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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lusvie Writing 한글 패치 <장애> ⑦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위한 글쓰기

by Sunny Lee

영어에서는 장애인 차별주의를 Ableist라고 하는데 Ability가 능력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Ableist는 '능력주의'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Ableist는 비장애인의 능력을 '정상'으로 간주하고,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을 차별하는 사고와 구조를 의미한다.

처음 이 단어를 접했을 때, 나는 이 단어가 장애인 차별주의라는 뜻임을 단번에 이해하지 못했다. 한국처럼 능력주의와 효율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사회에서는, 장애인을 애초에 비교 가능한 '능력의 주체'로조차 보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었을까? 때로 한국 사회는 '사회에 기여할 능력이 없다면 존재하지도 말라'는 메시지를 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게 던지는 듯하다. 장애를 포용하는 언어는 이러한 능력주의 메시지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능력과 상관없이 우리는 존재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장애와 능력의 여부를 넘어, 모든 사람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글쓰기를 시작해 보자.


장애가 있는 사람에 대해 쓸 때는

1. 불필요한 장애 유무나 장애 상태 언급은 하지 않는다

비장애인은 종종 장애인이 자신과 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을 신기하게 여기거나, 심지어 감동적인 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글을 쓸 때 대상이 '장애인임'을 굳이 강조하는 경우가 있다. 장애인의 일상이 특별하게 보였다면, 애초에 그들이 일상을 온전히 누리지 못할 존재라고 전제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것도 편견이다. 당사자에게는 굳이 부각할 필요 없는, 평범한 삶의 일부일 뿐이다.


2. 고정관념과 편견을 담지 않는다

비장애인 관점에서 장애인을 평가하거나, 고정관념과 편견이 담긴 언어로 묘사하지 않는다. 또한, 장애를 정상/비정상의 축에 올려 판단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장애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 '비장애인이 되길 원한다'처럼 단정하는 서술을 피해야 한다. 또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장애의 종류와 정도는 천차만별이고, 여러 가지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함부로 그 무게를 재단하지 않고, 장애에 대해 설명해야 할 땐 당사자가 선호하는 표현을 사용한다.


피해야 할 표현(가나다순)


'장애에도 불구하고', '비장애인 못지않게'와 같이 비장애인과 비교하는 표현

이러한 비교 표현은 성취나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을 비장애인에게 두고, 장애인을 그에 비해 "얼마나 근접했는가"로만 접근한다. 이는 장애를 누군가의 정체성이 아닌 극복해야 할 결핍으로 보는 고정관념에 해당하기 때문에 사용해선 안 된다.


장애우

'장애우'라는 표현은 긍정적인 의미처럼 들리지만, 장애인에 대한 시혜적인 시각이 담겨있다. 장애인과 '친구처럼 지내야 한다', '도와줘야 한다'는 태도는 당사자에게 불필요한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고, 또는 동정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중립적인 표현인 '장애인' 사용을 권장한다.


정상인, 일반인

비장애인을 지칭할 때에도 주의해야 한다. 비장애인을 지칭할 때 '정상인', '일반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 장애를 가진 상태를 '비정상' 혹은 '비일반적'임을 암시할 수 있다.


정신 지체

'정신 지체'는 비장애인과 비교해 지능이 뒤처졌다는 의미를 전제한다. '지적장애'가 더 중립적이고 정확한 표현이다.


3. 대신 사람 중심의 정확한 표현을 사용한다

장애의 스펙트럼은 넓고 개인마다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타인의 장애를 정확하 묘사하는 표현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따라서 가능한 한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용어를 쓰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정신 지체' 대신 '지적장애', '정상인' 대신 '비장애인'처럼 가치판단이 담기지 않은 표현을 선택해야 한다. 그 기준이 애매하다면 당사자가 직접 선호하는 용어를 확인하고 따르는 것이 가장 정확하고 존중하는 글쓰기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장애가 사람을 규정하는 꼬리표가 아니라, 한 개인의 특성과 삶의 맥락을 설명하는 정보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사람에 대해 표현하지 않을 때는

장애나 질병은 특정인의 삶과 깊이 연결된 특성이기 때문에, 사물이나 기능, 경험이나 상태를 설명할 때 은유나 관용어구로 차용해서는 안 된다. 이는 특정 집단의 정체성을 부정적으로 차용해, 차별적 고정관념을 강화하고 사회적 낙인을 재생산하는 결과를 낳는다.


피해야 할 표현(가나다순)


결정장애, 선택장애

'결정장애'는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나 우유부단한 성격을 묘사하는 표현이다. 이 단어는 실제 장애가 아닌 상태를 '장애'로 표현해 장애를 희화하고 가볍게 소비한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 역시 전유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 표현이므로, 사용을 지양한다.


미쳤다, 미친 00

어떤 상태가 극단적으로 나쁘거나 좋을 때 우리는 '미쳤다', '돌았다' 등의 언어를 사용한다. 이 단어 역시 정신적 문제를 희화화하고, 가볍게 소비하는 전유의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주의해서 사용해야 한다.


