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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lusvie Writing 한글 패치 <인종> ⑥

다른 인종을 위한 글쓰기

by Sunny Lee

날이 갈수록 인기를 더해 가는 K-pop 열풍 덕분에 한국은 하나의 국가 브랜드로서 글로벌 위상을 높여가고 있다. 그러나 정작 한국 사회가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을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한국은 오랫동안 단일민족 국가라는 정체성을 강조해 왔고, 지금도 다른 국가와 비교하면 민족적·인종적 다양성이 높지 않다. 그만큼 관련 담론의 역사가 짧고, 사회적 인식 역시 충분히 자리 잡지 못했다. 오늘날 법적·사회적 현실에서 한국은 이미 다민족·다문화 사회에 가까워졌지만, 다문화 가정과 이민자들은 여전히 '외국인'이라는 딱지 속에서 타자화되곤 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K-pop이 어떻게 지금의 세계적 위상을 얻게 되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물론 뛰어난 아티스트 개인의 역량도 컸지만, 해외 국가의 DEI(diversity, equity, inclusion)와 같은 가치가 작동하며 다양한 문화를 수용하려는 사회적 분위기가 큰 힘이 되었다. K-pop의 성공은 민족주의적 자부심으로 발현되는 것을 너머, 문화적 경계를 넘어 다양성을 받아들이기 위한 시작점이 되어야 한다. 모든 민족과 인종을 포용하는 글을 써보자.


인종이 다른 사람에 대해 쓸 때는

다른 국적의 사람을 타자화하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또한, 특정 인종이나 국가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담은 언어를 배제한다. '흑인은 운동 신경이 좋다' 같은 긍정적 고정관념도 개인을 집단의 틀에 가두므로 사용하지 않는다. 아랍, 아프리카, 동남아, 서양 같은 추상적이고 광역 지역 중심의 표현보다는 당사자가 선호하는 표현으로 국적·지역·민족 명칭을 구체적으로 표기한다.


1. 불필요한 언급을 하지 않는다

한국인에 대해 이야기할 때 굳이 '동양인'이라고 덧붙이지 않듯, 인종이나 출신 국적은 반드시 필요한 맥락이 아니라면 언급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굳이 ‘외국인’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도 어떤 상황에서는 불필요할 수 있다.한국은 인종적 다양성이 낮기 때문에 외국인이 외형적으로 쉽게 드러난다. 또한, 한국어는 어떤 언어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외국인들이 자연스럽게 구사하기 쉽지 않다. 이러한 환경 때문인지 한국 사회에서는 비한국인을 익숙하지 않은 외형적 특징과 언어 실력을 근거로 국적을 구분하고 타자화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 또는 귀화하는 외국인은 매년 늘어가고 있는 추세다. 변화하는 사회 구성에 맞춰 '우리 나라'와 '너희 나라', ‘한국인’과 ‘외국인’ 구도에서 벗어나 개인의 고유한 개성과 정체성에 초점을 옮겨야 한다.


2. 고정관념과 편견을 담지 않는다


피해야 할 표현(가나다순)


동남아인, 서양인, 아프리카인, 중동인 등

'동남아인', '서양인', '아프리카인', '중동인' 같은 표현은 광역 지역을 하나로 묶어 그 안의 수많은 민족·국가·언어를 지운다. 이 범주는 '세련됐다', '위험하다', '개발 중이다', '미개하다' 같은 고정관념을 개인에게 투사해 개인의 정체성을 가린다. 출신 표기가 반드시 필요하다면 당사자가 선호하는 명칭을 확인해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표기한다. 맥락상 불필요하다면 출신 표기는 생략하고, 개인의 정체성과 역할에 초점을 맞춘다.


미쿡인, 외쿡인

'미쿡인', '외쿡인'은 한국어에 서툰 외국인의 말투를 희화하는 표현이다. 농담처럼 가볍게 소비되는 표현이지만 언어가 서툰 것을 개인의 정체성으로 고정해 역할과 능력보다 결핍에 초점을 맞춘다는 문제가 있다. 사용하지 않는 것을 권장한다.


에스키모

에스키모는 북미와 그린란드 북극권 원주민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이 표현은 원주민들이 스스로를 지칭하는 표현이 아니고 식민적·비하 인식이 누적된 명칭이기 때문에 사용을 지양해야 한다. 캐나다, 그린란드, 알래스카에서는 '이누이트' 등 당사자가 선호하는 표현을 사용한다.


외노자

'외노자'는 '외국인 노동자'의 축약형으로 중립적인 단어처럼 보이지만, 비하의 맥락이 담긴 표현으로 여겨질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외국인 노동자'로 풀어 쓰거나, '외국인 근로자', '이주 노동자' 등 공식적이고 중립적인 표현을 쓴다.


유색인

'유색인'은 '비백인'처럼 백인을 기준으로 나머지 인종을 한데 묶는 차별적 표현이다. 이런 범주는 다양한 집단의 차이를 지워 개인의 경험과 맥락을 설명하지 못한다. '흑인 커뮤니티', '아시아계', '라틴계'처럼 구체적인 집단명을 표기한다.


인디언

'인디언'은 북미·오세아니아의 원주민을 뭉뚱그려 부르는 외칭으로, '에스키모'처럼 당사자가 선호하지 않는 표현이다. 북미에서는 '아메리카 원주민'으로 표기하거나 '체로키', '나바호'처럼 구체적인 부족명을 사용한다. 호주에서는 Aboriginal and Torres Strait Islander peoples로, 뉴질랜드에서는 Māori로 표기한다.


