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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lusive Writing의 시작 ①

무해한 글쓰기의 시대

by Sunny Lee
vURJ1SP4HDZMmzMF0D0f2CiGC4w.png https://biz.chosun.com/en/en-international/2025/08/01/FRCBFHNDZND3PNYIWAYSHN2YNI/

지난여름, 미국의 한 의류 회사에서 내놓은 광고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광고에서는 금발의 파란 눈을 가진 백인 배우가 화면을 응시하고, 그가 멋진 청바지(Jean)를 가지고 있다는 카피가 옆에 보인다. 일부 SNS에서는 Jean이 영어로 유전자(Gene)와 같은 발음이라 사람들은 이 광고가 백인 유전자가 우월하다는 메시지를 준다는 비판이 확산되었다. 의류 회사는 논란을 무마시키기 위한 공식 입장을 내야 했다.


Gene 논란이 일은 후, 다음 달에 또 다른 의류 회사의 광고가 화제가 된다. 이 광고 영상에서는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글로벌 걸그룹, 캣츠아이가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는 댄서들과 흑인 여성 뮤지션의 음악에 맞춰 파워풀한 댄스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이 광고는 Gene 논란을 일으킨 영상과 비교되면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타 회사를 저격하는 영상은 아니었고, 이전부터 기획된 것이라고 한다.

인스타그램_갭_캣츠아이_단체사진.png https://www.youtube.com/watch?v=IwzF26o0AuU

Gene 논란을 일으켰던 의류 회사는 어쩌면 노이즈 마케팅의 일환으로 이런 논란을 의도했을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에 논란을 일으키는 노이즈 마케팅 전략은 브랜드 손상은 물론 불매 운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더 이상 카피의 전달력과 파급력만으로는 승부를 볼 수 없는 시대인 것이다.

혐오의 시대라고 했던가. 모든 것이 불편함이 되고 논란이 되는 이 시대에 많은 콘텐츠 제작자는 이미 체감하고 있을 것이다. 더 이상 비즈니스 가치만 잘 담아내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은 시대라는 것을. 라이터를 비롯한 모든 콘텐츠 크리에이터에겐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나락 감지 능력일 것이다.


안전하고 무해한 글이 필요한 이유


비즈니스에 가치를 더하는 글을 쓰기도 바쁜데, 왜 이런 것까지 신경 써야 할까?


첫째, 언어에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말과 내가 쓰는 글은 개인뿐 아니라 사회에도 영향을 미친다. 특히 그것이 회사 이름으로 남긴 글이라면, 어딘가에 늘 기록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만큼 더 큰 책임이 따른다. 내 글의 영향력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글을 쓴다는 건, 칼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모른 채 휘두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


둘째, 다양성이 가시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다양한 사람들이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다. 세상은 원래부터 다양했다. 다만 지금은 그 다양성이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시대다. ‘내 앞에서 모두 조용히 하라’고 외치던 권위주의의 시대를 지나, 이제 누구나 평등한 사회를 지향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그 평등의 수준이 고도화되면서, 오랫동안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했던 사람들이 자신의 다양한 정체성을 드러낸다. 다양성은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세상에 나타난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자신을 지우거나 고정관념에 가두려는 시도 앞에서 침묵하지 않는다.


요컨대, 안전하고 무해한 글이 필요한 이유는 내 글이 의도하지 않게 누군가의 존재를 지우거나, 고정관념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내 글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사회적으로는 차별을 재생산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제, 그런 차별에 더 이상 침묵하지 않는다.



논란의 지뢰를 피하면 해결될까


제목 없음.png https://member.webtoon.naver.com/policy/principle

2024년, 네이버웹툰은 혐오 표현을 담은 웹툰으로 인해 소비자들의 불매 운동이라는 논란에 직면했다. 이에 네이버웹툰은 유사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 게시물 및 커뮤니티 가이드라인을 개정했다. 새롭게 바뀐 가이드라인에는 부적절한 표현들이 항목별로 정리되어 있다. 웹툰 작가를 비롯한 다양한 콘텐츠 제작자들이 하지 말아야 할 발언들을 모아둔 것에 가깝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인종·국가·민족·지역·나이·장애·성별·성적 지향·종교·직업·질병 등을 이유로 특정 집단이나 그 구성원을 차별하거나, 그 차별을 정당화·조장·강화하거나, 폭력을 선전·선동하는 표현


그렇다면 이 표현만 잘 피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 다른 표현들은 사용해도 괜찮은 걸까?

나는 이 점에 대해 다소 회의적이다. 대부분의 콘텐츠 제작자는 ‘차별을 정당화하자’ 거나 ‘폭력을 선동하자’는 의도를 가지고 글을 쓰지 않는다.

물론, 무지성으로 댓글을 남기(또는 싸)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의도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글로 생계를 유지하는 라이터라면, 자신의 직업을 걸고 그런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언제나 ‘의도치 않게’ 발생한다. 내 안에 잠재된 편견이 무의식적으로 표현될 때, 논란은 시작된다. 그렇기에 '하지 말아야 할 표현'만 정리된 가이드라인은 실무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다. 지뢰는 지뢰인 줄 모르고 밟기 때문에 위험한 것이다.