반팔 소매, 벙어리 장갑

'반팔 소매'와 '벙어리 장갑'은 일상에서 가볍게 사용되는 단어이지만,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한 표현이기 때문에 사용이 권장되지 않는다. '반팔'은 팔 길이의 정상성을 비장애인 기준으로 가정하고 있으며, '벙어리'는 언어 장애인을 비하하는 단어이다.


벙어리가 되다

'벙어리가 되다'는 충격이나 당황스러움으로 인해 할 말을 잃은 상태를 은유적으로 나타낸다. 그러나 이는 언어장애를 가진 사람을 비유로 끌어와 만든 표현이기 때문에, 당사자의 특성을 희화하거나 결핍으로 환원하는 뉘앙스를 담고 있다.


속담

한국어 속담에는 장애를 은유적으로 사용하거나, 특정 장애 특성을 무지·결핍·어리석음과 연결하거나 조롱의 의미로 소비하는 표현이 많기 때문에 주의해서 사용해야 한다.

예) 병신 육갑 떤다 / 눈 뜬 장님, 장님 코끼리 만지기 / 벙어리 냉가슴 앓다 / 꿀 먹은 벙어리 / 귀머거리 삼 년 벙어리 삼 년 등


암걸리다

상황이 매우 답답하거나 화가 날 때 '암 걸릴 것 같다'는 식의 표현이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실제 암 환자들이 겪는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무시하고, 그 경험을 희화화하거나 가볍게 소비하는 방식이다. 일상의 과장된 감정을 표현하는 데 질병을 끌어오는 것은 당사자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


절름발이

전체를 다 갖추지 못하거나 핵심이 빠진 상태를 묘사할 때 '절름발이'를 수식어처럼 쓰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절름발이 국회'와 같은 표현이 그렇다. 하지만 이는 신체장애를 결핍이나 불완전함의 은유로 사용한 것으로, 장애인의 존재를 부정적 상황에 빗대어 희화화하는 효과를 낳는다. 장애를 결핍의 상징으로 차용하는 것은 당사자에 대한 낙인을 강화하므로 피해야 한다.


극복의 서사를 넘어서

언어를 사용할 때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장애든 질환이든 그것을 부정적 은유나 비유로 소비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사회의 암덩어리 같은 존재다', '결정장애', 'ADHD 있어?'같은 표현들은 모두 누군가의 실제 삶과 고통을 가볍게 소비한다. 범주를 구분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범주에 속한 사람들을 존중하는 언어를 쓰는 것이다.

장애인은 언제나 자신의 장애에 맞서 싸워 승리해야 하는가? 장애는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 아니다. 장애인은 장애를 이겨내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신체의 능력과 기능에만 의미를 두지 않고, 존재에 의미를 둘 때, 우리는 장애를 승패의 문제로 환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인 김원영 변호사는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이기도 하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제가 이십대 때 가장 듣고 싶었던 칭찬은 '네가 세상을 바꾸는 인간 승리의 주인공'이다 이런 말 아니고 그냥 '나는 네 왼쪽 어깨가 좋다' 이런 말을 듣고 싶었어요. 구체적인 물질로서의 신체로요."


Q. 장애와 질환은 구분되어서 다뤄져야 하는가?

장애는 개인의 지속적인 신체적·정신적 특성이나 상태를 의미한다. 장애인 정체성의 일부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반면 질환은 의학적으로 진단 가능하고 치료나 관리의 대상이 되는 건강 상태를 가리킨다. 예를 들어, 시각장애는 장애이고, 독감은 질환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보다 복잡하다. 당뇨병, 크론병 같은 만성질환을 가진 사람은 장애 등록을 할 수도 있고, 일상에서 장애인과 유사한 배제를 경험하기도 한다.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 역시 장애와 질환의 경계에 있다.

그렇다면 글을 쓸 때 어떻게 구분되어야 야 할까? 가장 중요한 원칙은 당사자가 자신을 어떻게 정의하고 표현하는지를 따르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을 장애인으로 정체화하고, 어떤 사람은 환자로 이해한다. 확인이 어렵다면 구체적이고 중립적인 표현을 사용한다. ‘당뇨병을 관리하는 사람’,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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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lusive Writing 시리즈
① Inclusive Writing의 시작 - 무해한 글쓰기의 시대
② Inclusive Writing으로 다양성 포용하기 / 나이·장애
③ Inclusive Writing으로 다양성 포용하기 / 젠더·인종·사회 계층
④ Inclusvie Writing 한글 패치 / 나이
⑤ Inclusvie Writing 한글 패치 / 젠더
⑥ Inclusvie Writing 한글 패치 / 인종
⑦ Inclusvie Writing 한글 패치 / 장애 ◀︎ 지금 읽고 있는 글
⑧ Inclusvie Writing 한글 패치 / 사회 계층·문화, 정치, 종교·외모, 체형
⑨ 가이드를 넘어서: 포용적 글쓰기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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