인은 비정상이고, 건강하지 않은 존재임을 암시한다.

대신 구체적이고 중립적인 표현을 사용한다. 예를 들면, 장애가 없는 사람(a person without a disability), 비장애인(a nondisabled person), 신경 발달이 전형적인 사람(a neurotypical person), 청인(a hearing person)을 사용하는 것이다.


사람에 대해 표현하지 않을 때

사물이나 기능, 경험을 설명할 때 장애와 관련된 은유, 완곡어법, 관용어구 등을 사용하지 않는다. 'That’s crazy', 'fell on deaf ears', 'turned a blind eye to'가 그 예가 될 수 있겠다. 이러한 표현은 의도 없이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특정 집단을 비하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일부 Inclusive writing 가이드에서는 특정 기능을 켜고 끌 때, 장애를 연상시키는 disable이라는 표현도 사용하지 말라고 하기도 한다. 대신 'turn off / deactivate' 등 중립적인 대안을 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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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에 대한 Inclusive writing은 읽기 쉬운 글쓰기(readability)와도 연결된다. 특정 감각에 대한 전제로 한 표현은 장애를 가진 독자를 배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you see a message’, ‘you hear an alert sound’처럼 시각이나 청각을 전제로 한 표현은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을 고려하지 않은 표현이다. 이 같은 표현은 ‘A message appears’나 ‘A light flashes’과 같은 결과 중심 표현으로 대체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Follow this fast, easy tutorial'처럼 모호한 용이성 강조는 지적장애인을 배제할 위험이 있다. 대신 'This tutorial teaches cropping and usually takes 5 minutes'처럼 구체적이고 사실 기반의 설명이 더 적절한 표현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나이, 장애를 포용하는 글쓰기는 방법을 알아보았다.

젠더, 인종, 사회적 계층 등 더 다양한 범주는 다음 편에서 계속 이야기해 보겠다.



Inclusive Writing 시리즈
① Inclusive Writing의 시작 - 무해한 글쓰기의 시대
② Inclusive Writing으로 다양성 포용하기 / 나이·장애 ◀︎ 지금 읽고 있는 글
③ Inclusive Writing으로 다양성 포용하기 / 젠더·인종·사회적 계층
④ Inclusvie Writing 한글 패치 / 나이
⑤ Inclusvie Writing 한글 패치 / 젠더 (게시 예정)
⑥ Inclusvie Writing 한글 패치 / 인종 (게시 예정)
⑦ Inclusvie Writing 한글 패치 / 장애 (게시 예정)
⑧ Inclusvie Writing 한글 패치 / 사회 계층·문화, 정치, 종교·외모, 체형 (게시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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