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성별과 성적지향을 위한 글쓰기
한국에서 젠더는 여전히 첨예한 이슈다. 성별을 둘러싼 갈등이 지속되며 단어 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분위기가 자리 잡았다. 내 생각에 그 갈등이 쉽게 좁혀지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많은 사람들이 성차별을 단순히 '여성을 싫어하는 감정'으로만 이해하고, 자신은 그런 감정이 없으니 성차별과 무관하다고 여기는 데 있다. 하지만 성차별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를 신성화하거나 상품처럼 다루거나 단편적인 이미지로 고정하는 방식을 포함해 여러 층위에서 드러난다. 한국어에서도 성차별은 남존여비 사상을 여전히 품은 채로 언어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난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여성이라는 존재는 다른 문화권에서처럼 어머니·성녀라는 이름으로 신격화되기도 하고, '국민 첫사랑'처럼 청순하고 무해한 첫사랑의 이미지 속에 갇히거나, '팜므파탈'로서 누군가를 파멸로 이끄는 존재로 묘사되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아가씨 상시대기'와 같은 단어 때문에 여성이 상품화되는 경향이 다른 나라보다 심하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은 서로 달라 보이지만, 결국 여성혐오의 언어라는 점에서는 같은 맥락을 지닌다. 물론 성차별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성차별은 남성에게도 영향을 미치며, 논바이너리·젠더플루이드·트랜스젠더를 비롯한 다양한 성별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가진 사람들 모두의 문제이기도 하다. 모든 성별과 성적 지향을 포용하는 글쓰기를 시작해 보자.
남성을 기본값으로 전제하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시대착오적 성관념을 전제하거나 특정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강화하는 단어와 관용어를 피한다. 성소수자 관련 용어를 차용해 가볍게 소비하거나 희화화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지칭할 때, 그 사람이 남성이 아닌 여성, 시스젠더가 아닌 트랜스젠더나 젠더플루이드, 이성애자가 아닌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굳이 덧붙여야 한다고 느껴진다면, 남성·시스젠더·이성애자를 '기본값'으로 전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누군가의 젠더에 대해 언급해야 한다면, 그 정보가 꼭 필요한 맥락인지 다시 점검한다.
피해야 할 표현(가나다순)
• 각선미, 관능미, 글래머, 꿀벅지, 뒤태, 자태, 쭉쭉빵빵 등
한국에서는 일상에서 여성의 신체를 평가하는 단어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이러한 표현은 듣는 사람에 대한 칭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심코 사용된다. 그러나 호의가 담긴 표현일지라도, 여성의 존재를 존중받는 주체가 아닌 평가받는 대상으로 만든다는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사용을 지양해야 한다. Inclusive writing에서 중요한 것은 말하는 사람의 의도가 아니라 듣는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다.
• 미혼모, 미망인
'미혼모'와 '미망인'은 모두 개인의 존재를 결혼 제도나 배우자 유무에 종속시킨다. 특히 그것을 여성을 호칭한다는 점에서 성차별적이고 비대칭적인 언어이다. '미혼모'는 결혼하지 않은 상태를 불필요하게 강조해 낙인을 만들고, '미망인'은 여성의 존재 의미를 남편과의 관계로만 정의한다.
• 바깥사람/안사람, 바깥양반, 집사람
이 표현들은 남성을 사회 활동을 하는 '바깥사람'으로, 여성을 집안에 머무는 '안사람'이나 '집사람'으로 한정해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한다. 여성의 사회적 역할을 축소하고, 남성에게는 생계 책임을 전가해 양쪽 모두에게 부담을 지우는 차별적인 언어이다. 성별과 무관하게 동등한 관계를 드러내는 '배우자'와 같은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상남자/상여자, 에겐/테토
여자다움이나 남자다움을 강조하는 표현은 성별에 따른 고정관념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포용적이지 않다. XY나 XX 염색체에 따라 본능이나 성향이 달라지고, 그에 따라 해야 할 행동과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 규정된다는 믿음은 과학적 근거가 없는 편견일 뿐이다. 예를 들어 책임감 있고, 주도적이고, 도전 정신이 있고, 진취적이고, 뒤끝 없고, 승부욕과 경쟁심이 강하다는 것을 남자답다고 한다면, 그런 성향을 가진 여성 또는 다른 성별의 존재를 무시할 뿐만 아니라, 그런 성향을 갖지 못한 남성에게도 심리적 부담을 주게 된다. 결국 성별에 따라 이런 성향을 가져야 한다는 아이디어는 개인이 자신답게 선택하고 살아갈 자유를 제한한다.
