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지즘 없는 글쓰기
2024년 9월, 국회 여성가족위원회는 법령 용어를 '경력단절 여성'에서 '경력보유 여성'으로 바꾸는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찬반 의견이 엇갈렸다. 기존 용어가 여성에게 낙인을 찍는다는 지적에 찬성하는 목소리가 있었고, 용어 변경만으로는 현실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반론도 있었다. 두 입장 모두 일리가 있다. 진짜 문제는 '경력 보유 여부'가 아니다. 돌봄 등 구조적 이유로 경력이 끊기는 현실이 문제다. '경력보유'라는 용어는 그 현실을 덮는 완곡어처럼 들린다.
그럼에도 말의 변화가 인식을 여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용어의 변화가 인식을 열고,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는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경력단절 여성'만이 아니다. 사회적 낙인이나 차별 뉘앙스가 스며든 단어는 상상 이상으로 많다.
공공기관이나 기업이 무심코 이런 표현을 쓰면 여론의 뭇매를 맞는다. 1인 기업이나 개인도 SNS에서 논란의 중심에 서기 쉽다. 특히 캐주얼한 톤을 만들기 위해 밈 언어를 사용할 때 리스크는 더 커진다. 재미를 위해 쓴 표현이 소수자나 특정 집단을 지우거나 조롱하는 효과를 낳기 쉽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는 다양성을 포용하는 정책을 오랫동안 논의해 왔다. 국가 기관과 민간이 함께 Inclusive Writing을 발전시켜 왔다. 한국에서도 일부 공공기관과 기업이 시도하고 있지만, 아직 폭넓은 합의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다양성은 늘 가려져 있었을 뿐 언제나 존재했다. 지금은 그 다양성이 더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다양한 구성원을 포용하는 글쓰기에 대한 논의가 더 많아져야 할 때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주정부는 포용적 글쓰기 가이드를 누구나 볼 수 있게 공개하고 있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포용적 글쓰기가 필요한 이유부터 설명하는데, 매우 간단명료하다. 지역을 이루는 구성원의 다양성을 수치로 보여주며 그 이유를 설명한다.
한국의 수치는 어떠할까?
19.2%의 한국인은 60대 이상이다 (2024년 기준)
5.1%의 한국인은 장애인이다 (2024년 기준)
3~6%의 한국인은 성소수자로 추정된다 (2023년 추정치)
2.4%의 한국인은 다문화 가정을 이룬다 (2024년 기준)
한국 인구의 5.2%에 달하는 외국인이 한국에 체류한다 (2024년 기준)
이 숫자가 누군가에게는 적어 보일 수 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많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그 뒤에는 분명히 존재하는 삶이 있다. 모든 삶은 대체 불가능한 고유한 가치를 지닌다.
그럼에도 다수가 아니라는 이유로, 목소리가 크지 않다는 이유로, 언어의 층위에서 배제와 소외가 반복된다. 보이지 않을 뿐 사라지지 않은 이 사람들은 환대받아야 마땅하다.
나와 다르기 때문에 환대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정체성과 처한 상황에 상관없이 글을 편안하게 읽을 수 있어야 좋은 글이기 때문에, 우리는 환대하는 글을 써야 한다.
내가 제안하는 Inclusive writing의 기본 방향은 다음과 같다.
사람에 대해 쓸 때:
불필요하면 정체성을 언급하지 않는다
언급이 필요하면 편견이 담기지 않은 표현을 쓴다
정체성을 존중하고 정확한 언어로 표현한다
사람에 대해 쓰지 않을 때:
다양성을 의식적으로 반영한다
단어 선택을 신중히 한다
이 방향을 바탕으로, 한국어의 언어적 특징과 한국 사회의 맥락을 반영해 예시를 덧붙여 설명하겠다.
혐오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표현은 가이드에서 언급하지 않는다. 대신 실무에서 경계가 애매해 실수하기 쉬운 표현을 중심으로 다룬다.