지금 우리는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이자, 혐오의 감정이 쉽게 번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비단 한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다면, 다른 지역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여기저기 자료를 찾아보던 나에게 눈에 띄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Inclusive writing이다.



Inclusive writing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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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이들을 포용하는 언어다. 이 흐름은 반차별 운동의 역사가 긴 미국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다른 나라에서도 반차별 운동은 존재했지만, ‘inclusive language’라는 개념을 명확히 정리하고, 공식 가이드라인을 만들며, 업계 전반에 뿌리내리게 한 국가는 미국이다.


미국에서는 1980년대부터 “미래의 노동 인구는 다인종·다문화가 될 것”이라는 예측과 함께 DEI(Diversity 다양성, Equity 형평성, Inclusion 포용성) 전략을 본격화했다. 특히 2000년대 들어 기업 중심의 DEI 정책이 강화되면서, 글로벌 기업들은 2010년대부터 포용성을 담은 언어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Inclusive writing은 언어를 사회적 권력관계를 반영하고 강화하는 도구라고 여긴다. 역사적으로 언어는 권력의 중심에 있는 집단(백인, 남성, 이성애자, 비장애인)의 시선으로 형성되어 왔다. 이 과정에서 그 중심 바깥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타자화되었고,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다뤄지기도 했다.


무심코 이러한 언어를 사용해 누군가를 타자화하거나 비인간적으로 만들면, 그들은 거리감을 느끼고 결국 서비스를 떠난다. 이는 곧 브랜드 신뢰도와 비즈니스 가치에 영향을 준다. 더 큰 문제는 내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그 언어가 차별을 고착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


Inclusive writing은 단순히 ‘하지 말아야 할 표현’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Inclusive writing은 언어의 중심을 다양한 존재에게 돌려주어 모두가 존중받고 포용되도록 하는 노력이다. 이는 언어가 가진 힘을 인지하고, 과거의 편향을 바로잡아 더 공정하고 평등한 소통 환경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Inclusive writing의 뚜렷한 특징 중 하나는 개인을 묘사하는 방식이다. 집단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뭉뚱그려 말하기보다는, 그 안에도 다양한 개성을 지닌 개인이 있음을 인정하고, 개인의 특성 자체를 존중하는 언어를 쓴다. 예컨대 ‘The disabled’ 대신 ‘Person with disability’를 사용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누군가에 묘사할 때 ‘장애’라는 특성보다 ‘사람’이라는 존재를 먼저 강조하는 방식이다.


또 하나의 핵심은, 평등(Equality) 보다 공정(Equity)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Inclusive writing은 다름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다름으로 인해 발생하는 차별을 지적하고, 이를 철폐하는 데 무게를 둔다. Inclusive 하다는 것은 모두를 평등하게 포용한다는 것이 아니라, 차별받고 배제받는 존재를 포용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All lives matter”는 inclusive 한 표현이 아니다. 흑인과 마찬가지로 백인을 포함한 여러 다양한 인종의 생명을 평등하게 존중하자는 언어는 공정하지 못하다. “Black Lives Matter”는 백인보다 흑인이 겪는 차별의 정도가 더 심각하고, 생존까지 위협하는 현실을 직면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inclusive 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Inclusive writing은 정답이 아닌, 시도이다.

Inclusive writing이 모든 차별과 혐오의 나락에서 나를 구해줄 수 있는 마법 같은 도구인가 하면, 그것은 아니다.

일단 실무자 입장에서 완벽하게 적용하기가 어렵다. 실무자는 엄격한 자기 검열을 거쳐야 하며, 검열 후에도 빠르게 변하는 언어의 기준 때문에 그리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다양한 개인과 집단을 만족시키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또한, 무해하고 안전한 글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라이터가 전하고자 했던 의미와 맥락의 부정확해질 수 있다.


그렇지만 Inclusive writing의 진짜 의미는 완벽함보다는 시도와 고려에 있겠다. 지금 당장 정답을 말하지 못하더라도, 누군가를 배제하지 않으려는 노력, 그리고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는 태도에서 출발한다면, 그 길에서 우리는 다채롭고 새로운 세상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Inclusive Writing 시리즈
① Inclusive Writing의 시작 - 무해한 글쓰기의 시대 ◀︎ 지금 읽고 있는 글
② Inclusive Writing으로 다양성 포용하기 / 나이·장애
③ Inclusive Writing으로 다양성 포용하기 / 젠더·인종·사회적 계층
④ Inclusvie Writing 한글 패치 / 나이
⑤ Inclusvie Writing 한글 패치 / 젠더 (게시 예정)
⑥ Inclusvie Writing 한글 패치 / 인종 (게시 예정)
⑦ Inclusvie Writing 한글 패치 / 장애 (게시 예정)
⑧ Inclusvie Writing 한글 패치 / 사회 계층·문화, 정치, 종교·외모, 체형 (게시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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