• 새댁/새색시
'새댁'이나 '새색시'는 젊은 여성을 결혼 내 관계 중심으로 호명해 개인의 정체성을 축소한다. 남성에게는 같은 맥락에 ’ 신랑’을 쓰더라도 대등하지 않고, 혼인 여부를 드러내는 것 자체가 불필요한 정보다. 대신 이름과 직함, '고객님', '주민' 같은 관계 중립 호칭을 사용하거나, '젊은이', '청년'과 같은 성중립적인 표현을 사용한다.
• 센스 있는 엄마들의 선택, 현모양처, 현명한 엄마 등 엄마의 역할이나 모성애를 강조하는 표현
아빠나 다른 보호자의 역할은 쏙 빼놓은 채, 엄마의 능력을 강조하는 표현은 양육의 책임을 엄마에게만 전가하고 다른 보호자를 배제한다. 또한 '엄마라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작동하며,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한다. 따라서 특정 성별이 아닌 '부모'나 '보호자'처럼 포괄적인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
• 소녀, 소년, 총각, 처녀(노처녀), 처자
개인을 성별, 나이, 결혼 여부로 규정하는 호칭은 사회가 부여하는 고정관념을 강화한다. 특히 '처녀(노처녀)'나 '총각'은 결혼 경험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해 낙인 효과를 낳는다. 대신 '청소년, 미혼 여성/남성'처럼 중립적이고 구체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시집가다, 장가가다
'시집가다, 장가가다’는 여성을 '남의 집으로 들어가는 사람', 남성을 '집을 지키는 사람'으로 규정한다. 이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질서를 강화하고 여성을 종속적 위치에 두는 시대착오적 사고를 반영한다. 동시에 남성과 여성의 이분법만을 전제로 하여 다양한 성별 정체성을 배제하는 시스젠더 중심 표현이기도 하다. 따라서 성별 구분 없이 동등하게 쓸 수 있는 '결혼하다'와 같은 표현이 바람직하다.
• 여군, 여교수, 여기자, 여의사, 여직원, 여학생, 남간호사
특정 직업군 앞에 '여성'을 별도로 표기하면, 남성이 기본값이고 여성은 예외라는 인식을 준다. 이는 성별에 따른 불필요한 구분을 만들고, 여성을 부차적인 존재로 취급하는 효과를 낳는다. 따라서 성별을 덧붙이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남성도 마찬가지다. 여성이 다수인 직군에서 굳이 '남간호사', '남교사'라고 부르는 것은 남성을 예외로 만들며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한다.