가이드는 크게 나이, 성별, 인종, 장애, 사회계층, 문화/정치/종교, 체형 카테고리로 나눠 예시를 위주로 풀어내 본다.
여러 언어가 그렇듯, 한국어도 대체로 20~40대를 중심으로 한 언어가 주를 이룬다. 재밌는 지점은 한국의 유교적 장유유서 문화가 나이가 많은 사람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데 있다. 겉으로는 존중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연장자를 동등한 사회 구성원이 아니라 '특별히 모셔야 할 대상'으로 떠받들며 분리한다. 노인에 대한 차별과 배제가 장유유서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것이다. 더 어린 세대는 존중과 대우조차 받지 못한다. 어린이와 청소년은 보호와 교육의 대상으로만 여겨지고,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들에게 성인과 같은 책임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그들을 분리하고 배제하는 태도는 어른으로 성장할 기회와 준비마저 박탈하는 결과를 낳는다. 한때는 우리의 나이였던 사람들, 언젠가는 우리가 닮아가게 될 사람들. 그 모든 세대를 포함하는 글쓰기를 시작해 보자.
일부 IT 제품은 '시니어 전용 서비스'를 별도로 내놓고, 글자를 크게 하고 기능을 단순화한 사용성을 제공한다. 하지만 정말 '나이'가 문제일까?
나이가 많지 않은 사람들 중에도 저시력자나 디지털 문해력이 낮은 사람이 존재한다. 핵심은 나이가 아니라 제품의 복잡도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이를 언급하는 것은 불필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차라리 연령별로 서비스를 나누기보다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나이에 따른 고정관념과 편견이 담긴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어린이는 미숙하고, 젊은이는 예의가 없으며, 고령자는 세상 물정에 어둡다는 식의 역할 규정은 배제한다.
특정 세대를 도움이 필요한 대상으로만 다루기보다 동등한 시민으로 서술한다. 집단 라벨(어린이·젊은이·노인·○○세대)로 묶기보다, 필요할 때에만 정확한 나이 또는 명확한 기준(예: 만 65세 이상)을 제시한다.
피해야 할 표현(가나다순)
• 가족 호칭
한국어에서는 종종 나이가 다른 사람을 지칭할 때 '우리 부모님, 어머님, 아버님, 이모, 삼촌, 언니, 오빠'처럼 가족 호칭을 사용한다. 가족 중심주의적 문화와 유교적 배경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표현은 타인을 가족처럼 부른다는 따뜻함을 담지만, 동시에 나와 나이가 다른 사람을 타자화시킨다. 더 나아가 개인으로 존재하는 사람을 가족이라는 집단의 역할 속에 가두고, 감정적인 책임과 부담을 강요할 수 있다.
• 금쪽이, 잼민이
금쪽이와 잼민이는 어른의 기준에서 통제되지 않는 어린이를 비하하는 표현이다. 이 표현은 어린이를 '통제받아야 하는 존재' 또는 '문제를 일으키는 존재'로 전락시킨다. 나이를 바탕으로 개인을 평가하고 낙인찍는 효과를 낸다.
• 김여사
'김여사'라는 표현은 운전에 서툰 중년 여성을 비하하는 멸칭이다. 놀랍게도 요즘도 쉽게 볼 수 있는 단어다. 이러한 단어는 나이가 많은 여성은 운전을 하지 못한다는 고정관념을 주기에 사용을 피한다.
• 어르신
존칭처럼 보이지만, 나이를 이유로 개인의 고유성을 지워버리는 표현이다. 영어의 elderly가 단순히 나이가 많다는 뜻이 아니라 '지혜롭다'는 뉘앙스를 가진 것처럼, 한국어 '어르신'도 예의 바른 표현이지만 도덕성이나 개인 성향에 대한 사회적 기대를 강요한다. 또한 나이가 많은 사람을 발화자 위치에서 제외시키기 때문에 포용적인 표현이라 볼 수 없다.