흑누나/흑언니/흑형

흑인 남성과 여성을 가리키는 이 표현은 겉보기엔 친근하거나 긍정적으로 보이지만 인종적 고정관념을 강화한다. 고정관념이 담긴 표현은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거나 관계없이 개인을 집단 특성으로 환원하고 기대 역할을 덧씌워 대상화를 낳는다. 인종 언급이 필요 없으면 생략하고, 필요할 때는 '흑인 여성', '흑인 남성'처럼 중립적으로 표기한다.


3. 대신 사람 중심의 정확한 표현을 사용한다


누군가 우리를 '동양인'이나 '아시안'으로 지칭했다고 상상해보자. 우리는 스스로를 '한국인'으로 불리길 원하고, 중국인·일본인 등과의 차이를 설명하고 싶어질 것이다. 한국에서는 외형이 다르거나 한국어 사용이 서툰 사람을 '외국인'으로 뭉뚱그려 부르고, 그들의 정체성을 더 구체적으로 지칭하지 않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타인의 인종·국적을 언급해야 할 때에는 당사자가 선호하는 자칭과 표기를 우선한다. 확인이 어려우면 추정을 배제하고, 국적·민족·지역 등 검증 가능한 정보를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적되 불필요한 표기는 생략한다.


사람에 대해 표현하지 않을 때는

백인과 흑인의 갈등은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흑과 백에 대한 은유적 표현은 결국 인종에 대한 무의식적 편견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주의해야 한다. 물론 한국에서는 이런 표현들이 인종 차별적 의도를 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inclusive writing에서 중요한 것은 의도가 아니라 그 언어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다. ‘근묵자흑’과 같은 표현을 흑인에게 직접 설명한다고 상상해보면, 우리가 왜 언어의 영향력을 돌아봐야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피해야 할 표현(가나다순)


흑/백을 부정적/긍정적 은유로 사용하는 표현

'블랙리스트·화이트리스트', '블랙컨슈머', '다크패턴'과 같은 영어식 표현에는 색에 따른 은유가 내포되어 있으므로 주의한다. 또한, 한국에서 오랜 세월 사용된 표현인 '백의의 천사', '근묵자흑', '흑심', '흑역사'같은 표현은 '흑=부정, 백=긍정'의 대립 구조를 강화한다


화이트닝 → 브라이트닝

'화이트닝'은 미백 효과를 의미하는데, 하얗게 만든다는 의미에서 정확하고 중립적인 표현으로 생각될 수 있지만, 피부를 밝게 해준다는 설명을 할 때에는 사용을 지양해야 한다. 미의 기준이 '백인'에 있다는 고정관념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에 대신 '브라이트닝'이나 '톤업' 등의 표현을 사용한다. 단, 치아를 밝게 해준다는 설명을 할 때에는 '미백'이나 '화이트닝'은 사용해도 무방하다. 치아 색은 법랑질·상아질 특성에 따라 인종과 상관없이 항상 흰색이 기본값이기 때문이다.


전유보다는 존중을

K-pop 아티스트가 드레드락을 하는 것을 보고, 일부 흑인 커뮤니티에서 문화적 전유라며 비판한 적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이런 반응이 과민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문제의 핵심은 '빌려 쓰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 문화의 맥락과 역사를 지우고 소비하는 것에 있다. 드레드락은 흑인 커뮤니티에게 차별과 저항의 역사가 담긴 정체성의 표현이다. 그들은 이 머리를 했다는 이유로 취업에서 거부당하고 징계를 받아왔다. 그런데 비흑인이 '멋있어 보여서' 같은 스타일을 하면 '힙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맥락은 지워지고, 특권만 남는 것. 이것이 전유의 문제다.

다양한 문화를 알리고 공유하는 것은 아름답지만, 그 문화가 지닌 역사와 의미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선행되어야 한다. 언어 역시 마찬가지다. 특정 인종의 정체성을 가볍게 소비하거나, 희화화하는 표현 역시 문화적 전유다. K-pop이 세계에서 사랑받는 이유가 다양성의 포용이라면, 이제 우리 사회도 그 포용을 언어에서 실천할 때다. 전유가 아닌 존중으로, 범주화가 아닌 개별 인식으로, 타자화가 아닌 공존으로 실천할 수 있다.


Q. '다문화 가정'은 포용적인 표현인가?

다문화 가정'은 다른 국적, 인종,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진 가족이다. 이 표현은 정부에서도 공식적으로 사용되는 언어이긴 하지만, 포용적인 표현이라고 볼 수 있을지 개인적으로 의문이다. 집단이나 사회에 대해 설명할 때 여러 문화가 그 안에 존재한다거나,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개인이나 한 가정에 "여러 문화가 있다"는 라벨을 붙이면, 동일 문화권 내 가족을 기본값으로 놓고 그렇지 않은 가족을 예외로 치는 효과가 생기지 않을까? 한국·일본·중국처럼 단일민족 담론이 강했던 사회에서는 이러한 표현이 일상적으로 사용되지만, 유럽·동남아·북미·남미처럼 구성의 다양성이 일상화된 지역에서는 immigrant families, multilingual families, binational families처럼 넓은 라벨보다 목적에 맞춰 세분화한 용어를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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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lusive Writing 시리즈
① Inclusive Writing의 시작 - 무해한 글쓰기의 시대
② Inclusive Writing으로 다양성 포용하기 / 나이·장애
③ Inclusive Writing으로 다양성 포용하기 / 젠더·인종·사회 계층
④ Inclusvie Writing 한글 패치 / 나이
⑤ Inclusvie Writing 한글 패치 / 젠더
⑥ Inclusvie Writing 한글 패치 / 인종 ◀︎ 지금 읽고 있는 글
⑦ Inclusvie Writing 한글 패치 / 장애
⑧ Inclusvie Writing 한글 패치 / 사회 계층·문화, 정치, 종교·외모, 체형
⑨ 가이드를 넘어서: 포용적 글쓰기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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