• 접대부, 파출부
'부(婦, 여인)'라는 한자를 사용해 여성을 특정 직업군과 연결시키는 용어는 그 일을 여성의 몫으로 한정하거나 성별에 따른 고정된 이미지를 강화한다. 따라서 성별을 드러내지 않는 '접객원', '가사도우미' 같은 중립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학부형
'학부형'은 문자 그대로 '아버지와 형'을 뜻해 학생 보호자를 남성으로 한정한다. 이는 다양한 보호자와 가족 형태를 배제하고 가부장적 질서를 전제로 한 표현이다. 따라서 성별과 가족 형태에 구애받지 않는 '보호자' 같은 포용적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남/○○녀
'○○남/○○녀'(예: 4호 선녀, 강남녀, 벤츠남 등) 같은 표현은 언론과 온라인에서 흔히 쓰이는데 포용적 관점에서 여러 문제가 있다. 이러한 표현은 개인을 성별로 환원해 집단 전체에 낙인을 찍고,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한다. 또한 특정 사건을 조롱하거나 희화화하며, 성별을 남과 여의 이분법으로만 규정해 다양한 정체성을 배제한다. 사건이나 특징을 설명할 때는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
• ○○이모 (주방 이모, 청소 이모 등)
특정 직업에 종사하는 여성을 가족 호칭인 '이모'로 부르는 것은 친근감을 주긴 하지만, 노동을 여성의 돌봄/가사 역할과 연결해 직업 전문성을 지운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특히 동일한 일을 하는 남성의 경우에는 이모부나 삼촌으로 호칭하지 않는 점에서 이 단어는 성차별을 담은 언어로 볼 수 있다. 조리사, 조리 보조, 요리사, 환경미화원, 시설관리원 등 중립적인 표현 사용을 권장한다.
한국어는 성별 대명사가 없어 호칭이나 문장에서 성정체성을 직접 드러내지 않고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그러나 여성의 사회적 참여가 여전히 제한적이기에, 여성을 부차적인 존재로 전제하거나 성별을 불필요하게 강조하는 언어가 다양한 층위에서 여전히 쓰이고 있다. 개인의 성정체성을 존재의 의미나 특성으로 환원하는 언어 사용은 지양해야 한다.
또한 한국에서는 다양한 성정체성이 북미·남미·유럽 국가에 비해 비가시화되어 있다. 언어를 통해 그들의 존재를 지우지 않기 위해 언어 사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예를 들어 성별 정보를 꼭 수집할 필요가 없다면 아예 요구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만약 성별을 입력받아야 한다면, '남성/여성' 이분법에 그치지 말고 다양한 정체성을 고려한 제3의 선택지를 마련해야 한다.
성차별은 가장 오래 이어져 온 차별로 한국어에도 깊이 스며 있다. 사람을 직접 묘사할 때뿐 아니라 일상적인 관용어와 속담에도 흔적이 남아 있으며, 특히 여성에게 가정 내 순종적 역할을 요구하는 편견이 언어 속에 뿌리내려 있다.
구시대의 관습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내 안의 무의식적 혐오를 성찰하고, 말과 글에서 드러나는 습관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생각보다 그것은 우리의 깊은 무의식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피해야 할 표현(가나다순)
• 속담
한국어 속담과 관용구에는 성별 고정관념을 전제로 하거나, 여성을 순종적·종속적 위치에 두고 남성을 우월하게 묘사하는 표현이 많다. 이런 표현은 무심코 사용될 때 성차별적 사고를 강화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예) 남자가 버는 것은 황소걸음이고, 여자가 버는 것은 거북걸음이다 /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 /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 /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 여자와 북어는 삼일에 한 번 패야 맛이 좋아진다
• 유모차
'유모차'는 본래 '아이를 돌보는 여성(乳母)'을 뜻하는 말에서 유래해, 돌봄을 여성의 역할로 한정하는 뉘앙스를 담고 있다. ‘유모차’ 대신 성별 편향 없이 중립적인 표현인 ‘유아차’ 사용을 권장한다.
• 처녀작
'처녀작'은 창작자가 처음으로 창작한 작품을 뜻한다. '처녀'라는 말이 여성의 성적·결혼 상태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성별 고정관념과 불필요한 연상을 불러온다. 대신 성별과 무관하게 중립적인 '첫 작품'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폐경
'폐경'은 '닫힐 폐(閉)'의 의미로 끝남·상실을 전제해 여성의 신체를 재생산 수단으로 보는 시선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포용적인 표현이 아니다. 대체 표현인 '완경'은 월경 주기의 완성을 뜻해 생애 전환을 중립적·긍정적으로 설명하고 당사자 경험을 존중한다.