• MZ, 젠지
특정 세대에 이름을 붙이는 문화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그러나 '○○세대'라는 호칭은 다양한 성향과 개성을 지닌 개인의 존재를 지우고, 하나의 특징으로 단순화하는 라벨링이 된다. MZ세대, 젠지세대와 같은 단어에는 젊은 사람을 바라보는 편견과 고정관념이 함께 담겨 있다. 물론 학술적 맥락에서 세대 간의 차이를 연구하거나 사회적 경향을 설명할 때는 이런 구분이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일상적 대화나 콘텐츠에서 무분별하게 사용될 경우, 개인을 세대라는 집단의 틀 속에 가둬버리는 효과를 낳는다.
• ○린이
'○린이'라는 표현은 초보라는 뜻으로 자주 사용된다. 예를 들어 골프 초보를 '골린이'라고 하는 식이다. 이 단어는 어린이를 미숙한 존재로 규정한다. 어른 입장에서는 귀엽고 무해한 표현일 수 있겠으나, 어린이 입장에서는 아주 속상한 단어일지 모른다. 어린이는 자신 스스로를 모든 것에 미숙하고 능력이 부족한 존재라고 자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이를 언급해야 한다면, 모호하거나 은유적인 표현 대신 구체적인 수치나 범위로 제시하는 것이 좋다.
• 어르신께 드리는 혜택 → 65세 이상이면 받을 수 있는 혜택
때로 우리는 단지 나이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그 존재를 지우려 한다. 노키즈존이 그 대표적인 예다. 특정 연령대를 배제하는 공간은 곧 존재 자체를 지우는 흐름으로 이어지고, 결국 그 연령대가 사회에서 사라지는 것을 정당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언어도 다르지 않다. 나이나 다른 정체성을 이유로 누군가를 배제하는 말과 태도는 곧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이 글을 쓰면서 '노인대학'의 문화를 담은 유튜브 영상의 한 대화가 떠올랐다. 노인대학에서는 '노인'이라는 말 대신 '선배 시민', '후배 시민'이라는 호칭을 사용한다고 한다. 나이에 관계없이 우리는 모두 같은 시민이며, 동시에 누군가의 선배이자 후배다. 바로 이런 사고방식 속에 포용적 언어의 핵심이 담겨 있다.
우리는 나이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선배 시민이나 후배 시민을 눈앞에서 지워서는 안 된다.
Inclusive writing 관련 업무를 진행했을 때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개인들을 하나로 묶어 '노인'이나 '시니어'라고 부르는 것이 과연 차별적인 표현일까 하는 논의가 있었다.
결론은 ‘이슈는 아니다’였다.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서비스이고, 그들의 사용성을 고려한 기능을 설명하기 위해 쓰이는 맥락이라면 차별이나 배제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고민스러웠다. 글을 읽는 당사자 입장에서는 자신을 '노인', '시니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를 대체할 만한 적절한 표현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결국 이 표현이 차별적인지 아닌지는 글을 읽는 당사자들에게 직접 물어보아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Inclusive Writing 시리즈
① Inclusive Writing의 시작 - 무해한 글쓰기의 시대
② Inclusive Writing으로 다양성 포용하기 / 나이·장애
③ Inclusive Writing으로 다양성 포용하기 / 젠더·인종·사회 계층
④ Inclusvie Writing 한글 패치 / 나이 ◀︎ 지금 읽고 있는 글
⑤ Inclusvie Writing 한글 패치 / 젠더 (게시 예정)
⑥ Inclusvie Writing 한글 패치 / 인종 (게시 예정)
⑦ Inclusvie Writing 한글 패치 / 장애 (게시 예정)
⑧ Inclusvie Writing 한글 패치 / 사회 계층·문화, 정치, 종교·외모, 체형 (게시 예정)