• ○밍아웃
'커밍아웃'은 원래 성소수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공개하는 행위를 뜻한다. 그런데 이를 가벼운 일에 빗대어 쓰면 성소수자의 경험을 희화화하거나 가볍게 소비하는 표현이 된다. 이런 것을 '전유'(Appropriation)라고 표현하는데, 특정 집단의 정체성과 밀접하게 연결된 표현을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맥락을 무시하거나 변형해 사용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정체성 공개와 무관한 맥락에서는 피하고, 상황에 맞는 다른 표현을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 ○성애자
'○○성애자'는 원래 특정 성적 지향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일상에서는 '면성애자', '빵성애자'처럼 어떤 취향을 과장되게 표현하는 방식으로 자주 쓰인다. 이 역시 전유 표현으로, 누군가의 정체성이 되기도 하는 성적 지향을 가볍게 희화화하고 농담거리로 소비하는 결과를 낳는다. 따라서 단순히 좋아함을 표현할 때는 '○○를 좋아하는 사람'처럼 중립적인 표현이 바람직하다.
성별 갈등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성별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 됐다. '내 생각을 자유롭게 쓰지도 못하고, 말 한마디도 조심해야 하나' 하는 피로감을 느끼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여성이 실제로 사회적 약자로서 차별을 받고 있는지 의문을 품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남성뿐 아니라 여성 중에서도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약자는 어린이나 멸종위기동물처럼 보호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남성이 중심인 사회에서 기득권과 동등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에 가깝다.
이러한 주장이 근거 없는 주관적인 의견에 불과하다고 생각된다면, 이 기회에 객관적인 자료를 직접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한국이 OECD 통계에서 오랜 기간 남녀 임금격차 1위를 기록해 왔다는 사실로 시작해 보라.
성차별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한 성별의 피해가 다른 성별의 이득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손실로 이어진다. 한 성별이 배제되는 사회는 절반의 가능성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며, 다른 성별 또한 성역할 고정관념 속에 갇혀 다른 삶을 선택할 자유를 잃게 된다.
결국 성차별은 우리 모두를 가두는 구조다. 그렇기에 모든 성별과 모든 성적 지향을 포용하는 Inclusive writing은 지금 이 시대에 반드시 필요하다.
여성을 중심으로 한 가이드를 읽다 보면 남성에 대한 차별도 주의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물론 문제가 된다. '남성'이라는 이유로 개인의 개성과 정체성을 지워버리는 언어는 포용적이지 않다.
그러나 Inclusive writing은 단순히 혐오 표현을 피하는 차원이 아니라, 언어의 중심을 기득권이 아닌 다양한 존재에게 돌려주는 시도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Inclusive writing의 핵심은 단순한 평등(Equality)이 아니라 공정(Equity)이다. '여성과 트랜스젠더, 젠더플루이드, 논바이너리를 배려했으니 남성도 그만큼 배려해야 한다'가 아니다. 상대적으로 더 심각한 차별과 소외를 겪는 존재에게 언어로 동등한 자리를 돌려주는 것이 Inclusive writing의 목표다.
함께 만드는 Inclusvie writing 용어집
평소에 불편하게 느껴지는 단어나 표현이 있었나요? 댓글로 제보해 주세요. 용어집을 함께 만들어 보아요!
Inclusive Writing 시리즈
① Inclusive Writing의 시작 - 무해한 글쓰기의 시대
② Inclusive Writing으로 다양성 포용하기 / 나이·장애
③ Inclusive Writing으로 다양성 포용하기 / 젠더·인종·사회 계층
④ Inclusvie Writing 한글 패치 / 나이
⑤ Inclusvie Writing 한글 패치 / 젠더 ◀︎ 지금 읽고 있는 글
⑥ Inclusvie Writing 한글 패치 / 인종
⑦ Inclusvie Writing 한글 패치 / 장애
⑧ Inclusvie Writing 한글 패치 / 사회 계층·문화, 정치, 종교·외모, 체형
⑨ 가이드를 넘어서: 포용적 글쓰기의 본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